설득 - 제인 오스틴

by 원광우

이 이야기는 19세기 초 그러니까 무려 200년이나 전의 일이다. 그 기간 동안 인류는 엄청나게 발전을 거듭해왔다. 공간적 배경을 묘사하는 부분들을 읽다보면 그걸 실감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기저에 깔려있는 옳고 그름과 선악의 기준에 대한 인식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소설을 통해 제기되는 이슈들이 하나같이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문제시되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귀족사회의 방탕한 생활모습이다. 그들은 아무런 실속도 없이 겉치레만을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경제적으로 파탄 지경에 이르러도 파티를 즐기고 호화로운 생활을 계속한다. 월터 경과 큰 딸 엘리자베스가 대표적인 본보기다. 그들은 집을 처분해야 할 위기에도 아랑곳 않고 준남작이라는 지위에만 천착한 채 위신을 앞세우고 씀씀이를 줄이려하지 않는다.

남녀 간의 사회적 차별이 만연했던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당시 영국 사회는 장자상속이 원칙이었으며 여자들은 상속의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되어있었다. 자식 중에 남자가 없을 경우 사위나 조카에게 상속이 될지언정 여자들에게는 어떠한 권리도 없었다. 엘리엇이 결혼문제를 두고 권모술수를 부린 것도 실상은 이 상속문제에서 기인한다. 월터 경의 준남작 지위를 상속받고자 앤에게 청혼하고 클레어 부인으로 하여금 월터 경과 결혼하지 못하도록 거래를 한다. 재혼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여서 여성들의 재혼은 아주 고깝게 받아들이면서 남성들에게는 아주 관대하다. 엘리엇의 재혼은 당연시되지만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은 자신의 행복과 관계없이 독신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다시피 한다. 스미스부인이 불행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클레어부인의 삶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그려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작가는 이러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당시의 사회 환경을 있는 그대로 그려냄으로써 그 판단을 독자들에게 넘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들이 느끼는 공감의 폭은 훨씬 넓어진다. 사실 귀족들의 부패와 남녀 차별문제는 그동안 많이 개선되어온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나마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서민들의 시선을 의식하도록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었고, 남녀 간의 권리에 있어서도 일각에서는 도로 역차별을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난 그 배경에 이런 소설들이 알게 모르게 대중들을 계몽시켜온 결과가 자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고 보니 설득이라는 제목이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설득이란 납득의 과정을 거칠 때라야 완성이 된다. 납득은 받아들일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설득이라는 말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숱하게 설득의 순간과 마주한다. 소설 속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그 중 내가 판단한 의미 있는 설득장면은 대충 세 곳이다.

라임을 여행하는 도중에 웬트워스와 루이자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웬트워스를 좋아하는 루이자가 계단에서 뛰어내리면서 그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한다. 위험을 감지한 웬트워스는 만류하는 설득을 한다. 그러나 루이자는 뛰어내리고 그건 사고로 이어져 크게 다치고 만다. 이 장면은 설득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대표적인 예다. 설득이 실패한 이유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은 루이자의 단호한 성격 탓이다. 올바른 설득에 납득하지 못한 결과 불행이 이어진 것이다. 이 사건은 소설의 전체적인 스토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걸 계기로 루이자는 웬트워스가 아닌 벤윅과 맺어지고 웬트워스는 자신의 사랑인 앤을 되찾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를 두고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웬트워스의 설득이 시사하는 바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스미스 부인이 앤을 설득하는 장면도 있다. 그녀는 엘리엇에 대한 좋지 않은 풍문을 알리며 앤으로 하여금 그의 청혼을 거절하도록 한다. 앤은 충분히 납득한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루크 간호사의 증언 뿐 아니라 스미스 부인이 간직한 편지가 결정적인 물증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엘리엇에 대한 앤의 날카로운 관찰력 또한 한몫을 했다. 올바른 설득을 받아들인 결과는 행복으로 귀결된다. 엘리엇의 소문은 사실로 드러나고 앤은 웬트워스와의 사랑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앤을 향한 레이디러셀의 설득장면이다. 아마도 이것이 소설의 제목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8년 전 앤이 웬트워스를 좋아한다는 걸 안 레이디 러셀은 파혼할 것을 설득한다. 돈도 없고 집안이 쳐지는 데다 낙천적이고 겁 없는 성격이어서 자격미달이라는 이유에서다. 더없이 안타까워하면서도 앤은 납득한다. 레이디 러셀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앤은 그를 위해서라도 레이디 러셀이 반대하는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며 차라리 자신이 사랑을 포기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는 옳지 않은 설득을 받아들인 사례다. 당연히 결과는 불행으로 나타나고 두 사람은 실연의 아픔을 뼈저리게 겪는다. 그러나 훗날 앤은 그때 자신이 납득한 사실을 후회하면서 다시 그런 설득을 당한다면 단호하게 거부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뿐만 아니라 은근히 엘리엇과의 결합을 권하는 그녀에게 오히려 엘리엇의 치부를 알려 자신의 마음을 설득하겠다고 다짐한다. 이 부분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의 설득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때로는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단호한 거부 또한 행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

한순간도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게 책을 읽었지만 아쉬운 점 또한 있다. 루이자와 벤윅을 구태여 결혼시킨 점이 그랬다. 물론 장시간 병간호를 하다보면 충분히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죽은 파니를 잊지 못하는 지독히 내성적인 성향의 벤윅 캐릭터와 발랄한 루이자의 성향은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또 둘 사이에 결혼을 갑자기 결정할만한 명분도 많이 부족하다. 그저 웬트워스가 루이자를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도록 스토리를 끌어가려다보니 설정이 너무 작위적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생각만 할 따름이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앤이 사랑의 성취를 기뻐하면서도 해군의 아내로서 전쟁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세금으로 지불해야하는 것에 비하면, 그 정도야 훌륭한 소설을 읽은 대가치고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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