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와 맥주 - 서머싯 몸

by 원광우

책이란 게 정말 제목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한다.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판단하는 그 첫 번째 기준이 제목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도 바로 제목 탓이었다. 케이크와 맥주라니. 우리가 주변에서 늘 접할 수 있는 그런 소재가 아닌가. 그 말이 물질적 쾌락과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라는 사실을 알건 모르건 그건 관계없는 일이었다. 글줄이라도 쓰겠다며 동네 카페를 전전할 때마다 매대 아래 투명한 냉장고에는 모양과 색상이 제각각인 케이크가 여럿 놓여 있었고, 나름의 일과를 마치는 시간이면 가끔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서너 캔씩 사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원 제목에는 맥주를 뜻하는 단어가 Ale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Ale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의 한 종류였던 것이다.

소설은 한 유명작가의 삶과 사랑에 관해 다룬다. 그러다보니 등장인물 중에는 작가들이 많다. 하지만 평범한 소시민과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그저 직업일 뿐 케이크와 맥주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그들이 꾸려가는 삶의 세계는 우리들과 동일평면에서 펼쳐진다. 그런 만큼 우리들의 이야기라 해도 무방하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은 이런 면을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내용이 복잡한 것도 아니다. 어느 날 드리필드라는 유명작가의 전기를 쓰는 로이가 나를 찾아와 그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달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던 나는 자연히 그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그 가운데 로지라는 여자의 삶이 소환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불행한 결말로 맺어진다. 이런 과정 속에서 로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제각각 다 다르다. 저마다의 입장에서 보고 싶은 방향으로만 바라보고 판단하게 된다. 여기서 작가의 개성적 인물화(人物化)가 돋보인다. 등장인물별로 캐릭터의 특성을 부각시키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우선 작가 로이에 관해 살펴보면 그는 출세지향적인 인간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을 출간할 때면 작품의 질을 통해 독자들에게 평가받으려하지 않고 선배문인들이나 평론가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데만 집중한다. 주변사람들에게 기회주의자요 속물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충분히 이해될만하다. 드리필드의 전기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에 관한 진실을 표현하기보다는 청탁자인 드리필드의 두 번째 부인 에이미의 입맛에만 맞추려들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신경을 쓰면서 어두운 면을 숨기고 밝은 면만 과장하려든다.

그런가 하면 드리필드는 순수한 면이 많다. 로지와의 사랑도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영국의 상황으로 볼 때 술집여급으로 일하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일이 자신의 신분을 고려할 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로지와의 생활을 이어가면서 그는 문단에서 조금씩 입지를 굳혀간다. 자신의 삶이 평범한 가정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덕분에 일반인들의 삶을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표현하는 게 가능했던 까닭이다. 물론 트래퍼드 부인의 역할 역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트래퍼드 부인의 상업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그는 성공 이후에 글의 개성을 차츰 잃어간다. 표면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내면적으로는 실패한 작가에 다름 아니다. 그의 이런 성격은 우유부단함으로 이어진다. 로지가 부정한 행동을 저질러도 아무런 내색을 않는 것도, 그녀와 결별한 이후에도 그녀를 그리워하며 노후를 보내는 것도 그런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트래퍼드 부인은 드리필드의 후견인 역할을 자처한 사람이다. 그녀는 문학을 결코 순수한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 또한 그녀에게는 사업의 터전이요 한 영역일 따름이다. 전도유망한 작가를 발굴하면 그의 자질을 키우기보다 자신의 부와 명예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지식인처럼 행동하지만 그저 사업가에 불과한 귀부인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로지는 말 그대로 사랑을 사랑하는 여인이다. 그녀의 삶은 그저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순간순간 솟아나는 욕망을 거부하는 일이 없다. 드리필드와 결혼을 한 상태에서 조지 켐프와 염문을 뿌리는가 하면 화자인 ‘나’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심지어 딸이 죽었음에도 외간남자와 잠자리를 갖기도 한다. 그녀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원초적인 면을 그리고자 했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나’는 철저하게 소극적인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는 인물이다. 그의 몸에서는 일반 소시민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드리필드와 우호적인 관계를 줄곧 유지했음에도 로지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 장면이 특히 그러하다. 그건 이성과 감정이 따로 노는 인간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면서, 법과 규범을 준수하며 살아가지만 가끔은 열정적인 삶을 동경하며 일탈을 감행하는 무모한 인간의 면모도 여지없이 보여준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중립의 위치에 서서 안전을 도모하려는 모습도 포착된다. 드리필드의 전기를 쓰는데 도움을 달라는 로이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감히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는 점이 그러하다. 로지의 삶을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그였기에 난 한 명의 독자로서 로지의 입장을 대변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는 결코 그러지 않는다. 어쩌면 그 때문에 이 작품의 개연성이 더욱 돋보인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드리필드의 삶을 통해 크게 두 가지를 말하고자 한 것으로 읽힌다. 그 첫 번째는 인생의 궁극적 행복이 아주 사소한 것에 있다는 점이다. 펍에서 즐기는 한 잔의 흑맥주와, 로지와의 사랑을 되새기며 사람들과 편안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삼은 그의 말년삶이 그걸 말해준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케이크와 맥주라는 단어에는 쾌락이나 유희 같은 부정적인 의미뿐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소소한 행복의 본질이라는 의미도 숨어있는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진정한 작가로서의 삶을 유지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하는지를 알려준다. 상업성에만 휘둘릴 것이 아니라 유명할수록 더욱 경계하며 글에 진솔함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이 같은 작가로 하여금 드리필드의 전기를 쓰게 한 것도 이런 점을 강조하기 위한 한 가지 기법이 아닐까 싶다. 죽기 직전까지 단 한 순간이라도 훌륭한 작가의 삶을 살고 싶은 나로서는 이 소설을 통해 얻은 것이 실로 많다. 아무리 원한다 한들 그 순간은 오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 방향으로 가는 이정표가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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