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에 실패한 사람, 실패에 성공한 사람
"자율신경계 활성도 저하"
작년 11월 건강검진에서 받아든 제 피로감의 원인입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이 덕분인 듯 눈 다래끼는 왼쪽 오른쪽을 넘나들며 끊이지 않고, 얼굴 피부염증은 포진으로 확장되는 중입니다. 면역력만 떨어진 것이 아니었네요. 집중력도 떨어지고 체력도 덩달아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처방은 "휴식"입니다.
'IT와 콘텐츠 컨버전스 시대의 문화콘텐츠 비즈니스 전문가'라고 스스로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근사한 말로 "척"하며 살아온 제게 엄청난 반전의 기회입니다. 얼마전 흑백요리사2의 최강록 쉐프가 이야기한 "조림인간"의 마음에 조금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잘 하는 척"이라는 그 분의 말이 제게 글 욕심을 내게 하네요. 이제 티내고 척했던 어제들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실패의 길로 들어서겠습니다.
겉으로는 돈을 쫒지 않는다고 티내고 척하면서도 내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물론 돈을 번다는 생각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겉으로 다른 척을 했다는 거지요. 제 나름으로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변명도 많이 했습니다. 그 변명을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제 모습이 보이네요. 진짜 내 모습.
돌이켜보면 저는 참 많은 겉으로의 성공과 속으로의 실패를 경험한 것 같습니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 큰 만큼 실패에 대한 상처가 깊은 것이 사실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열망이 정점 커지고 가능성도 살짝 엿보일 때마다 성공을 위해 집중해야 한다는 결심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권하듯 목표에 집중하려고 할 때마다 저의 시야는 점점 좁아져 갔습니다. 그렇게 좁아진 시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주변 상황에 개의치 않고 단순하게 살아가니 좋은 것 같지만, 좁은 시야 때문에 바른 길을 찾지 못한 것이 분명했고, 결국 제 시선은 방향을 잃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저는 "성공에 실패한 사람"이 됐습니다.
주위를 보면 정말, 수많은 실패자를 만납니다.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
사업에 실패한 중년들
안정에 실패한 노년들
실패는 어느 누구에게나 가장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반대로 성공은 모든 사람들의 목표가 됐지만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는 영광입니다. 복권에 당첨되는 만큼이나 우리 삶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실패가 무엇인지 정체를 알아내기도 전에 실패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의 정체를 알아내는 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이 돼버린 실패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또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실패를 바로 마주하면 할수록 이겨낼 수 있는 힘 역시 더 많이 쌓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실패감을 벗어난 새로운 삶이 필요합니다.
어느 날 문득, 살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자기 모습이 갑자기 쓸쓸하게 느껴질 때, 지금까지 해온 노력들이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일 때, 내 힘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막다른 지경에 몰려 어려운 상황을 피해갈 어떤 방법도 떠올릴 수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가진 것 같은 삶의 목표를 나만 찾지 못해서 외로움속에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될 때, 그래서 꿈과 목표를 찾는 일에 갑자기 조급함이 느껴질 때, 왜 공부해야 하고 왜 취직해야 하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때에 따라 맞춰 살기에 급급한 내 모습을 발견할 때, 이 모든 순간순간에 느껴지는 공통적인 감정은 바로 실패감입니다.
실패와 실패감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사실 실패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실패가 아닌 실패감만 있을 뿐. 실패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다시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거듭남"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실패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과 염려로 쌓여가고, 자존심을 한없이 망가뜨려 낙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할 때, 바로 그 때 우리 삶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 삶에도 혁신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라이프 이노베이션(life Innovation)입니다.
라이프 이노베이션의 시작은 의외로 쉽습니다. 염려와 낙심으로 자존감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을 때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고 잘하는 "포기(give-up)"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다른 점은 무엇을 포기하는가 일 뿐이죠.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라는 마음으로 "조급한 애쓰기" 마저도 완전히 놓아버리고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상태가 되기. 그리고 옛날의 내 모습을 뒤적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잠시라도 나만의 시간으로 비워내기. 이 짧은 시간 동안 혹시라도 잊고 있었던 하나하나의 감각이 원래의 모습으로 잠시라도 돌아가는 것을 느끼는 시간. 라이프 이노베이션은 스스로의 도화지를 비워내고 다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는 창조적인 과정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예술가들의 창작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뛰어난 작가, 디자이너, 크리에이터,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입니다.
물론 예술적 창의의 과정은 어렵고 힘이 듭니다. 생각하고, 작업하는 모든 시간이 고통스럽고 힘들고 마음속에는 부담이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이라고 흔히 말하는 그것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의 첫 문장을 50번 넘게 수정했다는 이야기, 그의 말년에 창작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돼 버린 느낌으로 상실감에 사로잡혀 결국 스스로 생명을 끊었던 것도 창작의 고통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창작의 고통으로 스스로 목숩을 버리지는 못합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중압감에서 오는 실패감이 끝없는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혁신은 중압감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목표를 세우지 않고 그저 삶의 도화지를 다시 깨끗하게 지워내고, 밑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단순한 과정입니다. 이 과정의 이름은 회복입니다.
이노베이션은 새로운 창조이기도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회복"입니다.
바로 이 것이 제가 여러분과 얘기 나누기 원하는 이유입니다.
실패감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이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모든 사람이 다시 새로운 삶을 위한 에너지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지금 실패감에서 빠져나오기를 간절히 원하는 어느 한 분이 "회복"의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글 묶음으로 제가 그랬던 것처럼 실패의 정체를 알아내고 내 본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그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한 라이프 이노베이션의 방법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회복, 빈 그릇이 되기
“그릇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제가 회복을 경험한 후에 갖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제가 말하는 회복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단어의 뜻과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분명히 지독한 실패감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0여년의 사회경험에서 저는 그릇 보다 그 그릇에 담길 무엇인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요즘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다 싶습니다. 그릇을 만드는 것보다 그 그릇에 담길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 훨씬 쉽고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그릇은 골라서 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린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에서는 플랫폼이라는 그릇을 만들 수도 고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라는 그릇, 삶이라는 그릇은 만들어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그릇은 이미 만들어져 있고, 그 모양도 크기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주어진 그릇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을까’, ‘나는 이런 사람이 될 거야’라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희망은 당연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처음부터 조금 빗나간 기대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그릇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모양인지 또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잘 알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그릇으로 생각한다면 무엇을 담을 지를 생각하기 전에 우선 그 사람의 그릇이 어떤 것인지 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특히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 키워 내야 지’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시작이 잘못된 것입니다. 아이의 그릇이 어떤 것일지 잘 지켜보고 함께 알아가는 것이 우선돼야 할테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한 개의 그릇과 같습니다. 모두 다른 모양과 다른 크기와 쓰임이 있겠지요. 저는 큰 그릇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빈 그릇”이 되고 싶습니다. ‘무엇으로 그릇을 채울까’하는 욕망에서 벗어나서 ‘나’라는 있는 그대로의 그릇을 알아가고 그 그릇에 알맞은 무엇인가가 채워질 것을 기대합니다. 이렇게 원래 그릇 그대로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바라면서 지금도 저는 나라는 그릇을 비워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