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쉬어가는 글) 잘 살아가는 것이란

by 하루


우리의 삶이 소유양식에서 존재양식으로 변하는 것은 불안에서 안정으로,
타인에 대한 적의에서 연대로, 쾌락에서 기쁨으로 바뀌는 유일한 길


“소유냐 존재냐”에서 에리히 프롬은 우리의 삶을 소유양식에서 존재양식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을 존재양식으로 바꾸면 불안함과 적대감이 사라지고 기쁨이 생겨나게 된다고 것이지요. 결국 지금 우리는 존재양식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소유양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안정감을 가질 수 없고 사람들과 잘 지내기가 어려우며 진정한 기쁨보다는 쾌락적 자극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에리히 프롬이 이야기하듯 우리의 삶을 존재양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소유양식이 뭐고 존재양식이 뭐란 말인가요? 이해하기 어려운 이 철학가의 이야기를 제 멋대로 쉽게 설명해 보자면 소유양식은 ‘갖는 것을 목표로 사는 것’이고 존재양식은 ‘그저 있기만 해도 좋은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부모라면 자녀를 어떤 마음으로 키우고 계신가요?


대부분의 부모는 “있기만 해도 소중한 내 자녀”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실상 그 마음속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가 이 험한 세상에서 잘 살게 되려면 적어도 무엇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무엇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해주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그 무엇을 직접 만들어줄 수는 없지만, 자녀가 가능한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되도록 자녀를 가르치고 지원하는 것이 부모의 당연한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자녀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면서도 막상 자녀에게는 "무엇이 되는 것"을 가르치기에 집중하고 그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자녀를 모질게 훈육합니다.


자녀를 위한 사랑이라는 이유로 자녀 스스로의 선택의 기회를 박탈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미리 살아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패의 트라우마를 생각하며 자녀에게는 고통스러운 실패를 겪지 않게 하려고 더 강하게 키워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됩니다.


부모는 자녀가 무엇이 되는 가에 온통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자녀의 삶이 아니라 본인의 삶이 소유하는 것에 매몰되어 있는 것입니다. 돈을 소유하는 것, 원하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내는 것, 성공한 자녀로 만들어내는 것,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본인의 소유를 확장하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는 것이고, 이게 바로 "소유양식"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라고 이야기 하지만 실은 그렇습니다. 내가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변명일 뿐입니다.


"존재양식"으로 사는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자녀가 무엇이 되는 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녀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의 부모는 자녀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미래보다 지금의 자녀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본인의 존재가 자녀에게도 똑같이 느껴지기를 바랍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해주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존재만으로도 자녀에게 만족감을 주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당신은 어떤 부모입니까?
당신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부모가 이렇게 "존재양식"의 삶으로 살아갈 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안정적이 되고, 진정한 연대감을 갖게 되고 서로에게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다들 알고 있지만 이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에리히 프롬이 "유일한 길"이라고 얘기한 것처럼 진짜 사랑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갖는 것"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충분한 기쁨을 줄 수 있을까요? 무엇이 돼서가 아니라, 또 무엇을 해주지 않더라도 바로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잘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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