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 마음 속으로의 여행
결국, 내 마음 속으로의 여행
- [오즈의 마법사], 라이먼 프랭크 바움, 1900.
( [The Wonderful Wizard of Oz](1900), Lyman F. Baum, <Collins Classics>, 2013. )
"그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집이 회오리바람에 두세 번 돌더니 하늘로 서서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도로시는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는 줄 알았다.
북풍과 남풍이 도로시의 집에서 만나며 그 집을 '사이클론'의 중심으로 삼았던지, 그 중심은 고요했으며 집의 사방 주변 강풍의 강한 압력으로 갈수록 높이 높이 상승하다가 회오리바람의 정점에서 붕 떠서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로시는 무서움은 이겨냈으나 외로웠고 바람소리가 너무 커서 귀를 먹을 지경이었다. 처음에 도로시는 집이 추락하면 온몸도 산산조각 나리라는 두려움에 떨었으나 한참 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걱정을 멈추고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침착하게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윽고 도로시는 흔들리는 거실을 기어 침대로 들어 누웠고 강아지 토토도 그녀 옆에 살며시 누웠다.
요동치는 집과 무섭게 부는 바람에도 도로시는 곧 눈을 감고 잠들었다."
- [The Wonderful Wizard of Oz](1900), '1. The Cyclone', Lyman F. Baum, <Collins Classics>, 2013.에서 필자 번역.
2019년 담배를 끊은 새해 첫날부터 올해도 일출시간에 맞춰 마을 뒷동산에 오른 건, 굳이 떠오르는 해를 보고자 한 건 아니었다.
날이 흐려 못 볼 수도 있음에도 눈 비비고 일어나 인적없는 오르는 길도 올려보고 올라온 길도 돌아보며 작년의 마지막 달도 손을 들어 보내준다. 변함없이 누워계실 초안산의 내시와 궁녀들의 버려진 묘들을 지나 정상에서 동북쪽을 보고 있노라면 동쪽에서는 새해 첫 해가 이미 세상을 밝히고 난 후다. 그제서야 동쪽을 향한 채 해가 중천을 향해 시동을 걸 때 쯤 주위를 둘러보면 문전성시를 이루던 동네 일출객들은 모두 떠나간 지 오래다.
목적을 이루면 미련없이 자리를 뜨는 무서운 인간세상이다.
( 2021년 1월 1일 / 초안산 )
'해'를 동경하던 '소년' 시절, 좋아했던 동화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시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 세 권이었다.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도로시는 내겐 그저 앨리스의 '짝퉁' 정도였고, 원래 본인이 가지고 있었을 '지혜', '마음', '용기'의 덕목을 일깨워주는 내용은 뭐 [피노키오]식 교훈을 넘지 않았다.
사실, 어른이 되어 '동화'를 생각했을리 없는 게, '현실'은 '동화'와 거의 정반대였고, 아니 오히려 그 '현실'을 유지하려는 어른들이 부러 아이들에게 정반대의 '동화'를 다시 캐내고 각색하고 있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나도 부모가 되었고 내 아들딸에게 '동화'를 읽어주게 되었다. 창작동화보다는 내가 어릴 때 감명을 받았던 '고전동화'를 위주로 읽어주며 아빠인 나도 그것들을 새롭게 다시 읽게 된다. 사실 [보물섬]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말고는 어른이 되도록 '성인판'으로 읽어보지 못했다는 걸 새삼 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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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먼 프랭크 바움(Lyman F. Baum : 1856~1919)은 미국 극작가인데 샤를 페로나 그림 형제, 안데르센 등 배경이 다소 '레트로'한 그보다 조금 앞선 유럽의 고전동화 작가들에 비하면 다소 미래적 '판타지' 작가에 가깝다. 주인공 도로시(Dorothy)는 1865년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를 모델로 한 것이 맞다고 한다. 미국 캔자스 들판에서 부모 없이 아저씨, 아주머니와 사는 그녀는 어느날 불어닥친 '사이클론'에 날아가는 집에서 잠이 든다. 과연, '이상한 나라'로 갈 수 있는 '앨리스'급 반열 맞다.
( 애니메이션(좌) / 영화(우) - 인터넷 갈무리 )
머리가 빈 허수아비(The Scarecrow),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The Tin Woodman), 용기 없는 사자(The Lion)와 함께 '노란 벽돌길(The Yellow-brick road)'을 따라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를 찾아가 각자의 소원을 청하지만, 결국 다른 누가 아닌 본인이 이미 다 가지고 있더라는 '동화'적 결말이다. 그들이 지나온 길에서 겪은 경험에서 이미 다 드러났지만 그들 자신만 몰랐던 것들. 반면 도로시는 이미 본인이 신고 있던 마녀의 '은구두(The Silver Shoes)' 자체에 소원 성취의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도로시가 캔자스로 돌아왔을 때는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가 '꿈'이었을지 모른다는 암시는 없지만, 집으로 돌아오게 해준 '은구두'는 이미 '현실'과 '꿈' 사이의 '중간지대'인 '사막/황무지(the desert)'에 영원히 버려진다. 모험을 겪고 좀더 어른이 되었을 도로시는 다시 '이상한 나라'인 '오즈(Oz)'로 갈 수 없다. 앨리스 또한 언제든 잠들 수 있겠지만, 지루한 '역사책'을 읽어주던 언니처럼 성장할 것이므로 다시 잠에 빠진들 '이상한 나라'로 가는 토끼굴로 예전처럼 빠질 수는 없을 게다.
작가들은 비록 흥행을 위해 소녀 주인공들을 계속 다시 '이상한 나라'와 '오즈'로 돌려보내지만, '속편'들은 결코 '첫경험'을 넘어설 수 없다.
"각자에게 개별인사를 마친 도로시는 이제 강아지 토토를 꼭 안고서 모두에게 마지막 '안녕' 인사를 건넨 후 신고있던 은구두의 뒷굽을 세 번 부딪치며 말했다.
'캔자스로 돌아가게 해 줘!'
순간 도로시의 몸이 떠올라 너무도 빨리 지나는 바람에 그녀가 보고 느낄 수 있던 건 귓가를 스치는 바람 뿐이었다. 은구두의 세 발짝만큼 시간에 날아 오느라 그녀는 예전에 살았던 캔자스의 풀밭에 급하게 내동댕이쳐졌다...
...
도로시는 일어나면서 신발이 없어진 것을 알았는데, '은구두(The Silver Shoes)'는 날아오는 동안 벗겨져 중간지대 사막에 영원히 버려진 것이었다."
- 같은책, '23. Glinda Grants Dorothy's Wish'에서 필자 번역.
새해 첫날 마을뒷산에 오른 건, 굳이 뜨는 해를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내 마음 속에 여전히 있을 '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엘튼 존의 노래 'Good bye Yellow Brick Road'에 나오는 '노란 벽돌길'은 떠나고 싶은 '도시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도로시'와 같이 걸었던 '어린 시절'의 상징이었을 수도 있다.
( Dorothy & Toto on 'the Yellow-brick road' - 사진들은 인터넷 갈무리 )
모두 떠난 마을뒷산 공터에 남아 생각한다.
한때 '노란 벽돌길'을 걸었던 캔자스 소녀 도로시는 자기 안에 있을 '은구두'를 다시 찾았을까, 아니면 아예 잊었을까.
( 모두 떠난 마을동산, '초안산' )
어른이든 아이든,
다소 '직지심경(直指心經)' 부처님 말씀 같지만,
모든 길은 결국,
'내 마음 속으로의 여행'이다.
***
1. [The Wonderful Wizard of Oz](1900), Lyman Frank Baum, <Collins Classics>, 2013.
2. [오즈의 마법사], <교원 애니메이션 세계명작동화>,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