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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Nov 21. 2020

[백년 동안의 고독](1967) -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 고독'한 자들의 본질은 '부재'가 아닐까

'백년 동안 고독'한 자들의 본질은 '부재(不在)'가 아닐까
- [백년 동안의 고독](196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옮김, <문학사상사>, 1999.





"멜뀌아데스는 그 원고를 자기의 모국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적었으며, 짝수에 해당하는 줄은 모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개인적인 암호로 적었고, 홀수에 해당하는 줄들은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의 군대암호로 적어놓았다. 그리고 남들이 쉽게 해독하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마지막 다시 손질을 해서, 모든 사건들을 인간이 이해하는 보편적인 시간의 개념에 따라서 나열한 것이 아니라, '백년 동안' 날마다 일어날 사건들을 한순간에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처럼 적어놓았고, 이러한 비밀의 실마리를 아우렐리아노가 풀어내게 된 것은 아마란타 우르슬라의 사랑에 얽힌 복합적인 상황에서 빚어낸 혼돈에서였다."
- [백년 동안의 고독](196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옮김, <문학사상사>, 1999.


다시, '소설'을 쓰고 싶었던 이십대 중후반의 이야기다.
영문학을 '전공'한 것은 문학이 좋아서가 아니라 고등학교 때 단지 좋아했던 과목이 '영어'였기 때문이었고, 처음보는 대학선배들이 왜 영문과에 왔냐고 물으면 우리는 당시 인기가수 김종서의 노래 가사처럼 "영문~도 모른 채에~~"를 읊기 일쑤였다. 사실 신문기자가 중학교 때까지 나의 장래희망이었고 이제 스무살을 앞두고는 뭔가 구체적인 꿈을 기획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신문사 들어가려면 영문과가 유리하다는 전혀 구체적이지 않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아무튼, 이 두 가지를 버무린 곳이 영자신문사였기에 입학하자마자 시험을 보고 교내 영자신문사에 들어갔으나 군대식 문화에 치를 떨며 바로 때려치우고는 학생회를 찾아갔다. 90년대는 아직까지 모든 곳이 '군대식'이었지만, 학생회는 그나마 '민주주의'의 탈을 쓴 군대였다.

내가 한때 '영어'라는 과목을 좋아하긴 했던가 기억조차 가물거리던 시절을 지나며 나는 '철학'과나 '사학'과를 왜 몰랐던가 잠시 아쉬워 하기도 했으나 결국 그것들이 나의 미래일 수는 없었다. 그때 섬광처럼 내게 '문학'이 날아들었다. 비록 학보사에 버리듯 던져넣었던 첫 번째 단편소설 [담배 세 까치]는 "군입대를 앞둔 어느 젊은이의 넋두리"라는 한줄 평을 받았다고 군휴가때 만난 복학생 선배가 소주잔과 함께 전해주었지만, 나의 이십대 중후반을 지배했던 건, 그래도 '가죽잠바'와 '담배', 그리고 '단편소설'이었다.

모든 일을 시작할 때는 무릇 '롤모델'을 상정하기 마련이다. 내 '소설가' 롤모델은 '90년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김소진이었다. 그는 1963년생으로 나보다 열한살 많았지만 영문학을 전공했고 신문사 기자였다. 스물아홉에 [쥐잡기]라는 단편소설로 등단했는데, 자기 존재의 기원을 찾아 부모세대로 거슬러 오르는 어린 시절의 '원체험'이 그의 주요 주제였다. 1991년 우리 학교 김귀정 열사 투쟁을 배경으로 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칼 포퍼의 동명 저서와는 직접 연관은 없으나 '열린 사회'와 '민주 사회'로 나아가는 90년대 벽두에서 '룸펜 프롤레타리아들'을 배제시키는 87년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위선을 정말 간명하고도 멋지게 드러내 놓았다. 루카치의 말마따나 "소설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라는 계명을 들고 길을 나선 소설가 지망생인 나는 소설을 통해 모순된 사회체제를 고발하고 싶었고 카프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하였지만, 사실은 김소진처럼 쓰고 싶었다. 그래서 김소진은 내게 '90년대 최고의 리얼리스트'였고, 노동현장에 생생하게 뿌리를 둔 [객지]의 황석영은 70년대, [내일을 여는 집]의  방현석은 80년대 '최고의 리얼리스트'라 칭하며 내 소설의 '성삼위일체'를 이루었더랬다. 물론 황석영과 방현석처럼 노동의 현장에 투철할 정도의 깜냥이 못되는 나는 내 '리얼리즘'을 90년대 소설가 김소진에서 찾은 거였고 내 '단편소설'의 주제 또한 찌질한 내 일상의 기억들과 '원체험', 우리 세대 정체성의 '근원 찾기'로 설정했던 터였다.


20세기 초반에 제임스 조이스 같은 서구영미 소설가들은 '의식의 흐름', '개인주의', '초현실주의' 영역에서 '모더니즘'을 선도하며 '소설의 죽음'을 선언했다는데, 남아메리카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 1928~2014)는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로 이 모더니스트들의 오만함을 비웃어줬다. 반어법과 역설적 풍자로 일관하는 이 소설은 서구영미 제국주의에 의해 망가지는 '제3세계'의 현실을 전혀 진지하지 않게 우화적으로 서술한다. 나름의 의미는 담았겠으나 그냥 아무말 대잔치처럼 서술하는 마르케스의 방식은 군제대 후 접한 우리 소설가 성석제를 떠올리게 했고, 역으로 원래는 시인이었지만 서른살 중반에 소설가로 등단한 90년대 한국의 성석제의 '롤모델'이 혹시 60년대 서른아홉에 [백년 동안의 고독]을 썼던 남미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게도 했다.



마르케스처럼 전혀 진지하지 않은 문체로 한바탕 놀아제끼는 성석제의 소설들은 내가 정말 배우고 싶던 서술방식이었으나 이십대 후반의 그 당시 나는 그의 소설을 '리얼리즘' 범주에 넣지 않는 지극한 편협함으로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김소진의 '원체험'을 붙잡고 있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나는 아마도 원고지에 세 번 이상 베껴썼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김소진과 성석제 사이에서 한때 윤대녕 소설에 빠졌던 이유는, 윤대녕의 소설쓰기가 '은어'처럼 오랜 기억을 거슬러 오르는 '원체험'으로의 개인적 여행의 90년대식 표본이었기 때문이리라. '리얼리즘'을 표방했음에도 나는 앞뒤 안 맞게 '이상문학상'을 매년 거르지 않고 제일 먼저 찾아봤고, 90년대 초반 당시 우리의 20세기 초반 '초현실주의' 소설가 이상의 뒤를 잇는 소설가가 바로 윤대녕이라 생각했다. '과거회귀'를 모티브로 한 윤대녕은 역시 이십대 후반인 1990년에 [은어낚시통신]이라는 소설집을 냈고, 1994년에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라는 한편의 영화같은 장편소설로 강렬히 내 기억을 차지했다. 그리하여 윤대녕은 결국 성석제와 마찬가지로 따라쓰고 싶은 나의 소설가 목록에 오른다.



1999 늦가을, 나의 이십대 후반에 '신춘문예' 만약 기적처럼 당선된다면 발표할 '당선소감' 감히 미리 써둔  아니었지만, 그해 겨울 마지막으로 교문을 나올 때까지 내가 계속 생각했던 '당선소감' 제목은 '90년대 당시 과거 기억들의 부재(不在) 대하여' 정도였던  같다.  번도 '중심' 서보지 못한  '주변' 맴돌았던 나의 정체성은 '과거' 나와 우리 사회 주변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기원을 찾고자 하나, 김소진과 윤대녕의 소설에서처럼  실체를 결코 잡을  없다는 , 포도대장 이완이 다시 찾아갔을  어느덧 사라지고 없는 허생 같은  '부재(不在)'  소설의 모티브였다고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리얼리즘' 접목할지는  당시는 물론 '소설가' 결국 못된 지금은 더더욱 모르겠다. 다만,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여주인공들의 대표이름이자 '처녀성' 상징하는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근친상간으로 종족의 종말을 짓는 '우르슬라' 잃은 , 역시 종족의 종말을 예언한 기록을 보며 '낙원' 마콘도의 멸망을 목도하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좋은 시대'라는 )' 역시 느꼈던 것이 바로 '부재(不在)'였다는 생각이 든다.

'백년 동안' 지속되어   알았던 '낙원' 마콘도는 결국 '부재(不在)'했음에 다름 아니며, '마술적 리얼리즘' 통해 현실을 묘사했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결국 예전에도 없었을지 모르고 앞으로는 더더욱 없을 정체성의 '부재(不在)' 다름 아닐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을  '부재(不在)'들은 지금 현재에는 생생하게 존재하여  정체성을 단단히 붙잡고 있을지 모르니,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 또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 대머리 뒷통수를 보이기 전에 잽싸게   앞머리를 잡아채어야 할게다.


< 네메시스(좌) - 알프레히트 뒤러 / 오카시오(우) >



"그러나 미처 아우렐리아노가 마지막 줄을 다 읽어내기도 전에, 그는 자기가 결코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으니, 그것은 이 거울의 도시, 아니 신기루의 도시가, 바람에 날려 없어질 터이며,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가 이 원고를 해독하게 되는 순간부터 마콘도는 인간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여기에 적힌 글들은 영원히 어느 때에도 다시 되풀이 될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은 '백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 [백년 동안의 고독], 가르시아 마르케스, 1967.


***

1. [객지], 황석영, <창작과비평사>, 1974.
2. [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창작과비평사>, 1991.
3.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김소진, <솔>, 1993.
4.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윤대녕, <중앙일보사>, 1994.
5. [새가 되었네], 성석제, <강>, 1996.
6. [순정], 성석제, <문학동네>, 2000.
7.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창작과비평사>, 2002.
8. [백년 동안의 고독](196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옮김, <문학사상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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