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천치로 만들어 준 일체'를 경계할 것!
책소개) 우리를 '천치로 만들어 준 일체'를 경계할 것!
- [친일문학론], 임종국, 1966. -
"이 책에서의 친일문학이란 어떤 개념에서 사용된 어휘냐?
주체적 조건을 상실한 맹목적 사대주의적인 일본예찬과 추종을 내용으로 하는 문학이란 뜻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친일파들의 문학이라는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물론 그 같은 주체성을 몰각한 문학 속에는 소위 친일파들이 저술한 문학도 적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친일파 아닌 사람들의 추종적 작품도 제외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 이런 입장과 견지에서 앞으로 필자는 1940년을 중심한 전후 약 10년간의 주체성을 상실한 일본 추종의 문학을 고찰하겠다."
- 임종국, [친일문학론], <서론>, 1966.
1965년 6월 굴욕적인 한일협정 국면에서 시인 임종국 선생은 모두가 침묵하던 일제 '암흑기', '친일문학'을 실증하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의 서론처럼 '대동아성전승리'라는 이데올로기적 거짓선동과 '시류'에 휩쓸려 '주체적 조건'을 상실한 '추종적' 행위를 통해 본의 아닌 친일을 한 저명 인사들이 약 80% 정도라면, 문학계에서는 윤동주, 이육사, 김영랑, 폐허파와 청록파 시인 등 극소수를 제외한 90% 이상이 '친일문학'을 했다.
해방후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좌절되고 박정희 정권은 굴욕적인 한일협상으로 반민족 부역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카프 출신으로 친일문학을 했던 백철 같이 일제강점기를 '암흑기'로 부르며 부끄러운 친일의 과거를 감추려 한 거대 문학권력에 맞서 선배문학가 90%를 역사의 심판정에 기소한 첫 작업이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이다.
컴퓨터 상용화도 안되었던 시기 대학도서관에 상주하며 방대한 자료를 필사하고 육필로 하나하나 기록했을 임종국 선생의 노고와 친일부역자들의 기득권과 침묵의 카르텔로 공고해진 살아있는 문학권력에 맞서는 용기.
[친일문학론]을 통해 새삼 배운 두 가지이다.
[친일문학론] 전반에 인용된 친일작가들의 글들을 읽으면 굳이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해도 분노가 끓는다.
그러나 그 중 하나 꼽으라면 '조선어말살정책'을 시행한 미나미 지로 총독 앞에서 '조선말 전폐'를 주장했다가 오히려 일본인 총독한테 현실성 없다고 '전면 거부'를 당했다는 친일문필가 현영섭이라는 자. 가히 부끄러운 장면의 대표격이다.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독립운동을 하느니 '내선일체'로 일본의 한 지방이 되는 것이 조선을 위한 것이라 하여 적극적으로 친일을 한 이광수나 중추원 참의까지 하면서 재벌만큼 부를 축적했다는 최남선 등은 임종국 선생 덕분에 우리 역사에 이미 다 드러난지 오래니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친일문학론]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서정주는 '친일'이라기 보다는 다수 동포들과 같은 의견으로 '하늘에 따랐다(종천순일파)'고 변명하면서, 해방후에는 이승만 전기를 쓰고 전두환에게 '오천년 이래 최고의 미소'라 찬미했단다.
이런 '부역의 역사'가 바로 지금,
다수의 힘으로 박근혜 정권을 기어이 퇴진시킨 지금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청산해야할 '적폐'이다.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은 민족문제연구소 설립과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의 외로운 시작이었는데, 그는 <자화상>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해방이 됐다고 세상이 뒤집혔다... 이때 내 나이 17세. 하루는 친구놈한테서 김구 선생이 오신다는 말을 들었다.
'얘! 너 그, 김구 선생이라는 이가 중국사람이래!'
'그래? 중국사람이 뭘 하러 조선엘 오지?'
'이런 짜아식! 임마 것두 몰라! 정치하러 온대.'
'정치? 그럼 우린 중국한테 멕히니?'
지금 나는 요즘의 17세에 비해서 그 무렵의 내 정신연령이 몇 살쯤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식민지교육 밑에서, 나는 그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을 뿐 한번 회의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이제 친일문학론을 쓰면서 나는 나를 그토록 천치로 만들어 준 그 무렵의 일체를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임종국, [친일문학론], <자화상>, 1966.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우리 모두를 '천치로 만들어 준 일체'에 대하여 경계해야 할 것이다.
[친일문학론]의 서술형식은 '정치적-사회적 배경', '문화기구론-단체적 활동', '작가-작품론', '작품연표' 순서인데,
흡사 '본기', '세가', '열전', '표' 등으로 이뤄진 사마천의 '기전체' 같기도 하다.
(2017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