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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05. 2020

소설가 김소진, '90년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김소진, '90년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 故김소진, 추모10주기 기념, [소진의 기억]
 
 
"이데올로기(사상)의 중재로 문학작품은 사회형성의 역사와 관계를 가지며, 또한 작가의 개인적 삶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고유한 지위에 의해서도 그러한 관계를 가지며, 결국 특수한 문학작품은 문학연구의 본질적인 수단을 전달하는 문학생산의 역사의 적어도 한 부분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할 따름이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1966.
 
프랑스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피에르 마슈레는 철학과 과학의 관계를 정립한 1960년대 루이 알튀세 이론의 영향을 받아 문학의 '과학적 비평이론'을 정립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과학이 그렇듯 문학 또한 '총체성'을 지향하는 철학과는 다르기에 총체적 역사를 반영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회, 역사적 조건을 반드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견지하고 19세기 서구에서 '사실주의' 혹은 '리얼리즘'이 등장했는데요, 문학적 '리얼리즘'의 성과는 분명, 문학과 예술의 '편협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시대를 좀더 총체적, 비판적으로 그려내는 '문학적 기술'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오래전, 문학에 관심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할 때면, 항상 떠올리던 이름이 있었습니다. 바로 1997년에 35세의 나이로 요절한 소설가 김소진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그의 첫 단편소설집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선물하면서 그 속지에 이렇게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1970년대, 황석영,
1980년대, 방현석이 있었다면,
1990년대에는 김소진이 있습니다... 라고요.
 
[객지]로 유명한 황석영, 1980년대 노동현장소설가 방현석, 그리고 김소진... 나름대로 연대별 대표작가를 추천한 기준은 단연 '리얼리즘'이었습니다.
 
1980년대를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착각하던 후일담류 소설들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분단과 착취, 성적 억압의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 극복하고자 했던 수 많은 문학적 '아버지'의 관념적 이미지를 바로 '비루하기 그지없는' 우리 옆자리의 실재로서 구체화시켰던 김소진의 '리얼리티'는 오랜 세월 우리역사와 함께해 왔던 우리 민중 주변의 이야기 자체였습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내내 길음동과 미아리 산동네에서 자라난 작가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들, 역사와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난 도시빈민의 이야기는 바로 저의 이야기였기에 한때 주접스레 단편소설 몇 편을 쓰지않고는 못베기게 했던, 우리시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김소진을 오랜만에 기억해 봅니다.
 
***
 
1. [소진의 기억], 김소진의 지인들 엮음, <문학동네>, 2007.
: 1990년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김소진 작고 10주기를 맞아 고인의 문우들이 주축되어 동료작가들로부터 글을 받아 묶어낸 책입니다. 1997년에 군에서 김소진의 죽음을 신문을 통해 전해들은 후 얼마간 꿈에 많이도 등장하더군요. 10년 후 지금 신문을 통해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몇 번 꿈에 나타난 걸 보니 아직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제게 조금은 남아있나 봅니다. 대부분의 글들은 작가들이 자기들끼리 지닌 기억이나 회한 등을 나누는 이야기들이라 독자들이 읽기에는 어거지로 추모글을 쓴 것처럼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그 중 볼만한 것들은 오랜만에 읽어보는 김소진에 대한 비평 몇 편이었고요, 무엇보다 읽는 내내 즐거웠던 것은 한때 그를 동경했던 지난 시절을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2. [열린사회와 그 적들], 김소진 창작집, <솔>, 1993.
: 김소진 최초 단편소설집입니다. 199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작 [쥐잡기]부터 미발표작까지 총 11편이 수록되어 있고요, 표제작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반동의 대표텍스트인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저서를 패러디하여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1990년대의 민주화운동권 세력이 군부독재 못지않게 배제했던 이 사회 최하층 민중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김소진이 낸 창작집 중 단연 최고의 책이었습니다.
 
3. [고아떤 뺑덕어멈], <솔>, 1995. / [자전거도둑], <강>, 1996. /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강>, 1997. / [장석조네 사람들], <고려원>, 1995. / [양파], <세계사>, 1996.
: 이상의 책들이 제가 군에서 몰래 읽었던 김소진 소설들이었는데요, 지금 제게 없는 걸 보니 아는 사람들한테 이미 다 선물한 듯 싶습니다. 장편소설 [양파] 빼고 나머지 책들은 다 추천하고 싶습니다만, 단편소설집 중 [자전거도둑], 연작장편인 [장석조네 사람들]을 좀더 추천하고 싶네요.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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