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가장 현실적 '리얼리스트', 방현석
'80년대 가장 현실적 '리얼리스트', 방현석
- [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창작과비평사>, 1991.
"창조적 리얼리스트... 사유와 감정이 사회적 존재로부터 형성되는 과정을 알며, 또 체험이나 감정들이 현실이라는 전체적 복합체의 부분이라는 점을 안다. 이때 그는 리얼리스트로서 그러한 부분이 삶의 전체적 복합체 속에서 어디에 속하며, 사회생활의 어느 부분에서 생성되었고, 무엇을 지향하게 되는지 등등의 문제를 보여준다."
- 게오르그 루카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1938.
'리얼리즘'은 '사실주의'와 다르다.
서양에서는 19세기 과학의 발전과 함께 기존 '낭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사실주의'가 시작되었으나, 서양사조가 여과없이 이식되던 식민지 조선에서는 '사실주의' 이후 '낭만주의'가 유행했는데, 우리 문학사에서 '사실주의'란 그 객관적 묘사의 자연적 확장이라는 '자연주의'와 구별이 모호했다.
그로 인해, 원래 '사실주의' 원어로서 '리얼리즘'은 번역되지 못했고, 그냥, '리얼리즘'이 된다.
헝가리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에게 "문학(예술)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다.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기본으로, 복합적인 삶의 보편적 '총체성'을 개별적 '구체성'으로 '반영'하는 것이 '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문예사조에서 "문제는 리얼리즘"이었다.
"리얼리즘적인 것은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복합체를 발견하며... 계급의 관점에서 글을 쓰며... 따라서 민중성과 리얼리즘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들은 관대하면서도 극히 조심스럽게 선정되어야 한다... 기존의 리얼리스틱한 작품들이나 민중적인 작품들로부터만 그러한 기준을 끄집어내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경우에는 그저 형식주의적인 기준들 밖에, 형식적인 리얼리즘 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루카치에 대한 반론], 1938.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루카치의 '문예론'에 대한 반론으로, '리얼리즘'은 '계급적 관점'에서 현실을 '반영'하나 기존의 '민중적인 작품'들로만 기준을 삼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개인과 집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리얼리즘'의 '문제'는 단순한 '사실주의'의 그것과 다르다.
우리 현대 소설 문학사에서 나는 '리얼리스트'를 단 세 명만 뽑는다.
1970년대, 황석영.
1980년대, 방현석.
1990년대, 김소진.
21세기 들어서 '리얼리즘'의 의미는 더 확장되었거나 문예사조로서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1970년대 [객지]를 썼던 황석영이나, 1980년대 [내딛는 첫발은]을 썼던 방현석이나, 1990년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썼던 김소진에게서 추출된 공통점은 '복잡한 현실에서 노동하는 다수 사람들의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심경들과 그들의 지난한 현실들'이었다.
방현석은 소설창작을 전공하고 인천에서 공장노동과 노동조합 활동를 하면서 그 경험을 토대로 1988년 [내딛는 첫발은]이라는 단편소설로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소설가다.
뜨거웠던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파도가 지난 후 자본의 개별적 역습, 그리고 노조운동의 패배와 승리의 과정에서 고뇌하는 노동자들의 심리와 현실을 그려낸 단편소설들을, 역시 치열했던 1991년에 [내일을 여는 집]으로 묶어냈다.
해고와 복직투쟁의 과정을 그린 [내일을 여는 집], 조선소 투쟁을 담은 [지옥선의 사람들], 굴종을 깨고 일어나는 파업 과정을 묘사한 [내딛는 첫발은] 등 당시 노동자들이 '노예'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당당한 '노동계급 주체'로 우뚝서는 모습들 말이다.
물론,
방현석의 '80년대 소설들이 '리얼리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당시 남한의 구체적 현실이 배경이 되었고, 당시 우리 현실에서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복합성'을 발견하고 그 특수한 현실을 '반영'한 산물이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방현석은 같은 어조를 유지하면서 1999년에는 한국 현대 노동운동사(1970~1994)를 [아름다운 저항]으로 엮었는데, 1970년대 청계천 노동운동부터 1980년 광주, 1990년 울산 골리앗 투쟁, 1991년 전노협 건설과 1994년 전기협/전지협 파업까지 우리 노동운동 역사를 정리하기도 한다.
21세기에 아마도 '폐기'되었을지도 모를 우리의 '리얼리즘'은 그 본질이 '현실의 반영'인 한 여전히 '확장'되어야 한다.
"정식이 던진 스패너가 공중을 날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개처럼 살거야? 언제까지?'
...
15호기, 16호기가 꺼졌다... 스패너가 유리창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기계소리 대신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잇따랐다.
'나가자.'
누군가 외쳤다. 나가자. 가자. 나가자. 한순간이었다. 눈물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모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달려나가는 사람들의 손에 금형 받침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 방현석, [내딛는 첫발은], <실천문학 봄호>, 1988.
내게 소설가 방현석은 등단작 마지막 장면으로, '80년대 가장 현실적인 '리얼리스트'로 언제까지나 기억되고 있다.
***
1. [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창작과비평사>, 1991.
2. [아름다운 저항], 방현석, <작은책>, 1999.
3. [당신의 왼편], 방현석, <해냄>,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