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는 '여행'에서 '리더십'의 '인문학'적 개념
'역사'라는 '여행'에서 '리더십'의 '인문학'적 개념
- [플루타르크 영웅전](기원후 1~2세기), 플루타르코스, 1517(첫출판)
인류 문명에서 '최초의 역사가'는 아마도 최초의 '보편적 역사기록'을 문자로 남긴 '작가'들일 것이다. 서양 '최초의 역사가'가 남긴 기록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동양은 기원전 1~2세기 중국의 사마천 [사기] 등을 꼽는데, 인류 역사가 개개 인간 군상들의 자취라는 점에서는 동양의 사마천 [사기]에 비교되는 기록이 바로 기원후 1~2세기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을 열었던 테세우스와 로마 전제정을 건설했던 로물루스로부터 시작하여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 부르투스 등 이름은 익히 들어봤을 고대 서양의 위인들을 거쳐 로마황제 갈바와 오토 등 약 50여 명의 '영웅' 또는 '지도자'들의 생애를 적어내려간 '열전'이다. 또한 테세우스와 로물루스를 각각 소개한 후 <테세우스와 로물루스의 비교>의 형식으로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남기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기전체'의 [사기]에 비할 수 없이 '열전'으로만 이루어져 '통사'로서는 가치가 없을지라도, '하늘의 도'라는 화두를 갖고 각 시대와 인물을 평가한 사마천 못지 않게 '신의 뜻' 또는 '신탁'이라는 기준으로 플루타르코스는 '영웅'들을 비교평가하고 있다.
각 장은 "테세우스 : 아테네의 정치가, 군인." 등의 단문으로 해당 인물을 소개하면서 시작하는데, 어릴적 '세계위인사전'에서 간략하게 위인들을 설명하던 것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 기원이 [플루타르크 영웅전]인 듯 하다. 추측컨대, '역사 교과서'로 많이 활용되며 전승되었지 않을까 싶기도 하며, 르네상스 시기인 1517년 피렌체에서 최초로 인쇄되었다.
"테세우스 : 아테네 정치가, 군인. 아테네 건설자. 펠레폰네소스 지방 펠로포스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이게우스, 어머니는 아이트라. 해라클레스와는 사촌. 바다의 신 포세이돈 아들이라고 한다. 영웅심이 강하고 용감했으며, 그리스에서 폭군을 몰아내고 여러 차례 큰 사업을 일으켰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테세우스(전기)>
"로물루스(BC 8세기) : 로마의 정치가, 군인. 레무스와 쌍둥이 형제이며 라틴 민족을 해방시킨 사람. 재위 38년째 되던 해, 염소늪에서 행방불명되어 퀴리누스 신이 되다. 미천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그리스의 여러 민족을 하나로 단결시켜 로마를 세웠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로물루스(전기)>
"테세우스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악당들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없앴다. 그러나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폭군 아물리우스가 백성들을 괴롭혀도 자기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 않는 한 상관하지 않았다... 테세우스와 로물루스는 타고난 정치가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전통적인 왕으로 끝까지 살아가지 못하고 길을 벗어났다. 테세우스는 민주적으로 기울었고 로물루스는 독재로 기울었다. 두 사람은 상반된 정열을 갖고 있었지만 똑같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통치자의 가장 큰 임무는 통치권을 유지하는 일이다... 테세우스가 너그러움이 지나쳤다면 로물루스는 오만과 잔학함으로 인해 실정을 저지른 것이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테세우스와 로물루스의 비교(대비열전)>
[영웅전] 첫 장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을 열었던 테세우스와 그리스로부터 라틴족을 해방시키고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의 '전기'와 두 인물의 '대비(비교)열전'이다.
테세우스가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숨겨진 아들로 '신의 아들'로만 알고 힘자랑하고 살다가 성년이 되어 부러진 칼조각을 홀어머니로부터 받은 후 한 나라의 왕인 아버지를 찾아가는 내용은 우리의 고구려 동명성왕 주몽을 찾아가는 북부여의 유리왕 이야기와 닮았다. 테세우스는 아테네 왕정을 없애고 민주정을 선포한 인물로서 민중들을 괴롭히던 악당들을 만나 그들의 방식으로 물리쳤고 크레타의 미노스왕에게 자진하여 노예로 팔려가서는 다른 노예들을 해방시켜 본국으로 돌아왔으며 '반인반우' 미노타우로스를 몽둥이로 때려잡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민중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으나 방탕한 여성편력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데, 이후 '반신반인' 사촌 헤라클레스가 지옥에서 '망각의 의자'에 앉혀진 테세우스를 일으켜 세워주었다고 한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전해지듯 귀족이나 왕족이 아닌 미천한 신분으로 아마도 '이리'를 숭배했던 테무진(칭기즈칸)처럼 '늑대'를 숭배했던 '야만인'이었을 수도 있다. 이 쌍둥이 형제 역시 힘과 전쟁으로 로마를 건국하고 로물루스는 형제인 레무스를 제거하면서까지 전제정을 확립하는데, 이 또한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주몽의 아들들이었으나 유리왕에 밀려 한반도 남쪽으로 이주한 온조와 비류의 이야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한성(서울)에 자리잡은 온조는 미추홀(인천)에서 실패한 비류의 무리들을 결국 흡수합병하면서 기존 마한 열국들을 통일하고 백제를 건국했다.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정치체제의 등장이라는 공통점이다.
"수많은 민족들이 세계의 패권을 놓고 암약하며 경쟁하던 [영웅전]의 시대는 언어, 인종, 국경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진 오늘날과 무서우리만큼 닮아 있다. [영웅전]은 수천 년 전 현재와 닮은 생존경쟁 무대에서 살아남은 승자들의 이야기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의 마지막 구절을 완성한 뒤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인간은 누구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영웅이 될 수 있다네. 영웅이란 자기 내심의 덕과 지조를 겁내지 않고 발휘한 자이기 때문이지.'"
-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라], 김욱, 2013.
인문학 저술가 김욱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난세에 읽고 '리더십'을 길러서 사마천의 표현을 따라 "깃털 같이 가벼운 삶을 태산 같이 무거운 삶"으로 만들라고 권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리더십'은 '관리능력' 따위가 아니라, 인생를 주체적으로 헤쳐나가는 능력이다.
"리더(leader)란 단어는 본래 '여행'을 뜻하는 고대 라틴어 'laedan'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리더의 어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본다면 '리더십'이란 '여행하는 자가 품어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인생은 여행이며, 인간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에게 예속되기 보다는 자유로운 상태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해주는 최선의 덕목을 한 단어로 압축해본다면, 그것은 바로 '리더십'이 될 것이다."
-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라], 김욱, 2013.
'리더십'은 조직을 관리하고 인력을 운영하며 타인을 지배하는 '경영학적' 개념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개인의 '여행'에서 더 자유로운 삶을 위해 스스로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문학'적 개념인 것이다.
인류의 집단적 '여행'인 '역사'를 통해 평범한 우리 다수가 스스로의 '자유로운 주체'가 되는 각자의 '리더십'을 체득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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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플루타르크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홍사중 옮김, <동서문화사>, 2007.
2.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라], 김욱, <쌤앤파커스>, 2013.
3. [역사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돌베개>, 2018.
4. [삼국사기](12세기),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