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아온 주말이다.
물론 기분 탓이다. 주말은 매주 온다.
오늘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왜냐면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니까.
알람에 맞춰 눈을 뜨고, 조금은 빈둥거리다가 간신히 일어났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어제 골라놓은 옷을 입었다. 오랜만에 하는 외출인 만큼 화장도 꼼꼼히 했다. 들떴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다.
광화문은 오늘의 목적지, 12시까지 가야 한다. 11시 50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근데 이상하게 단톡방이 조용했다.
'애들아 오고 있지?'
'응...? 내일 아냐..?'
'....?'
미쳤다고 생각했다. 약속 장소 앞에서 한창을 멍하니 서있었다. 솔직히 이런 일 있을 수 있는데. 뭐 날짜 정도 헷갈릴 수 있는데. 그렇게 심각한 일도 아닌데. 근데 나는 그만큼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서, 절망에 빠져버렸다. 하루를 망친 것 같았다. 모든 게 꼬여버렸다. 멍청한 내 자신을 탓하다 보니 눈물도 쪼금 날 뻔했다. 눈물 날 뻔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더 짜증 났다.
자칫 망쳐버릴 수 있는 소중한 토요일을 나는 어떻게 해서든 제대로 고쳐놓아야 했다. '그냥 집에 가서 푹 쉬어야겠다.'라고 생각할 만큼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머리를 굴려서 내 기분을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다.
1. 밥을 먹자. 배고픈 상태로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2. 책을 사자. 교보문고가 바로 앞이다.
3. 서촌 구경을 가자. 분명 건질 것이 있을 것이다.
일단 가성비 좋지 않은 밥을 사 먹었다. 오늘은 가성비보다는 가심비를 따져야 마땅한 날이다. 그리고 교보문고에서 책을 샀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제목부터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책이다. 그러고 서촌의 소품샵들을 둘러보았다. 살 건 딱히 없었지만 눈이 즐거워졌다.
그러곤 적당한 카페를 찾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요새 들어하는 고민들에 대한 해결책이 담겨 있는, 꼭 나를 위해 쓰인 것 같은 책이었다. 평일에 쌓였던 모든 피로와 의문이 좋은 책 한 권으로 싹 풀리는 듯했다.
이쯤 되니, 오늘 하루 오히려 좋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혼자서 밥을 먹고 거리를 거닐어본 게 얼마만이더라. 이토록 책을 집중해서 읽어본 적이 언제더라. 이게 정신 승리인지 진심인지는 분간은 안되지만, 어쨌든 기분은 나아졌다. 오늘 하루를 포기하지 않은 내 자신이 기특했다. 엉망이 될 뻔했던 소중한 토요일을 살려냈다.
오늘 자칫 하루 종일 바보 같은 내 자신을 탓하며 우울했을 수도 있다. 고작 이런 일에 우울해하는 내 자신이 유치해서 더 우울해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법 현명한 나는 오늘 하루를 손해보지 않게끔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이로써 나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
1. 나쁜 기분에 지배당하지 말고 빨리 빠져나오자. 손해다.
2. 무엇이든지 해결책은 있다. 포기하지 말자.
3. 오히려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좋은 책을 만난 것처럼.
다음번에 또 일정을 헷갈리면 써먹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