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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May 05. 2024

조제 /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

김종관 <조제>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십수 년 전, 옛 연인과 마지막으로 함께 본 영화였다. 겨울과 봄이 섞여 있던 즈음이었고,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 안에 있던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그때 우리의 인연은 끝자락이었다. 우리는 ‘조제’가 개봉하면 보러 가자던 약속을 지키려고,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스크린 불빛을 바라보다 종종 고개를 돌려 연인의 옆얼굴을 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마지막이라고 여겨서 그랬을까. 이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다. 영화관에 가면 영화만 보았고, 여행을 가면 여행지만 눈에 담았었다. 그게 잘못인 걸 그때는 몰랐다. 20대의 나는 자꾸만 딴 곳을 보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사귀면서도 옛 짝사랑의 미련에 이끌렸고, 누구도 전심전력으로 사랑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상처만 남겼고, 나 자신도 상처에 갇히게 되고 말았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 <더 테이블>을 인상 깊게 봤던 터라, 그가 ‘조제’를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기대가 컸다. 하지만 개봉 당시에는 보지 못했다. 캄캄한 영화관에서 혼자 조제를 다시 마주할 힘이 그땐 없었다. 어젯밤에서야 넷플릭스에 올라온 <조제>를 발견하고, 하이볼 한 캔에 기대어 영화를 봤다. 원작과 아주 많이 다른 영화였다. 원작에서 이케와키 치즈루(여주 - 조제 역)와 츠마부키 사토시(남주 - 츠네오 역)는 둘 만의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 반짝이고, 아련하고, 따스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구축한다. 그 세계가 환상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사랑은 끝났다. 새 <조제>에서 한지민(조제 역)과 남주혁(남주 - 영석 역)은 시종일관 현실에 머문다. 그다지 아름다운 것도, 크게 애틋한 것도 없다. 원작에선 통통 개성이 넘쳤던 조제조차 현실의 중압에 짓눌린 장애여성의 틀 안에서 맴돈다. 청춘의 에너지라도 가득했던 원작의 남주인공은 사라졌고, 남주혁 배우가 연기한 영석은 이미 자신부터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원작은 비록 한 순간에 불과하지만 사랑이라는 환상으로 현실의 장벽을 뚫어내 본 청춘들의 이야기다. 그에 비해 김종관 감독의 리메이크작은 사랑이라는 환상조차 꿈꿀 수 없는 마이너리그 청춘들의 ‘익숙한 포기와 무력감’을 그려내고 있다. 20여 년 사이 세상은 ‘사랑조차 가능하지 않은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원작에서 사랑의 경험으로 살아갈 힘을 얻고, 전동 휠체어에 몸을 맡겼던 조제는 리메이크작에서 그 전동 휠체어가 고장 난 시점에 남주혁을 만난다.



원작 조제의 집은 귀엽고 따뜻하다. 리메이크작 조제의 집은 침울하고 차갑다


원작에서 낭만적 사랑의 느낌을 고조시켰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은 비중이 크게 줄었다. 나는 원작을 통해 사강의 팬이 되었었는데…



영화로서 어느 쪽이 더 좋으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원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더 좋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 청춘은 <조제>에 훨씬 더 가까웠다. 지난 세월 동안 ‘조제’를 생각하면 분노와 불안, 슬픔, 그리고 마지막 한 톨의 연정이 뒤섞여 있던 옛 연인의 창백한 옆얼굴이 같이 떠올랐다. 한지민 배우가 연기한 조제의 얼굴이 딱 그 얼굴이었다. 스스로 선하다고 착각하지만, 그저 무책임하고, 무능하고, 무지할 뿐인 남주인공의 모습은 딱 그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 언제든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20대 남자의 표정을 남주혁 배우는 정확하게 연기했다. 20대의 나는 허황되게도 내가 누군갈 구원할 수 있는 강자라 믿었다. 그러나 사랑에 뛰어들고 얼마 뒤면, 사실 내가 가장 약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것도 더 나아지게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지킬 수가 없어서 점점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점점 쓸쓸할 뿐이었다. 밥 한 끼 먹을 돈도 없는 데 연애는 무슨. 형편없는 나 자신을 인정할 용기가 없어서, 허세를 부리고, 상대를 탓하고, 나 자신을 평가하지 않아도 되는 가공의 로맨스로 도피했었다.


지금의 나는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지금의 나라면 ‘조제’를 전심전력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영원히 곁에 있겠다는 약속을 지켜낼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다. 여러 번의 만남과 이별을 겪은 뒤 정의 내린 사랑이란, 결국 ‘약속을 지키는 힘’이 아닌가 싶다. 사랑의 약속은 일관된 의지력과 건강한 체력, 적당한 재력이 있어야 유지된다. 마음이란 바닷물처럼 늘 요동치고, 세상을 떠도는 것이다. 어제의 열정이 오늘도 계속될 수는 없다. 사랑에도 계절이 있고, 낮과 밤과, 새벽과 저녁이 있다. 당신을 사랑하기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책임지고, 그 약속이 그저 의무가 아니게끔 서로의 시간을 가꾸고, 문제가 생겼을 때 도망가지 않고 마주하고, 함께 말을 나누며 세월을 견뎌나가는 것. 겨울 뒤에 돌아오는 봄의 꽃봉오리를 마침내 둘이서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겠다. 아이고, 너무 어렵다.


2024. 5. 5.





* <더 테이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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