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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물방울 Mar 27. 2020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을, 20살 나에게 보내는 편지

우울증과 조울증을 겪을 너에게 보내는 마음...


어떤 말을 써야 할지 몰라 빙빙 돌다 어렵게 컴퓨터 앞에 앉았어. 다른 시절도 아닌 20살의 너에게 쓰는 편지라니, 내가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갈팡질팡 못하고 있네.



사람들에게 파릇파릇한 20대로 돌아갈래? 아니면 30대 중반의 나이로 돌아갈래?라고 물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20살을 선택하겠지. 하지만, 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살 초반이야. 그 사실을 내가 알기에, 넌 참으로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대의 너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려나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이건 방 한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을 너에게 보내는 편지야.



대학입시만 끝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대비 없이 주어진 자유는 참 무거웠어. 그렇지? 넌 오히려 재수를 하는 친구들을 한없이 부러워하며, 홀로 쓸쓸히 대학을 다니고 있겠구나. 여대를 다니는 탓에 참으로 학교 가기 싫어했던 기억이 든다. 게다가 친한 친구들의 미모에 치여, 외모 콤플렉스도 한껏 가지고 있었잖아. 그깟꺼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너에게 참으로 무거운 짐이었기에 난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




난 너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잘 몰라서 머뭇거리네. 어떤 말을 해줄까? 충고를 해줘야 하는지, 위로를 해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너에게 희망이 되는 사실 몇 가지를 알려 주로 고해.



30대 중반의 너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살고 있어. 부모님께도 받지 못한 따스한 애정을 받으면서 잘 살고 있지. 넌 어차피 남자 친구란 존재는 헤어질 거라고 생각했잖아. 그래서 왜 만나는지 모르겠다며, 사람 자체를 만나는 걸 기피했었잖아. 근데, 사람 인연 하나하나 마다 다 뜻이 있고, 깊이가 있더라. 너에게 손 내미는 많은 사람들의 온정 속에서 너의 가치가 피어나는 거더라고. 늦게도 깨달은 사실이 아쉽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20살의 넌 왜 자꾸 속상하게 넌 집에만 웅크리고 있었을까?



30대 중반의 너는 생각보다 더 통통해졌어. 넌 지금이 인생 최대의 몸무게라며 자책하고 있는 거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충격이겠지? 근데 그거 알아? 나의 마음은 참으로 평온해. 몸무게의 수치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너에게 조금 더 자유로워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넌 아직 모를 사랑이란 힘이라는 거야. 사람으로부터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너에게는 세상이 한없이 불안하고 두려움이 가득하겠지. 하지만 세월과 시간이 켜켜이 쌓아준 사랑과 추억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단다.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거, 참 축복이야.



아무것도 안 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네가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내가 다 하나하나 알려줄 수 없는 것 같아. 그건 겪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 온몸, 온 힘을 다해 버텨야지만 겨우 견딜 수 있는 무게니까. 네가 앞으로 겪을 우울증이라든지 조증이라든지 그런 병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게. 그냥 살아 있어 줘, 그러면, 너에게도 꽃 같은 봄날이 올 거니까. 너의 마음에도 평안이 찾아올 거니까.



20살이 된 너에게 30대 중반의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넌 더 행복해질 거라고, 넌 일반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힘든 기분변화를 겪을 거고 현실 인식도 다르게 느껴지는 때도 있을 거지만, 너에겐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 넌 글을 쓸 수 있게 될 꺼고, 그 글로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의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20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의 여유도 있을 거고,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도 한 층 더 깊어질 거라고, 그러니까 그냥 견뎌줘.




오늘은 사랑하는 신랑이랑 집안 대청소를 했어, 소파를 들어내고 닦고, 네가 지금 있는 서재방도 구조를 바꾸었지. 산뜻한 기분이 든다. 아직도 넌 방 한 구석에서 웅크리며, 인터넷 세상만 까딱 까딱 바라보고 있겠지? 한 발자국만 더 세상을 향해 내딛고, 조금만 더 사람들에게 기대는 연습도 해봐. 어쩌면 힘든 폭풍 속에서, 우울이란 병 앞에서, 조증이란 폭우 속에서도 넌 빛나고 값진 것들을 찾아낼지도 모르니까.



20살의 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삶의 무게를 홀로 견디는 너에게 이 편지를 보낸다.




**  이 글이 우울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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