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물방울 Nov 15. 2019

아무것도 안 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우울증 수기

아무것도 안 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시절 이 있었어. 어른들은 말하지. 20대는 진짜 햇살이 쨍쨍 비추는 것처럼 좋은 때라고, 젊을 때는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다고. 하지만 나의 20대는 어두컴컴했고, 인생의 30대 40대 50대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의 무게를 지탱해야 했던 시절이었어. 물론 온몸으로 저항하지 않았지. 아니 오히려 온몸으로 저항했을지도 몰라. 음식을 통해 물을 통해 들어간 영양소가 피가 되어 온몸을 돌아다니는 동안, 난 방 안 한 구석에 꼼짝 않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세상 모든 우울을 담당했지. 나의 미래의 삶의 무게를 감당했던 것 같아. 움츠린 채 말이야. 밖에 삶을 살라고,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워도, 방 한구석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어. 나의 마음이 심해의 커다란 추가 끈 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계속해서 깊은 바닷속, 바닷속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런 나에게 한순간 짐이 가벼워지는 때가 있었어. 그건 바로 모두가 잠드는 밤 11시경이었지. 방 한구석에서 해가 있는 동안도 자는 듯 마는 듯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지만, 밤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잠자는 시간을 갖는다는 게 좋았어. 나만 홀로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아니란 말이지. 다른 사람들은 활기찬 아침을 좋아한다지만, 난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잠드는 밤이 그나마 나의 삶의 무게가 덜했어. 그냥 나도 똑같이 자면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



아무것도 안 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절, 난 그래도 좋은 대학에 다녔어. 하지만 3개월 학교 다니는 시절이 지나면, 3개월의 방학은 암흑이 낀 느낌의 집안의 백수생활이었어. 가끔은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녔지. 쇼핑이라던지, 학교의 홈페이지에서 주로 놀았는데, 실제적으로 만져지는 사람들이 아니었지. 그냥 거리에서 옷깃을 스치는 것보다 더 연한 인연의 사람들이었어. 그렇게 연락처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을 모니터 안에서 들여다만 봤어. 운동을 하려고 해도, 무언가 새로운 활동을 찾는 것도 단지 인터넷 검색창에서 찾아봤지. 용기 내어 다음 카페에 가입한다 해도, 딱 거기서 멈췄어. 용기가 나지 않아,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지. 무언가를 하긴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시절이었지.



두려웠어. 심지어 친구들을 만나는 것조차도.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표준 체중을 가진 나였는데, 왜 그렇게 뚱뚱하다고 생각했는지, 친구들보다 5~7kg 정도 더 나가는 내가 부끄러웠지. 더군다나 날씬하고 예쁜 친구들은 길에서 헌팅도 정말 자주 받아서, 자주 이야기를 접했지. 연락처를 물어보고, 그녀들과 사귀고 싶어 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난 초라해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들어오는 날은 더 자존감이 떨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어. 잠을 자다가도 여러 번 깼어. 열등감의 분출이 그런 식으로 나타났나 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한 결과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만들어 버렸지.


 

 이 모든 것이 나의 '우울증'이었다는 걸 안 순간은 내게 '조증'이라는 큰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조증'은 도파민이 많이 분출되어 현실감각이 타인과 다르게 느껴지는 병이야. 나는 세상의 종말 같았고, 주변의 가까운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이상한 짓을 많이 했지. 아빠의 주식을 모두 사고팔았다가. 다시 한주로 모든 돈을 몰아서 샀고, 친구들에게 예수님의 종교적 이야기를 상황 판단하지 않고 했으며, 수업시간에도 성경책을 눈에 불을 켜고 읽었어. 그 이외에 한 이상한 행동도 많았지. 결국 난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되었고, '양극성 장애(조울증)'이란 진단을 받았지. 그때 깨달았어.  



나의 학창 시절이 우울증에 인한 것이었구나.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건, 사실 아픈 거였구나!




그냥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 심각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거나, 삶의 무게가 너무 견디기 힘들게 무겁다면, 그건 아픈 걸 수도 있다고.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이나 상담 또는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고. 그냥 그 한마디를 남겨두고 싶어. 나처럼 돌아 돌아가지 말라고.






* 우울증이 심하면, 병원에 가서 진단받기를 바라요. 마음이 아픈 것도 아픈 거니까요. 우리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아요.

    

이전 02화 잠을 깨기가 쉽지 않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