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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물방울 Nov 11. 2019

어쩌면 난 평생 엄마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출처: Pixabay


 마트에서 엄마를 목놓아 찾는 아이가 있었다. 생활용품이 놓은 선반의 골목에서 길을 잃은 듯 했다. 겨우 엄마를 찾고나서, 눈물을 글썽이며 울었던 것을 멈췄다. 또 다른 어린 여자아이는 과자를 사달라는 눈빛으로 엄마, 엄마를 조용히 부르며 손을 잡고 내 앞을 지나간다. 그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은 스타벅스. 주말이라 이곳에도 아이손님들은 찾아왔다. 하나같이 가족과 함께였고,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눈빛교환을 한다. 아이가 귀여워 그저 바라본다. 세상에 못생긴 아이는 없다. 아이는 다 사랑스럽다.



드디어 나도 인싸


 결혼을 한 건 내 인생의 행운이다.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던 내가 인사이더가 될수 있는 기회였기에. 대학교 때 친구들이 남친이야기 하면, 난 조용히 있어야 했다. 여대를 나오기도 했고, 남친이란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신랑을 만나게 되고, 연애를 하면서 나는 할 말이 많아졌다. 친구들과의 접하는 면이 커져서 그랬을 것이다. 고백은 어떻게 받았고, 어떤 데이트를 즐기고 있으며, 생일 선물은 무엇을 받았는지등을 이야기 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는 프로포즈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결혼에 대한 각종 수다가 날 원의 중심으로 데려다 놓았다. 이제 더이상 난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다. 





지금 친구들의 최대 이야기는 육아이다. 육아가 힘들다지만,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은 나에게도 있기 마련이다. 가족이라면 항상 3명에서 4명의 단란함을 꿈꿨다. 아이가 하나나 둘은 있어야 진정한 가족이 된다고 생각했던, 교과서에서 본 주입식 교육 때문은 아니었다.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면서 완성된 가족 공동체가 좋았다. 그냥 사람을 만나고, 그리워하는게 나의 주된 일이었기에 부부만 사는 가족을 꿈꾼 적은 없다. 


어쩌면 난 평생 엄마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겪는 병(조울증) 때문에 먹는 약. 약이 태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때문에 아이를 단념했다. 어쩌면 난 평생 엄마가 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사실은 두 번의 단약 시도가 있었다. 둘다 의사 선생님의 상담아래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정신과 약이 태아에 안좋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온전히 정상적이었고, 충분히 시간을 거쳤다. 그러나, 두번의 단약 끝에 왔던건 병의 재발이었다. 그래서 난 차차 마음을 접었다. 사실 아이라는 꿈은 한번에 마음 먹는다고 싹 잘려지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은 반정도는 마음으로 받아들인 상태이다. 이대로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며, 아이 없는 삶, 육아 없는 삶을 사는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다.


또 다시 아웃사이더.


이제 남편이나 신랑에 대한 이야기는 한물 갔다. 친구들 사이에 최대의 화제거리는 바로 아이이다. 아이의 교육부터 시작해서, 물건과 장난감까지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한번은 두시간 동안 두돌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에 대한 이야기만 듣다 왔다. 기억도 안나는 브랜드 이름과 어디 제품이 좋고, 어떤 싸이트가 저렴한지에 대한 이야기들. 그 시간동안 나는 앉아있었지만, 처절히 깨달았다. 다시 아웃사이더구나.



출처: Pixabay



어쩌면,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상처일 수 있구나.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을 젊은 남성들이 친근히 부를 때가 있다. 이모님 이라고 부르는게 대다수지만, 종종 어머님이라고 부를 때도 많다. 엄마라는 자격은 정말 엄격한 기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쉽게 어머니가 된다고 생각하나보다. 친하고자 하는 의미의 단어이다. 하지만, 내가 50대가되고 60대가 되어서 자식이 없는데, 다큰 20대 성인남성에게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한번 상상해본다. 


친구의 아이가 예쁘다. 아이의 사진이 참 좋다.  하지만, 어쩌면 난 평생 진짜 내 아이에게 엄마라는 소리를 못 들을 지도 모른다. 미래를 단정지을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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