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슈즈 만들기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내 인생 격변의 시기에 받은 가장 인상 깊은 선물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웨딩 슈즈라고 말하겠다. 그 구두에는 신비로운 역사가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아졌는데, 난 쇼핑을 할 때 강매를 당할 때가 종종 있다. 결혼 전 집 앞에 옷 가게 가끔 들렸다. 사실 옷을 사기보다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곳, 수다 떨 수 있는 곳이 필요해서 들린 적이 더 많았다. 가게의 옷 가격은 보세치고 좀 비쌌고, 내 스타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외롭고, 심심해서 가끔은 들렸던 장소였다. 그 가게는 신비한 마법이 걸려있었다. 바로 들어가면 무언가를 사들고 나오게 되는 것이다. 뭐에 홀린 듯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봄 햇살이 나는 어느 날, 심심해서 집 앞에 위치한 옷 가게에 들어갔다. “이 옷 잘 어울리겠다. 입어봐~” 꺄르르 웃으며 건네는 사장님의 목소리였다. 한참을 옷을 구경을 하다가 갑자기 구두에 눈길이 갔다. 이것저것 봐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는데, 옷 가게 언니가 한 구두를 추천해 주는 것이었다.
“이 구두가 예쁘고 좋아. 나중에 웨딩 슈즈로 쓰기에도 좋고.”
간혹가다 어떠한 말이 미끼가 될 때가 있다. 왜 그때 ‘웨딩슈즈’로 쓰기 좋다는 말이 귀 꽂혔다. 미끼를 덥석 물었다. 남자친구도 없었던 때인데, 나중을 대비하는 셈 치고 좋지 하며 7만 원이나 하는 구두를 덜컥 사버렸다. 내면에 빈손으로 그냥 나오기도 미안함도 있었다. 높은 굽과 밋밋한 외관을 가진 백색의 구두는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구매한 뒤 바로 신발장 속에 곱게 들어가 나오지 못했다. 한 번도 밖으로 신고 나간 적이 없었다. 신발을 제대로 살 줄 몰라, 예쁜 신발 모으기만 했던 나였다.
시간은 일 년 정도 흘렀고, 나는 괜찮은 남자친구가 생기게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신랑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 웨딩슈즈 쓰면 좋다는 구두를 샀어. 한 번 리폼 해보려고 해.”
이런 말이 나왔다. 사실 구두 리폼은 마음에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힘든 말이었다. 만들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무언가 새로운 물건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남자친구에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남자친구(현 신랑)은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나에게 구두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신랑은 손재주가 있는 편이다. 인터넷에서 정보도 잘 찾는다. 내가 보내준 원본 사진을 보고,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더니 딱 감이 왔는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웨딩 슈즈, 내가 만들어 줄게. 이번 주 토요일에 가지고 나와봐.”
주말 아침이 되었다. 나는 정말 이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기대감도 없고, 설렘도 없었다. 그냥 주말에 남자친구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강남에서 만난 우리는 동대문으로 향했다. 구두 리폼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는 구두 겉을 덧댈 천을 찾았다. 동대문은 좁은 평수의 가게들이 많이 모여있다. 우리는 천을 파는 가게가 몰려있는 곳을 찾아갔다. 이 가게, 저 가게를 오가며, 구두에 이 천 저 천을 대보고 가장 어울리는 천을 찾기 시작했다. 콩깍지가 씌었을지 모르지만, 남자친구는 나름 깔끔하고, 세련되고, 고급 진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믿고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우리는 구두와 가장 어울리는 천을 발견했다. 눈에 번쩍 들어온 그 천으로 구매 완료했다.
두 번째는 은빛 장신구 차례였다. 구두의 밑 부분을 화려하게 만들어 줄 은빛 장신구. 마지막으로 구두를 더 빛나고 화려하게 할 코사지도 두 개 구입했다. 모든 재료를 심혈을 기울여서 샀다. 특히 코사지는 다른 거에 비해 가격이 비쌌지만, 가장 아름답고 마음에 드는 걸로 구입했다. 모든 준비물의 준비를 끝냈다.
오전에 재료를 구하러 다녔다면, 오후부터는 본격적으로 구두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목공 풀을 이용해서 천을 구두에 붙였다. 남자친구는 이리저리 열심히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만들었다. 집중하는 그를 보았다. 기다리기가 조금은 따분했지만, 나를 위한 구두를 만드는 거니까 참아야지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완성품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그냥 빨리 완성하고 나랑 놀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은빛 장식을 구두 밑부분에 붙일 때가 가장 어려웠다. 남자친구는 다음에 웨딩 슈즈를 만든다면, 은빛 장신구는 빼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코사지를 위에 대어보니 정말로 멋있는 웨딩 슈즈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로 뜻깊은 선물이다. 지금도 가장 소중한 선물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이 구두를 꼽을 것이다. 별생각 없이 건넨 말에 정성스럽게 신발을 만들어준 남자친구. 아마 이때부터 나를 결혼 상대자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는 연애 초반이어서 불확실성이 가득했다. 시간이 흐르고, 이 구두는 진짜 우리의 웨딩 촬영 때 쓰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혼식에서 난 이 구두를 웨딩 슈즈로 신었다.
마지막으로 남자친구 아니 신랑에게 주는 감사 메시지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좋은 구두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고 하는데, 결혼식 날 넌 그 구두를 신고 너에게 향했어. 앞으로 내가 밟을 땅들이 축복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갈 세상이기에. 예쁜 구두를 만들어준 당신에게 참 고마워. 이 구두를 신고 너에게 향할 수 있어서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