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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득 Jan 07. 2024

작법

240107

 우울증이 있다고 거짓말했다. 우울증도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라는 전문의들의 조언 같은 경고를 수 없이 들어왔지만 역시 우울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은 달랐다. 감기에 걸렸다든가 허리디스크를 가지고 있다든가 그런 식의 고백과는 달랐다. 차라리 보통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도 들어보지 못할 희귀한 병명을 만들어 속이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합리화해 보려 이유를 찾아보았지만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몸이 찝찝해지는 스트레스 사유 하나 없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다 찢어져가는 빈티지한 재즈의 선율과 보컬이 담배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텁텁한 공기를 뱉어내고 나니 어쩌면 나는 심각한 거짓말쟁이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도 어떤 찝찝함도 느끼지 않는 것이 뇌 어딘가가 마비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거짓말의 목적도 없었고 이로 인해 피해 보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말을 듣는 이의 자존감을 올려주고 약간의 연민과 동정을 대가로 받았을 뿐이다.


 병원도 가봤다. 정신과 의자에 앉아 가만히 주위를 살펴보았다. 소파의 촉감은 다른 어떤 과의 병원보다 부드러웠고 포근했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일종의 연대감을 느꼈다. 같이 부정적인 감정을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재미도 얼마가지 않았고 하염없이 엄지로 핸드폰 화면의 스크롤을 내리는 시간을 보냈다.


 무엇 때문에 찾아왔냐는 의사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질문을 했다. 물론 그 조차 거짓이었다. 일부 참이 섞여있었다. 하지만 복잡하지 않게 나의 고통을 알려주었다. 아마 어떤 환자보다 친절하게 우울의 근원을 알려줬을 것이다. 솔직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고민이라고 말할 기회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의사가 이야기의 모순을 찾아내 거짓임을 밝혀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가공된 우울에 깊이 공감해 주었다. 그런 척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짜 약을 처방해 주면서 내가 스스로 이 모든 게 거짓이라고 밝히길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당분간 이런저런 테스트나 설문조사를 시켜주며 돈이나 받아내면 좋겠다는 불순한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생각이든 상관없었다. 이제 거짓말에 또 하나의 참을 섞을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한순간에 증발하는 경험을 차곡차곡 스펙으로 전환하려 노력한다. 나도 그런 노력을 한 것이다. 딱히 우울을 활용할 곳은 없었다. 이미 군대에 2년을 털어두고 왔으며 병가를 낼 직장도 없다. 내가 우울하다고 해서 따뜻한 사랑과 가져줄 주변인도 없다. 씁쓸한 생각을 하다 보니 역시 난 우울증에 걸려도 무방한 환경에 쳐해있구나 싶었다. 너 정도면 행복한 거라고 기만하는 망언을 해줄 이 조차 없는 삶이었다. 정말 남들이 보기에도 우울한 삶인가 보다.


 어쿠스틱 기타를 꺼내와 다시 담배를 물었다. 매캐한 연기가 두 눈을 가득 채우는 것이 오랜만이라 눈물이 났다. 결국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야 음을 조율했다. 구석구석 녹이 슨 기타 줄을 조이고 풀며 제자리를 찾게 했다. 매번 같은 구절만 연주하다 보니 손에 익어버린 선율을 연주하다 보니 잡념이 커져갔다. 고독한 음악가에게는 우울이 일종의 스펙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손을 멈춰 있었고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었다. 그대로 뒤에 있는 침대에 누워 하염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잠에 들었다.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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