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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Oct 23. 2024

[영화글 쓰는법] 3. 순서 정하기

※ 영화 보고 난 후 글을 써보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막막한 것이 현실. 이런 고민을 가진 이들을 위해 '영화 글 쓰는 법'에 대해 연재한다.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잘 쓰는 법에 대하여.




우리는 지난 글에서 '낙서'를 하며 머릿속 영감을 종이에 현출 하고, '연결'을 통해 이를 그루핑 하는 법을 배웠다. 자, 이제 목차를 짤 시간이다. 하지만 당장 냅다 목차를 쓰진 않을 것이다. 일단 그전에, 그룹으로 묶은 키워드의 순서를 정해줄 것이다.


종이 위를 보면 그룹으로 묶인 단어들이 보인다. 이제 여러 바구니에 담긴 이 단어들을 노려보며, 이것들을 어떤 순서로 엮을지 생각해 본다.




일단 여러 개의 키워드 중에서, 글의 주제의식과 맞닿은 '핵심 키워드'를 정한다. 그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함께 묶인 단어들은 이 글의 주제 문단에서 다뤄질 것이다.


이제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나머지 키워드를 어떻게 배치할지 생각한다. 미괄식의 글이라면 <서론-키워드1-키워드2--핵심 키워드-결론>과 유사한 구조가 나올 것이다. 두괄식의 글이라면 <서론-핵심 키워드-키워드1-키워드2-결론> 구조의 글이 나올 것이다. 어떤 구조든 상관없다. 다만 글은 마치 사람의 몸처럼 유기성이 있어야 하고, 주제문단을 중심으로 유려하게 흘러야 한다.


이제 머릿속으로 정리된 순서를 종이에 적어준다. 그루핑 한 단어들 옆에 적으면 된다.




예전에 썼던 <베테랑2>에 관한 글을 예로 들어보면(https://brunch.co.kr/@comeandplay/1099),


나는 이 글에서 크게 5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했다. 그 키워드는 '텍스트', '눈', '입', '스크린', '정서'이다.


이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정서'이다. 이것은 다른 모든 키워드를 압도한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배치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서로 간의 연결성을 고려해 텍스트, 눈, 입, 스크린의 순서로 배치했다. 이렇게 순서를 정한 자세한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서 생략하는데, 궁금한 분은 괄호 안을 읽어보면 된다(텍스트는 일종의 언어인데, 입도 언어의 일종인 말을 구사함. 입 위에는 눈이 있음. 영화에서 이 둘은 서로 대비됨. 눈은 이미지를 탐닉하고, 그것을 전시하는 것은 스크린. 그리고 이 모든 세부를 압도하는 것은 영화의 정서).




그루핑 된 단어를 노려보며 순서를 고심하는 것은, 사실 글의 주제에 깊숙이 다가가는 과정이다. 여러 키워드를 질서정연하게 엮는 방법과 그 순서를 고민하다 보면, 이것들 사이 빠진 링크가 보일 때도 있다. 그러면 그 공백을 채워 넣으면 된다.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면, 비워뒀다가 내일 다시 생각해 본다.  


키워드의 플로우를 따라가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가 떠오를 때도 있다. 축하한다. 고심을 거듭하며 생각이 깊어진 것이다. 추가로 종이에 적어가며 앞의 과정을 반복하자.


키워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때 튀는 키워드는 따로 빼서, 다른 글에서 다루어도 좋다. 혹은 미싱 링크가 있는 것이 아닌지 검토해 본다. 마찬가지로, 축하한다. 지금 하는 이 고민을 아이디어 구성 단계가 아니라 글을 쓰는 단계에서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가? 그래서 글을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이라도 온다면?(으으) 미래에 겪었을 큰 시행착오를 미리 막은 것이니 스스로를 칭찬해 주자.      




앞서 말했듯이 '순서 정하기'는 목차를 짜기 위한 전초작업이다. 그런데 목차니, 전초니 하는 개념은 머리가 아프니 치워버리자. 그냥 "영화 보고 난 후 떠오른 것들을 종이에 끄적이고, 비슷한 것들끼리 묶어서 동글뱅이 치고, 이것들을 자세히 보며 다루고 싶은 순서를 정해 옆에 숫자를 적어준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된다. 그럼 놀이하듯 쉬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앞에서부터 쭉 "쉽게", "놀이하듯"이란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건 다분히 나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다. 글을 쓰는 과정이 엄숙하면 괴로워 안 쓰게 된다. 글이 좋아 도전하는 만큼, 쓰는 과정은 단순하고 즐거워야 한다. 여기 이렇게 집착하는 것을 보면, 글을 쓰며 얼마나 많은 밤을 괴로움에 몸부림쳤는지 느껴지지 않는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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