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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Sep 28. 2022

나도 순정이 있다 <아바타 리마스터링>을 보고

※ 약스포


<아바타 리마스터링> 스틸컷

13년만에 이쁘게 메이크업을 다시 하고 돌아온 <아바타>를 보니 뭔가 찡하대. <아바타 리마스터링> 이야기다.


<아바타>가 2009년 개봉했을 때 얼마나 난리였는지 요즘 분들은 실감을 못 할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몇 배라고 해야하나. 별점을 찾아보니 평론가들도 난리다.  


"Brave New World" - 이용철 ★

"블록버스터영화의 신을 영접하라" - 김종철

"앞으로 수년간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를 말할 수 없다" - 황진미 ★★★★☆


13년 만에 다시 보면 어떨지 궁금해하며 영화관을 찾았다.

지금 봐도 재밌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기획력에 놀랐다. 물론 서사도, 캐릭터도 익숙하고 요즘 기준으로는 CG도 그저 그렇다. 그런데도 재미로 촘촘히 엮은 장면들이 모두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서 별로 지루하지 않다. 리마스터링을 거친 영상의 때깔이 확실히 이쁘더라고. 용아맥에서 본 보람이 있었다. 다만 3D 효과는 생각보다 평이해서, 그냥 2D 아이맥스에서 봐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의외의 지점이 인상깊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 눈으로 다시 보니 신선했다.

다름 아닌 남자 주인공 제이크(샘 워싱턴)의 설정.


제이크는 경계심 많은 '나비족'들 사이에 무난히 섞이고 나중에 큰일도 다. 한 마디로 이 세계관의 주인공. 그런데 이 남자가 그런 대단한 일을 해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어야 하잖아? 영화가 제시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너는 용감하고 강인한 소울을 지녔어."


와 진짜 신선했다.

이유가 저게 다라니.


예전에는 분명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이 설정이 지금 보니 어딘가 부족하고 엉성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그동안 영화 속 캐릭터들의 설정이 변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주인공들이 큰 일을 할 때에는 훨씬 극단적인 이유가 필요하다. 재산을 탕진해서 파산 직전이라거나, 가족의 목숨이 달렸다거나, 천재적인 소시오패쓰인데 심심하다거나, 타고난 히어로라거나.


평범한 남자가 그저 '용감한 영혼'을 가져서 세계를 구하는 것은, 낭만적인 2000년대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이건 당대의 관객들이 저런 설정에 무난히 동의하고,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당장 나만해도 당시에는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으니까. 반대로 지금 영화계에 오로지 두 주먹만으로 세계를 구하는 캐릭터가 사라지고 있다는 건, 관객들이 더이상 그런 설정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린 현실에 조금 더 가까워졌고, 낭만에서 조금 더 멀어졌다.


2009년도 흥행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니 <해운대>, <국가대표>, <과속스캔들>이 나오네.

평범한 시민들이 재난에 맞서고(<해운대>), 한 물 간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 도전하고(<국가대표>), 미혼모가 스타가 되는(<과속스캔들>) 스토리에 열광했던 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활약에 열광했던 시대를 우리는 거쳐왔다. 이제는 낯설어진 이야기. 서글퍼진 것인지 냉정해진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참, 저때는 저런 순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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