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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Sep 04. 2022

<육사오> 흥행의 의미, 달라진 관객들

<육사오(6/45)> 스틸컷


<육사오(6/45)>는 앞뒤로 굴러가며 봐도 만듦새가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스토리라인은 성글다. 자잘한 개그가 계속 시도되지만 뒤집어지게 웃기거나 참신하지는 않다. 하지만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했다 사라져서 지루하지 않고, '북한군'이라는 약간 이색적인 소재와 귀여운 분위기 탓에 스낵 무비로 즐길만하다.


그런 <육사오>가 조용히 반전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번 주 내내 박스오피스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하더니, 어느덧 관객수 100만을 돌파했다. <놉>, <헌트>, <한산>, <탑건> 같은 쟁쟁한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거둔 성적이라 더 눈에 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유심히 살펴볼 만하다.


<육사오>는 어떻게 이런 반전을 만들어냈을까.

몇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진운'이다. 영화 흥행에서 대진운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묵직하고 화려하고 호들갑스러운 영화들 사이에서, <육사오>의 라이트함은 오히려 산뜻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지금 극장가에서 유일한 코미디다.

'로맨틱 코미디'가 극장가 흥행 보스로 군림해 온 것처럼, 코미디의 장르의 저력은 단단하다. 관객들은 코미디에 너그럽다. 그런 포지션에 우연히도 딱 하나의 영화가 있으니, 지루한 강연회에 온 연예인을 본 것처럼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당신이라면 연인과의 첫 데이트에 무슨 영화를 선택하겠는가. <놉>은 부담스럽고 <헌트>는 무겁고 <한산>은 너무 길고 <탑건>은 이미 봤다. 남은 답은 하나다.


그렇다면 <육사오>는 잘한 게 없단 소리냐? 아니다.

적당하고, 적절한 것이 <육사오>의 장점이다. 이 영화에는 웃음 뒤의 억지 감동이나, 꼰대 같은 가르침, 눈에 거슬릴 만한 정치색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없다. '그게 뭐야' 할 수 있겠지만, (사람도 그렇듯이) 눈에 띄는 단점이 없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육사오>의 흥행에 별다른 반발이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한 가지.

요즘 관객들의 성향에 대해 말하고 싶다.

 

<육사오>의 흥행을 보며 '영화값이 올라 관객의 선택이 깐깐해졌다'는 가설은 폐기해야 함을 느꼈다. 관객은 깐깐해지지 않았다. <육사오>처럼 다소 부족해도, 자기 몫을 해내는(관객을 웃기는) 영화에 관객은 관대하다. 그러나 최동훈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기대했으나 예상외로 지루했던 <외계+인>이나,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한 서스펜스를 기대했으나 액션만 요란했던 <비상선언>처럼 기대를 벗어난 작품에는 엄격하고 가차 없다.


최근 혹평을 받았던 작품들은 모두 '관객의 예상을 벗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품 자체는 <육사오>보다 괜찮을지 몰라도, 관객이 기대한 쾌감을 제공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깐깐해졌다'는 말은 달라진 관객성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말은 관객들이 작품성을 따진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관객들은 높은 작품성이 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영화에서 기대한 쾌감을 확실하게 제공받기를 원한다.

액션을 홍보한 작품이면 시원한 액션이, 코미디 영화라면 웃음이, 휴먼 드라마로 홍보한 영화라면 감동과 눈물이 있어야 한다. 중국 음식을 주문했을 때 맛이 덜한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한식이 나오면 크게 분노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관객이 영화에서 얻을 쾌감과 감상. 그것은 감독 혼자 멋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화 홍보 과정에서 관객이 기대하고, 영화값을 지불하며 맺어지는 계약으로 인해 형성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관객이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제공돼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지금의 영화가 '아트' 보다 '서비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작품을 마음대로 만들고 팔 수 있다. 관객의 예상을 벗어날 때 핀잔을 을 수 있을지언정 비판받지 않는다. 그러나 서비스 제공자는 다르다. 서비스 제공자는 소비자가 예상한 범위 내에서 약속한 대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상도를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받아 마땅하다. 나쁜 서비스 제공자는 혹독한 벌점으로 징계받게 된다.


이런 경향을 마냥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좋고 나쁘다는 개념의 바깥에 있는 문제다. 영화가 아트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러울 수 있겠다. 그러나 관객은 솔직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대할 뿐이다. 또 모든 영화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것도 아니어서 일반화하기 어렵기도 하다.


다만 달라진 관객성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영화 홍보'의 측면에서 중요할 것이다. 홍보 관계자들은 영화로 인해 관객이 느낄 감상을 충분히 예상하고, 그것을 홍보 과정에서 투명하게 반영해야 한다. 지금의 관객은 서프라이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국음식이 먹고 싶어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주방장이 파스타를 내 온 것과 비슷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관객의 특성을 무시한 홍보는 분노를 부르기 마련이다. '별점 테러'를 경계하는 것 만큼이나, 관객을 테러리스트만드는 요인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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