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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ug 30. 2022

<리코리쉬 피자> <레드 로켓>이 그리는 지금, 미국

<리코리쉬 피자>, <레드 로켓>의 포스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올봄은 반가운 계절이었다.

미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두 감독이 동시에 우리를 찾아왔으니. 폴 토마스 앤더슨이 2월에 <리코리쉬 피자>를, 이어 션 베이커가 3월에 <레드 로켓>을 들고 나타났다. 한 달 만에 두 명이라니, 웬 떡가.

 

PTA와 션 베이커

두 감독은 나이도 비슷하다. 폴 토마스 앤더슨(PTA)이 1970년생, 션 베이커가 1971년생. 게다가 평단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으며, 매우 미국적인 풍경을 영화에 담는다는 점에서 닮았다.

 

PTA의 <매그놀리아>의 한 장면. <매그놀리아> 제발 보세요..

경력은 조금 차이가 난다. PTA는 1996년에 <리노의 도박사>로 장편 데뷔를 하며 주목받았고 이후 <매그놀리아>(2000), <펀치 드렁크 러브>(2003), <데어 윌 비 블러드>(2008), <마스터>(2013)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명실상부한 거장의 자리에 올랐다. 필모를 읊는데 내가 왜 떨리냐. PTA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하나하나 주옥같은 작품들.


션 베이커의 <플로리아 프로젝트> 스틸컷

션 베이커의 전성기는 그보다 살짝 늦되다. 2000년 <포 레터 워즈>로 데뷔했지만 한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탠저린>(2018)이 호평받더니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로 전 세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귀여운 꼬마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의 이모, 삼촌을 자처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둘은 우리나라로 치면 봉준호, 나홍진 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역색을 영화에 담았고, 평단과 대중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나이가 비슷하지만 경력에서 약간 차이가 나는. 그래서 비슷한 또래임에도 PTA와 봉준호는 노련한 거장의 느낌이 나는 반면, 션 베이커와 나홍진은 좀 더 젊은 인상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PTA와 션 베이커는 여러 면에서 꽤나 다르다. 연출 스타일도, 관심 분야도. 둘을 하나로 묶기는 무리다. 그럼에도 오늘 자꾸만 둘을 같이 언급하는 것은, 그들의 최근 작품 <리코리쉬 피자>와 <레드 로켓>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우연이라 치부하고 지나치기 어려운, 그런 유사성 말이다.



내 애인의 성을 팝니다

일단 두 영화 모두 섹스 비즈니스(sex buisness)를 소재로 삼는다. <레드 로켓>의 주인공 마이키(사이먼 렉스)는 포르노 업계에서 은퇴하고 재기를 노리는 남자 배우다. 그는 동네 도넛 가게에서 일하는 18세 소녀 스트로베리(수잔나 손)와 만나며, 그녀를 포르노 배우로 데뷔시킬 꿈에 부풀어 있다.

<리코리쉬 피자>에서 알라나(알라나 케인)는 자신보다 어린 소년 개리(쿠퍼 호프먼)와 만난다. 개리는 일찍 데뷔했기 때문에 엔터 업계의 생리에 익숙하고, 때때로 알라나의 성적 매력을 자신의 사업에 이용하려 한다. 알라나는 개리의 가게 오픈 행사에서 비키니만 입고 춤을 추기도 한다.


<리코리쉬 피자> 스틸컷

두 영화에 등장하는 연인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그럼에도 남자가 여자의 성을 사업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남자가 여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관계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 행동의 비윤리성에 비해, 그들의 관계는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다.


<레드 로켓>의 렉스는 스트로베리를 여자 친구처럼 대한다. 그는 현 아내인 렉시(브리 엘로드)와도 과거에 이런 관계를 유지하다 결혼한 것 같다. 또 <리코리쉬 피자>의 남녀는 때때로 싸우지만 평소에는 다정한 연인이다. 여기 나오는 남녀는 서로 사랑하고, 남자는 여자를 성적으로 전시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여자는 이런 상황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을 파는 사회. 그것이 두 감독이 바라보는 현재 미국의 모습이다.


게다가 <레드 로켓>의 마지막을 보면 어설픈 희망을 품기도 어렵다. 모은 돈을 빼앗긴 마이키는 스트로베리의 집 앞에 멍하니 서 있다. 그러면 스트로베리가 문 앞에 나와, 비키니를 입고 야릇한 춤을 춘다. 이 장면은 지나치게 몽환적이라 마이키의 환상같이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그가 10대 소녀의 미래를 생각할 시점에, 포르노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연애와 섹스, 비즈니스가 뒤엉킨 이 기형적인 산업이 공급자이자 수요자다. <리코리쉬 피자>의 마지막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영화는 알라나와 개리 사이의 미묘한 위계와 갈등에 대한 답을 내지 않은 채로 서둘러 막을 내린다. 로맨틱하고 찜찜한 엔딩.


이 불투명한 세계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오직 한 사람, <레드 로켓>의 렉시다. 그녀는 마이키를 두고 '포주'라는 단어를 던진다. 무수한 조롱과 모욕에도 아랑곳 않던 마이키는, 이 단어 앞에서 처음으로 얼어붙는다. 그러나 어떤 반격도 하지 못하고, 그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뜰뿐이다.


언급하기 쉽지 않은 이슈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별개로, 이것이 두 감독이 인식하는 지금 미국의 현실이다. 남자는 포주를, 여자는 성매매 여성을 자처하는 사회. 그리고 이 관계는 미국 국가와 시민, 자본주의와 인간으로 계속 확장된다. 이들은 "사랑한다" 말하면서 상대의 몸과 성을 기꺼이 산업의 연료로 팔아치운다. 애정이 섹스로, 업으로 발빠르게 치환되며 거대한 업이 굴러가는 곳. 그것이 할리우드이며 곧 미국이라고 자조하고 있다.


한국 작품들 사이에도 희미하게 공유되는 문제의식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파산에 대한 공포'이다. 파산해서 모인 사람들 사이의 살육전을 그린 <오징어 게임>이 그렇고, 심리적·경제적으로 곤궁에 처한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나의 해방일지> 또한 그렇다. '나락간다'는 시쳇말이 보여주듯, 지금 우리 사이에는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떠돌고 있다. 작품에도 그런 불안이 묻어난다. <오징어 게임>과 <나의 해방일지>에서 어찌 보면 극단적이라 할 만한 설정도 우리는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우리 사회가 그런 정서를 충분히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레드 로켓> 스틸컷

<리코리쉬 피자>도, <레드 로켓>도 많은 관객들이 찾지는 않았다. 특히 <레드 로켓>이 모은 관객수는 1700여 명. 9.6만이었던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비하면 처참 수준이다. 그건 아마도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또렷한 이 영화의 현실 감각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시종 귀여운 무드를 유지하다, 마지막에 한 줌의 희망을 남겨두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비하면 <레드 로켓>은 속 현실은 지극히 차갑고 비루하다. 특히 마이키 세이버가 훌륭하게 연기하는 '렉스'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게 만드는 인간이다.


하지만 나는 무수한 호평을 받은 <플로리다 프로젝트>보다 <레드 로켓>에 더 많은 애정이 간다. 그 영화는 전작이 차마 보지 못한 어른의 세계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것은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보여주지 못한 핼리(무니의 엄마, 브리아 비나이트)의 이야기인 동시에 어린 무니가 곧 마주하게 될 현실이다. 이 영화에서 션 베이커는 적당히 물러서지 않는다. 그런 무자비함이 좋다. 또 <리코리쉬 피자> 역시 거장의 소품으로 평가될 작품이 아니라고 믿는다. 이 영화는 1970년으로 돌아가 철저히 현재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 냉철한 감독들이 그리는 세계에서 어쩐지 같은 풍경이 자꾸만 엿보이는 것이다. 두 개의 이야기, 하나의 풍경. 안타깝게도 그 풍경은 마음을 찌른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그 세계 속 연인들이 통증 없이 온전히 행복해질 날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온다면 다시 한번 글을 쓰겠다.






※ 관련 글 ※



○ 폴 토마스 앤더슨의 <리코리쉬 피자>에 관해 쓴 글들

첫 인상, 해설 1, 2, 3.




○ 폴 토마스 앤더슨의 전작 <팬텀 스레드>에 대한 글



○ <레드 로켓> 연출한 션 베이커의 전작,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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