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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09. 2018

유령들의 낙원,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 비평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색감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 아름다운 색감만 보아도 배가 부른 영화다. 동시에 그것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내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아이들이 먹는 색색의 음식들이다.


과거에 유폐된 낙원은 흰색이다

영화의 초반, 아이들은 흰색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탐닉한다. 공짜 아이스크림을 돌려 먹기도 하고 바비 앞에서 장난스레 핥아먹기도 한다. 이 하얀색은 무니, 스쿠티, 젠시가 함께 논 마지막 놀이터인 폐가를 연상시킨다. 그때 무니는 바닥에 구르는 흰 것들을 보고 "귀신의 똥"이라고 한다. 이 장난스러운 말은 흰 색의 속성을 폭로한다. 영화에서 하얀 색은 이미 죽어서 버려진 시간과 공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곳의 아이들은 시간의 흐름에 뒤쳐져서 폐기된 공간에서만 온전히 행복하다. 그렇기에 무니와 그 엄마 핼리는 그들 위를 나는 헬리콥터를 탐탁지 않아한다(헬리콥터는 발전된 현재의 시간을 상기시킨다). 아이들은 디즈니랜드의 개발 한 켠에 버려진 오랜 건물들에 주거하고 이곳에서 뛰어논다. 한편 흰 색의 이미지는 아래로 뚝 뚝 떨어지는 불길한 낙하를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무니와 스쿠티는 달디단 아이스크림을 행복하게 나눠먹지만 그것이 바닥에 한 점 뚝 떨어지자마자 건물 밖으로 쫓겨난다(영화가 얼마나 이 장면을 얼마나 인내하며 지켜보는지 떠올려보자). 이 흰색의 낙하 이미지는 바비가 건물을 칠하다 떨어트리는 페인트 통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그런 맥락에서 바비가 흰 옷을 입은 노인에게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 노인은 이 곳의 이상함을 온 몸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바비는 노인이 아이들의 이름을 묻자 기겁하며 아이들로부터 떨어트리고, 그가 달달한 소다를 들이키자 참지 못하고 그를 쫓아낸다. 나이 많은 노인이 놀이터를 얼쩡거리고 모텔에서 단것을 탐닉하는 모습이 이상하듯, 시간으로부터 유폐된 곳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실 기이한 것이다. 그러나 바비는 애써 이것을 외면하며 아이들의 낙원을 지켜주고 싶어한다.


낙원의 종말을 부르는

반면 흰 폐가에 불이 붙으며 낙원에는 일대 변화가 불어온다. 그것은 벌겋게 타오르는 불(현재의 시간)을 피할수 없으리라는 예고인 동시에, 도피된 과거에서 머물던 낙원의 종말을 선언한다. 아이들은 모두 불을 보지 않으려고 하고 불 앞에 끌려간 무니는 겁에 질린다(이 장면은 무니가 가장 직격으로 현재의 시간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그후, 불을 피해 있었던 스쿠티부터 아이들의 모임에서 빠져나간다. 스쿠티가 몰려오는 재앙의 시간으로부터 안전한 이유는 그의 엄마가 돈을 벌기 때문이다. 반면 무니와 핼리는 불 때문에 스쿠티와 멀어지고, 그래서 공짜 음식을 받지 못하고, 돈이 필요해서 핼리가 성매매를 하고, 이 때문에 결국 서로 이별하게 된다. 이런 연쇄작용은 돈과 자본으로 대표되는 현재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는 사실과, 이들 모녀가 현재의 물결에 휩쓸려서 불행으로 끌려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실의 시간은 붉은색으로 다가온다

핼리(무니 엄마)는 애슐리(스쿠티 엄마)와 친구였으나 냉엄한 현실앞에서 갑을로 나눠진다. 이에 분노한 핼리는 똑같이 돈으로 되갚아주리라 결심한다. 그 방법은 돈을 들고 애슐리의 가게에 손님으로 가는 것이다.

무니는 식당에서 게걸스레 음식을 먹는데, 공교롭게도 라즈베리, 딸기, 베이컨 같은 붉은 음식들을 좋아한다. 무니는 식빵에 빨간 잼을 발라서 젠시와 함께 먹기도 한다. 이 붉은 음식들은  화재 현장에서 목격한 불의 붉은색과 겹쳐진다. 무니가 아이스크림이 아닌 붉은 음식들을 탐닉하는 것도 화재 이후부터다. 그 모습은 무니가 간절히도 현재의 시간에 속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핼리는 가게를 나오며 싸온 음식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데, 이 모습은 불길한 느낌을 자아낸다.

한편 무니 앞에 난입하는 현재의 시간, 자본의 잔인함은 그녀가 욕실에서 놀때 난입하는 남자의 모습으로 재현되며, 무니의 목욕 놀이는 그렇게 끝이 난다.


젠시와 헤어지기 전 무니는 붉은 옷을 입은 젠시와 애써 어깨동무를 하려한다. 퓨처랜드에서 온 젠시는 붉은 계통의 옷을 많이 입는데, 이는 무니가 닿고픈 미래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무니는 내달려서 젠시에게 가고, 젠시는 유독 붉은 옷을 입고서 무니를 맞이한다. 젠시의 집에서 엄마는 어린 아기에게 밥을 먹이고 있지만 무니는 미래를 향한 활력(아기와 밥)이 너울대는 그 집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저 울며 안녕이란 말을 한다. 그 모습을 본 젠시는 잔뜩 화가 나고, 무니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뛰어간다. 그곳은 가까이 있어도 결코 가본적 없는 공간, 아이들의 낙원이자 환상인 디즈니 랜드다. 사실 이 결말은 판타지다. (나의 지인 김수정이 지적했듯) 아이들이 먼 곳까지 아이의 걸음으로 달려서 입장권도 없이 디즈니 랜드에 간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장면은 앞서 무니 모녀가 놀이동산의 표를 판 모습과 대조된다) 결국 이 아름다운 결말은 무니에게 디즈니랜드란 환상에 불과할 것이라는 아픈 현실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무니와 핼리의 유사성

무니의 미래가 걱정되는 이유는 무니가 엄마 핼리와 많은 유사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무니는 엄마와 잘 어울리며 핼리 역시 다소 유아적인 행동을 곧잘 한다. 이는 핼리 역시 한 때는 무니같은 아이였음을 생각하게 한다. 핼리는 도로변에서 쫓겨난 학들의 걸음걸이처럼 천천히 휘적휘적 걷는데, 무니는 핼리의 걸음걸이를 따라하기도 한다. 무니가 곧장 주변을 모방하는 해맑은 아이라는 점은 영화 초반에 무니가 아이답지 않은 거친 표현을 하며 놀던 이유를 알게한다. 그리고 장면들은 무니가 과연 핼리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게 될지, 이곳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질 수 있을지를 염려하게 한다.


그들의 마지막

전작인 <탠저린>에서 숀 베이커는 당당히 주류를 타자화하는 당돌한 방식으로 주변인을 끌어안고 웃음을 던졌다. 그런 그가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아이의 시선을 들고서 우리를 찾아왔다. 그 시선은 순수성을 간직한 경험을 경유하여 그곳을 바라보고 결국 그들의 시간을 마주하게 한다. 마지막 장면의 진실을 알면서도 무니와 젠시의 뒷모습이 어여쁘게 보이는 이유는 아마 조금의 가능성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의 미래를 응윈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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