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사이에도 '인정투쟁'이 가능할까요? 연인이 서로의 사회적 신분과 위치를 저울질하며,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는 일이 가능한지를 묻고 싶군요. <리코리쉬 피자>의 한 장면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들을 보면요. 개리와 알라나는 서로에게 악담을 퍼부으며("너는 늙었어", "너는 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야") 싸움을 벌입니다. 둘 다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죠. 결국 개리는 화를 못 참고 집을 나가 버립니다. 이 장면은 연인 간의 관계도 인정욕구,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알게 합니다.
그 사이 개리는 핀볼장을 열죠. 그런데 이곳에서도 힘의 역학관계가 보여요. 어떤 아저씨가 핀볼 게임을 거칠게 하는 모습이 마치 강압적인 성관계를 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이후에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앞에 두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이것을 분명 강간을 연상케 하려는 의도된 장면입니다.) 개리는 그 아저씨에게 살살하라고 말하지만 먹혀들지 않아요. 대신 개리는 애꿎은 어린아이들만 쫓아내죠. "내가 주인이니까 나가라"는 위압적인 말을 하며. 이 작은 공간에서도 힘에 따라 위계가 나뉘고, 그에 따라 행동들이 달라지고 있어요. PTA는 연인 관계에도, 작은 핀볼장에서도 위계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있다는 것을 날카롭게 응시하고 있습니다.
알라나는 어떤 사람일까
한편 알라나는 시장 후보인 조엘의 캠프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실상 그녀가 하는 일은 전화를 걸고, 욕을 듣고, 똑같이 욕해주는 것밖에 없어요. 하지만 알라나는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죠.
어느 날 밤 조엘이 알라나를 불러내자, 그녀는 허겁지겁 달려갑니다. 같이 가자는 남자 직원의 제안도 매몰차게 뿌리치고요.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앞서 알라나가 이 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성적인 매력만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전혀 이용하지 않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매니저인 개리가 가슴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자 가슴을 보여주고, 촬영장의 남자 배우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요. 또 조엘이 밤에 불러내자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죠. 맡은 일도 잘 해내고, 성공에 대한 갈망이 크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적인 매력도 적당히 이용하는. 그 미묘한 위치에 알라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성 캐릭터를 향한 PTA의 섬세함이 드러나는데요, 그는 우리가 아는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 속에 알라나를 가둬두지 않아요. 순결하지도 타락하지도 않은 적당한 속물. 그것이 알라나인 것이죠.
사랑은 영화관 앞에서 이뤄진다
시장 후보 조엘은 알라나의 세계관에서 거의 유일하게 존경할만한 남성인데요, 친절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권력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상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남자였어요. 또 성공을 위해 자신의 연인에게 가차 없이 상처를 입히죠. 그의 실체를 목격한 알라나는 아마도 개리에 대해 다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엘의 연인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겠죠.
개리와 알라나는 어느 밤에 서로를 향해 달려, 다시 만나는 데 성공합니다. 그들이 재회하는 공간이 영화관 앞이라는 점이 재밌죠. 앞서 개리와 알라나가 서로 손을 맞대는 공간도 영화관의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하얀 침대 위였어요. 현실의 사랑은 녹록지 않고 자꾸 어긋나지만, 영화는 연인 간의 사랑을 슬며시 이어 붙인다는 뜻일까요? 하지만 그들의 뜨거운 포옹이 결국 통증으로 이어진다는 것(바닥으로 넘어짐) 역시 재밌고도 의미심장한 부분입니다.
알라나와 개리,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 둘은 손을 잡고 거리를 뛰어갑니다.
이 영화에서 정말 아름다운 순간은 이렇게 '살이 닿는 접촉'으로 표현되죠. 그것이 사람을 위안하고(흐느끼는 조엘의 남자 친구를 안아주는 알라나) 연인을 구원하며(경찰서 앞에서의 개리를 안아주는 알라나) 사랑을 완성하고(핀볼장에서의 키스) 연인의 관계를 다음 단계로 이행시킵니다(손을 잡고 달리는 둘).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은 어쩐지 희미한 불안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랑한다는 알라나의 속삭임에 대답 없는 개리. 그는 계속 앞을 보고 뛰어가죠. 과연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함께할 수 있을까요? 알라나는 고백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계속 소통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못된 말들을 던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삐걱대면서 서로를 저주하겠죠.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마치 오르내리는 시소처럼 계속 서로를 향해 기울어지기를 반복하며, 뒤뚱거리며,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PTA의 세계에 완전한 사람도 없고, 충만한 관계도 없습니다. 늘 어딘가 하나씩 결함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자질을 겨누며 폭력을 반복하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PTA는 자꾸만 싸움을 할 것 같은 사람들을 모아다 사랑 이야기를 반복해요. 결국은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사랑 같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PTA는 심술 난 예술가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상하게도 그의 비뚤어진 러브스토리를 볼 때마다 늘 감동을 느끼고는 합니다. 거기에는 삶에 대한 건조한 위안이 있고, 참담한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그게 보기 좋아서 그런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