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이야기]
같은 책을 두 번 읽는다는 건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흔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요, 어릴 때 읽은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책 이후로는 거의 처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릴 때는 무언가에 푹 빠져서 그것만 반복적으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죠. 한 가지 음식만 계속 먹고 싶고, 같은 인형만 뜯어질 때까지 껴안고 다니고. 지금은 그때의 기억과 감성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어떤 매력에 빠져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그렇게 여러 번 읽었던 걸까요?
독서교육을 하는 분의 강의에서 잠깐 들었는데,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천재들의 독서법이라고 합니다. 책을 여러 번 읽으면 처음 읽은 후에 잊었던 내용들을 다시 배우기도 하고, 같은 내용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도 하면서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데 도움을 받는다고 하네요.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가 같은 책을 자꾸 읽으면 ‘또 그 책 보니?’하고 묻는 답니다. 이왕 읽을 거면 다양하게 읽어야지 왜 자꾸 같은 책만 읽냐고 한다는 거예요. [괭이부리말 아이들]만 읽는 것을 부모님이 그냥 놔뒀다면 저는 천재의 삶을 살고 있을까요? 네, 부모님이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 책 보냐고요.
영화도 두 번 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스토리를 다 알면 재미가 없더라고요. 액션, 스릴러, 미스터리 등의 장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절름발이가 범인인걸 알고 보는 [유주얼 서스펙트]는 무슨 재미일까요. 소설도 비슷한 이유로 두 번 읽는 일이 드뭅니다. 치밀하게 짜인 전개, 예상치 못한 반전 등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이야기는 좀처럼 다시 읽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방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는 책장에 다 읽은 소설책이 가지런히, 크기 별로 꽂혀있는 건 왜일까요?
요즘 두 번째 읽고 있는 책이 몇 권 생겼습니다. 천재가 되기에는 두뇌성장은 진즉에 끝난 것 같고,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에는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데도 어떤 책을 두 번 읽는다는 건 저에게 특별한 일임이 분명합니다. 재미만 위해 읽는, 단순한 읽기를 넘어서는 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배우기 위해 읽고 생각하기 위해 읽는, 더 심화된 읽기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는 중인지도요.
첫 번째 책은 [작가의 루틴: 소설 쓰는 하루]입니다. 이 책 때문에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믿으시겠어요? 국내 유명 작가들이 자신의 루틴에 대해 쓴 에세이입니다. 작가들의 하루, 작가가 되기까지의 여정, 그들의 성격과 글 쓰는 스타일까지 많은 것들이 녹아있는 책입니다. 그들의 집과 작업실에 직접 가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쓰는지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걸 계속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으니 하고 싶더라고요. 글 쓰는 삶을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루틴을 소개하는, 단순하고 밋밋할 수도 있는 글을 이토록 맛깔스럽게 써낼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억지로라도 끄적거리며 글을 적고 있는 저에게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영감이나 힌트, 어쩌면 용기를 줄 것만 같아 다시 책을 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충격적인 제목이네요.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누구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없습니다. 최근 수년간 읽은 스릴러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일 뿐입니다. 아, 참고로 저는 범죄, 스릴러, SF소설에 환장한 사람입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2015년에 출간된 피터 스완슨이라는 미국 작가의 책입니다. 우연히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후속작인 [살려 마땅한 사람들]이 8년 만에 출간되었다는 광고를 보고 두 책을 알게 되었죠. 모든 책광고가 그렇듯 극찬을 쏟아붓고 있길래 속는 셈 치고 전작부터 읽어보았습니다. 속지 않았습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며칠 만에 다 읽고 바로 [살려 마땅한 사람들]을 주문했고 그 후에는 피터 스완슨의 소설을 출간 연도별로 차례차례 모두 찾아서 읽었습니다. 살면서 꼭 한 권쯤 소설을 쓰고 싶은 숨겨둔(이제는 숨기지 않는) 소망이 있는데요. 소름이 끼쳐 이불을 덮고 읽고 싶은,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그 소망을 이루는 첫걸음이 좋은 소설을 다시 읽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책을 폈습니다.
방금 천선란 작가의 [옥수수밭과 형]을 두 번째 읽고 나서 이 글을 완성합니다. 단편이긴 하지만 무려 SF스릴러입니다. SF도 좋아하고 스릴러도 좋아하니 SF 스럴러라면 말이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읽어보니 처음 읽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상징물과 복선 등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옵니다. 소설 읽기의 새로운 재미를 찾은 것 같습니다. 천선란 작가는 [작가의 루틴: 소설 쓰는 하루]에도 등장합니다. 처음 받은 느낌은 '치열하게 글 쓴다'는 것입니다. 정한 일은 꼭 해내는, 그날의 루틴을 완성하고야 마는 끈기를 느꼈습니다. 자유로운 상상을 하는 작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작업 스타일입니다(편견이겠죠). 무슨 일을 하든 시간과 장소를 먼저 정하고 계획한 것은 정확하게 지키고 싶은, 그런 성격인 저에게는 닮고 싶은 작가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녀의 소설보다도 그녀가 소개한 본인의 루틴이 저에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 사실 자체가 힘이 됩니다.
두 번째 읽는 책 읽기가 새로운 즐거움을 주어 기쁩니다. 이전에는 지나쳤지만 살이 되고 뼈가 될 중요한 내용들을 다시 찾아 쏙쏙 뽑아 먹으니 배가 부릅니다. 두 번 읽어도 재미있는 글들을 마주하니 저도 재미있는 글이 쓰고 싶어 집니다. 글을 쓸 힘과 밑거름이 되어 줍니다. 저의 글이 두 번 읽고 세 번 읽는, 유익하고 여운 있고, 또한 즐거운 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