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손가락 피아노 훈련

by 강상록

창 밖을 보니 건물 사이사이로 보이는 먼 하늘에 주황빛이 감돈다. 해가 뜨는 광경을 아무 말 없이,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지켜만 본다. 해를 지켜보던 때가 있었던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끝도 없는 지평선에서 떠오르던 해를 보던 일과 난생처음 동해바다에서 일출을 보던 어느 해 1월 1일, 그날에는 해를 가만히 지켜봤던 기억이 있다. 낯선 장소 혹은 특별한 시간에는 매일 뜨는 해조차 새로웠다. 비록 오늘의 해는 특별한 것이 없지만 다르게 바라보고자 밖을 응시한다.


항상 뜨는 해와 늘 오는 새벽도 다르게 바라보고자 하니 그렇게 된다. 새벽을 있는 그대로 본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게 무엇일까. 시간을 느끼고 공간을 둘러본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내가 앉은 소파와 그 옆에 펼쳐 놓은 책, 두 방에 각자 잠들어있는 아기들, 조그만 강아지집과 소파 위에 한 마리씩 잠들어있는 강아지들도 소리 없이 그대로다. 모두가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겠지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뿐이다. 아무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조용한 시간이 흐른다. 1초와 1분이 지나가고 현재는 과거가 된다. 흐름을 인식하니 시간이 실체가 된다. 지금을 경험한다.


펼쳐진 책에는 헤밍웨이의 글이 있다. 새벽부터 평소와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이유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게. 물고기를 보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정확히 그 모습을 보게.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짜릿함을 느꼈다면 어떤 움직임이 그런 감정을 일으켰는지 알아낼 때까지 계속 돌이켜 보게. 물에서 솟구쳐 오르며 만들어내는 선이었는지, 바이올린 줄처럼 팽팽하게 지탱하고 있다가 떨어지는 모습이었는지, 물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모습이었는지 말일세. 또 어떤 소리가 났고, 어떤 말이 들렸는지도 기억하게. 그 감정을 일으켰던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자네를 흥분시켰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라는 말일세. 그런 다음엔 독자들도 그 장면을 보고 자네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정확하게 그 장면을 써내려 가는 거야. 그것은 피아노의 다섯 손가락 훈련 같은 걸세."


물고기를 지켜보듯 새벽을 지켜보려고 노력한다. 물고기처럼 생생한 움직임은 없지만 새벽이 어떤 움직임으로 나에게 다가오는지 느낀다. 물고기를 묘사하는 것이, 어떤 하루의 새벽을 묘사하는 것이 사실은 아주 어려운 일임을 처음으로 생각한다.


단순한 묘사, 있는 그대로를 쓰는 일인데도 익숙하지 않은 피아노를 치는 일처럼 낯설다. 그러나 헤밍웨이가 이를 '훈련'이라고 표현했듯이, 보고 느낀 것을 쓰는 일도 익숙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다섯 손가락이 조화롭게 선율을 만들어내고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되는 것처럼, 애매모호함으로만 남아있는 느낌을 선명한 글로 써내어 누군가 읽을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헤밍웨이의 물고기는 여전히 글 안에서 바이올린 줄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 언젠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움직임도 없는 새벽의 고요함조차도 살아있는 글로 옮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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