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을 찾아서

by 강상록

5살이 되던 해, 7살이던 동네 형과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우리 엄마와 형의 엄마는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흔히 '절친'이라 부를만한 그런 사이였다. 우연히 두 절친이 십여 년 만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게 되어 자연히 그 자녀들도 친해지게 된 것이다. 나는 가끔씩 엄마와 함께 형의 집에 놀러 가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엄마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동안 우리는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형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아이는 나보다도 어렸기 때문에 정말 '아기'였지만 형과 동생이 싸우는 것을, 실상은 형이 동생을 괴롭히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외동아들이었던 나에게는 생소하고, 신기하고, 조금은 두려운(동생이 대성통곡을 하고 형을 죽일 것처럼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에) 광경이었다. 형의 엄마는 늘 큰 소리를 지르며 둘을 말렸고 우리 엄마는 그저 미소를 띠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웃어야 할지 조용히 있어야 할지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형을 믿고 또 나를 믿었는지 어느 날부터 우리 둘만 국민체육센터 버스에 태워 수영장에 보냈다. "형이 도와줄 거야. 잘 다녀오렴." 그러나 형도 고작 7살일 뿐이었다.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같이 수영을 배웠다. 첫날은 물에 들어가 '기차놀이'라며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물속을 걸어 다녔다. 형은 나보다 키가 커서인지 기차의 뒤쪽에 서있었고 나는 형을 볼 수 없었다. 물은 가슴까지 올라왔고 쇄골과 목부터는 물 밖에 나와있었다. 기차는 길었고 별 재미는 없었지만 앞사람이 움직이니 나도 따라 움직였다. 조금 빠르게 걷다 보니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고, 평소 걸을 때보다 발이 땅에 느리게 닿는 것이 조금 무서워졌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나니 숨이 차는 느낌도 들었다. 큰 손이 내 몸을 움켜잡고 쥐어짜는 듯 가슴이 답답했다. 그저 물속에서 걷는 것뿐이었는데도 불안했다. 선생님은 기차놀이가 물과 친해지는 일이라고 했다. 나와 물이 그렇게까지 친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둘째 날에도 기차놀이를 시작했다. 기차놀이를 하다가 선생님이 머리를 물속에 넣어보자고 했다. 눈은 감아도 되고 숨을 잠깐만 참고 얼굴만 들어갔다 나오는 연습이었다. 머리를 집어넣기 위해 가슴까지 차오른 물을 살짝 내려다봤는데 물이 시커멓게 보였다. 이렇게 깊고 검은 물에 머리를 넣었다가는 다시 물 밖으로 올라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물속에는 내 머리를 끝없이 잡아당기는 괴물이 살 것 같았다. 실제로 물이 검을 리는 없었다. 동해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5,6세쯤 되는 아이들이 수영을 배우는 곳이니 깊어봐야 얼마나 깊겠으며(실제로도 내 가슴까지만 물이 닿았으니까) 물도 깨끗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나만 끝까지 물속에 머리를 넣지 못했다. 모두의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기차의 중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아무도 서있지 않은 수영장에 혼자만 서있는 사람이 되곤 했다.


그날 이후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들은(형을 포함해서) 물과 친해진 듯 보였다. 본격적으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그들은 물속에서 호흡을 하는 방법인 '음파'라고 부르는 호흡법도 익히고 '킥판'이라고 부르는 고무판을 잡고 발차기 연습을 하기도 했다. 언제나 수업 처음에 시작하던 기차놀이에서 내 자리는 점점 뒤가 되었고 결국 가장 마지막 칸 기차가 되어 아이들을 따라다니기 급급해졌다. 어느 날인가부터 기차의 앞쪽에서 신이 난 형의 뒷모습이 보였다.


며칠 후, 용기였는지 그저 실수였는지 혹은 어떤 오기나 분노의 표현이었는지 나는 수영장 물을 향해 놓여있던 미끄럼틀에 올랐다. 물이 익숙해진 아이들은 미끄럼틀을 재밌게 타고 놀았는데 그 모습이 부러웠던 것일지도 몰랐다. 고작 다섯 칸 정도 되는 미끄럼틀 계단을 올라가면서 열 번쯤은 망설였지만 미끄럼틀에 앉았을 때는 이미 내 뒤에 아이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돌아 내려갈 수가 없었다. 천천히 내려오면 그대로 물에 똑바로 설 수 있을 것 같아 아주 조심스럽게 출발하여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나 몸과 미끄럼틀에 묻은 물기 때문인지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며 물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일어서기만 하면 머리가 물밖으로 나오는데도 당황해서 허우적거렸다. 그동안 머리를 물속에 넣지 못한 내가 답답했는지 물에 살던 그 괴물이 나를 자꾸만 끌어당기는 듯했다. 일어서려다 넘어지기를 3,4회 정도 반복하면서 물을 많이 마셨다. 물속에서 소리를 크게 지른 것 같은데 밖에서 누가 들었을 리는 없었을 것이고 덕분에 물만 더 많이 먹었다. 수영장에서 익사한 어린이로 저녁뉴스에 소개되고 우리를 지도했던 선생님이 구속되고 수영장이 문을 닫을 뻔했지만 기적적으로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벽을 잡고 엉엉 울며 물 위로 올라왔다. 바닥에 널브러져 울고 있는 나를 아이들이 둘러싸 지켜보았고 형과 몇몇 아이들이 괜찮냐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봐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수영장에 가지 못했다.




6살 혹은 7살이었다. 태권도장에서 오줌을 쌌다. 태권도장 화장실이 아니고 우리가 발차기와 주먹질을 하고 기합을 질러대던 태권도장 한가운데였다. 태권도장은 수영장의 차선책으로 엄마가 선택한 곳이었다. 수영장의 일로 나는 소심하고 겁 많은 아이로 이마에 도장이 찍혔고 엄마는 그것을 극복시키고 싶은 듯했다. 그러나 태권도장은 새로운 두려움을 나에게 더해줄 뿐이었다. 수영장에서는 '검은 물'이 괴물이었다면 태권도장에서는 사범님이 괴물이었다. '엎드려뻗쳐'를 난생처음 해봤다. 내가 잘못해서 받는 벌은 아니었다. 누군가 말을 안 들으면 다 같이 벌을 받았다. 요즘의 태권도장이 아이들의 '놀이터' 느낌이라면 그 시절에는 '훈련장'의 느낌이었다(적어도 내 기억은 그렇다). 훈육이었고 교육이었겠지만 난 그냥 무서울 뿐이었다. 수업 내내 긴장을 하고 있자니 소변이 자주 마려웠다.


물속에 머리를 넣지 못했던 아이는 태권도장에서 화장실에 가겠다는 말도 쉽게 하지 못했다. 한 시간 남짓한 수업시간에 두세 번씩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어느 날, 말 그대로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일을 저질러 버렸고 당황한 사범님은 나를 다른 방으로 데려가 새 도복 바지를 입혔다. 그 도복은 내가 입기에는 너무 길어 누가 봐도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에게 전혀 맞지 않는 도복을 보면 누구라도 알아채고 물어볼 것만 같았다. 너 오줌 쌌니?


수영장에서 머리를 물에 넣지 못했던 이야기, 태권도장에서 오줌을 쌌던 이야기를 처음 아내에게 했을 때 아내는 말했다. "애들은 그럴 수 있지." 소심해서 화장실 간다는 이야기도 못하는 그 마음을 자기도 안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겁 많고 소심한 사람이 아니다. 수영장 기차 맨 앞에서 아이들을 인솔할 대장부이자 미끄럼틀을 머리부터 거꾸로라도 타고 내려올 사람이다. 화장실은 고사하고 집에 가고 싶으면 가겠다고 말할 당돌한 아이였을 것이다. 어쩌면 아내는 화장실 간다는 이야기를 못하는 그 소심함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그냥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재미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내가 나에게 실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절부터 자리 잡은 소심함과 자책이 마흔을 향해가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던 것일지 모르겠다. 진짜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을까. 누구나(그게 다섯 살 아이라면 더욱) 물에 얼굴 넣는 것을 무서워하고 태권도장에서 오줌을 쌀 수도 있는 것이었을까. 어른이 되어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나에게 너그러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나에게 조차 너그럽지 못한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미끄럼틀을 타게 놔둔 형도, 나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수영장과 태권도장에 보낸 엄마도, 미끄럼틀에 묻어 있던 물기도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을 뿐이고, 내가 '애'였기 때문에 겪은 일에 불과했다.


나는 32살에 수영을 다시 배웠다. 아내의 따뜻한 격려 덕분이었다. "나중에 애들 물에서 놀아주려면 아빠가 물에 빠지지는 말아야지." 아주 효과적인 격려였다. 여전히 물이 무서웠고, 아주 더디게 실력이 늘었지만 열심히 배웠다. 나는 결국 물속에 머리를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물속에서 숨도 쉴 수 있게 되었다. '음파'를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속에 수백 번도 더 들어갔지만 내가 두려워하던 괴물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1화제자리에 서있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