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 않은 가을이 겨울에게 막 자리를 내어준 어느 날. 내뱉는 숨마다 하얀 김이 되어 눈앞에 피어오르고 자연스레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움츠리게 되는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똑같이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병원으로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 들르기로 한다. 바닥을 보며 인도 위를 걷다가 문득 앞에 보이는 어떤 형체에 시선을 고정한다. 검은색의 둥그런 무언가가 차도의 가장 바깥쪽에서 보도블록에 딱 붙어 놓여있다. 언뜻 비닐봉지인 줄 알았으나 미세한 움직임이 보인다. 순간 고양이라는 걸 깨닫는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느리게 하고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한다. 반대편에서 마주 오던 몇 사람도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걸어온다. 고양이는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상태로 엎드려 있어 나는 얼굴을 보기 위해 고양이를 천천히 지나쳐 뒤를 돌아본다. 고양이가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다. 눈은 뜨고 있지만 초점이 또렷하지 않다.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차에 치인 것이 아닐까. 그때 어떤 여자가 캔으로 된 고양이밥을 들고 다가온다. 나보다 먼저 고양이를 발견하고 편의점에서 밥을 사 오는 모양이다. 고양이 바로 앞에 밥을 내려놓았으나 고양이가 오히려 놀라 차도 한가운데로 후다닥 움직였다. 움직일 때 뒷다리가 땅에 끌리는 모양으로 봐서는 차에 치인게 확실해 보였다. 자동차 한 대가 차도에 나와있는 고양이를 보고 옆으로 피해 가기 위해 속도를 늦췄으나 고양이는 불편한 다리로 다시 한번 움직였다. 아슬아슬하게 자동차 타이어옆을 스쳐 지나간 고양이는 차도의 반대편 보도블록에 다시 붙어 몸을 웅크렸다.
고양이가 완전히 겁에 질려있어 나와 그녀의 힘으로는 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근처에 동물병원이 있는 것을 알고 있어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병원에 들어가니 데스크에 간호사 한 명이 있었다.
"밖에 고양이 한 마리가 차에 치인 것 같은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내가 말했다.
"혹시 검은색에 흰색 줄무늬 있는 고양이요?" 놀란 눈으로 그녀가 말했다.
"맞아요. 도로 위에 위험하게 있는데 제가 잡을 수가 없어서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나를 따라나섰다.
"어젯밤에 왔던 고양이예요."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전날 밤,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동네에서 움직이지 않고 아파하는 듯한 길고양이를 몇 명의 학생들이 발견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그들에게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돈을 쥐어주며 병원에 데려가라 했고 24시간 운영하는 그 동물병원에 왔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병원에 와보니 병원비를 내기에는 아주머니가 준 돈이 턱 없이 부족했고 학생들이라 그들도 병원비가 부담되었는지 치료를 하지 않고 돌아갔다고 한다. 간호사 말로는 그들이 고양이를 병원 근처에 그냥 풀어놓고 간 것 같다고 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서 자기 영역을 떠나면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고 알고 있다. 의도치 않게 집을 나간 고양이가(건강한 고양이인데도 불구하고) 건물의 벽 틈새나 자동차 밑에서 덜덜 떨며 움직이지 않는 경우를 영상에서 본 적이 있다. 하물며 아픈 고양이라면 어떻겠는가.
동물병원 간호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동물털 알레르기(강아지, 고양이)로 진료받은 환자였던 것을 기억해 낸다. "혹시 잡게 되면 제 이름으로 급한 처치부터 해주세요. 저는 출근해야 해서 일단은 가볼게요." 다리를 절면서도 차도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건물 내부로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던 고양이를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구출해 줬고, 1시간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고양이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보이는데 검사를 진행해야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비용이 꽤 든다고 했다. 검사를 해달라고 했다.
오전 근무 후 퇴근을 했고 곧장 동물병원으로 가 고양이를 진료한 수의사에게 설명을 들었다.
"고양이 이름은 없죠? 일단 '길고양이'로 등록했고요, 상태가 많이 안 좋네요. 크레아티닌 수치가 11 정도 되고, 심부전도 같이 있어요. 다리는 오래전에 골절되었다가 잘못 붙어버린 상태입니다."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었나 보다. 사고는 오래전 일이었고 지금 고양이는 간신히 생명을 붙들고 있는 위태로운 상태였다. 다리가 불편하니 제대로 음식이나 물을 먹지 못해 장기의 기능이 점점 나빠진 것일지도 몰랐다. 크레아티닌 수치는 신장 기능을 평가하는 수치로 높을수록 신장 기능이 안 좋음을 뜻한다. 심부전은 심장 기능이 좋지 않다는 말이다. 동물과 사람이 다를 수도 있지만 신장 기능과 심장 기능이 같이 나빠져 있는 경우는 아주 절망적인 상황이다. 단순하게만 설명을 해보자면 신장 기능이 낮을 때는 보통 물(수액)을 넣어주는 방향으로 치료하고 심장 기능이 나쁠 때는 물(체액)을 빼내는 방향으로 치료한다. 그래서 두 기능이 동시에 나쁘면 치료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아주 어렵다. 물을 넣어주면 심장이 힘들어하고 물을 빼면 신장이 힘들어한다. 더구나 지금 고양이는 단순히 물을 넣어주는 것으로 회복될 정도의 신장 상태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저 고양이가 사람이었다면 투석을 하면서 수액치료를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투석을 심장이 버텨주지 못하면 ECMO라는 체외순환장치(심장 역할을 대신하는 기계)를 같이 돌려야 하는 상황까지도 생겼을 것이다.
이제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치료를 버틸 수나 있을까. 치료가 의미는 있는 것일까. 차도에 웅크리고 덜덜 떨고 있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자연의 섭리대로) 죽음을 향하고 있는 고양이를 괜히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낯선 사람의 손에 잡혀 두려워해야 했고 큰 의미도 없는 피검사를 하느라 아파야 했고. 그냥 두고 왔다면 곧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르는데 구조랍시고 내가 오지랖을 부린 건 아닐까. 그러나 미약한 숨이지만 고양이는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었고, 눈빛에서는 처음과 달리 오히려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고민이 많아졌다.
수의사도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는 않았고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알렸다. 그녀가 권한대로 수액치료부터 천천히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났을까. 점심 식사를 하는 중 전화를 받았다.
"동물병원입니다. 길고양이 심장이 멈춰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어요."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