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독 알레르기 주의보

by 강상록

2주 전쯤 벌에 대한 알레르기 검사가 필요하다며 환자 몇 명이 오셨습니다. 강원도에서 트레일러닝* 대회를 나가야 하는데 주최 측에서 벌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확인하도록 권고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얼마 전 비슷한 대회 중 벌에 쏘인 어떤 참가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더군요. 강원도에서 진행하는 트레일 러닝이라고 하면 대부분 산길을 달리게 될 테고 벌에 쉽게 노출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더구나 강원도에는 상대적으로 병원이 많지 않고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산속까지 구조대가 도착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렸을 것입니다. 보통 벌에 쏘이고 알레르기 증상이 시작되면 한시가 급한데,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분들 외에도 벌쏘임이 늘어서 병원에 환자가 많습니다. 지금이 딱 야외활동 증가로 벌과의 접촉이 많아지는 시기입니다. 가을철에 성묘, 벌초를 하던 중 벌쏘임에 의한 사망사고가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벌독 아나필락시스란?

벌에 대한 알레르기를 의학적으로는 벌독 알레르기라고 부릅니다. 굳이 따지자면 벌 자체가 아니라 벌이 가지고 있는 독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이니까요. 벌독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벌에 쏘이면 간단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끝나지 않고 대부분 '아나필락시스'를 경험합니다. 아나필락시스는 일반적인 알레르기 반응보다 심한, 생명을 위협할만한 알레르기 반응을 이야기합니다. 두드러기, 기도부종, 호흡곤란, 혈압저하, 복통 등이 주증상이며 빠른 시간 안에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하면 호흡부전과 혈압저하로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벌독 알레르기검사는 간단한 혈액검사로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임상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꿀벌과 말벌인데 검사가 가능한 종류로는 꿀벌, 땅벌, 노랑호박벌, 흰얼굴호박벌, 종이말벌 등이 있습니다. 꿀벌 외에는 모두 말벌에 속하는 벌입니다. 말벌끼리는 교차항원성이 크기 때문에 한 종류라도 알레르기가 있다면 모든 종류의 말벌을 조심해야 합니다. 두 가지의 혈액검사 방법 중 MAST보다는 ImmunoCAP으로 개별적인 항목을 정밀검사하시는 편이 당연히 더 좋습니다(MAST는 별로 좋지 않은 검사라고 제가 항상 말하고 다니는 검사입니다. 세상 모든 알레르기 2화를 참고해 주세요).


대처방법은?

벌독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은 일단 무조건 벌을 피해야 합니다. 벌독 아나필락시스를 경험해서 내가 죽을뻔한 적이 있다면? 트레일러닝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등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꼭 하고 싶으면 긴팔, 긴바지에 얼굴도 모두 가리고, 벌레 기피제 뿌리고, 밝은 옷 입고(벌은 어두운 색 동물을 천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한다고 합니다) 해야 합니다. 대처를 과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나필락시스를 확실히 경험했고 벌독 알레르기까지 확인되었다면 비상용 주사를 처방하기도 합니다. 젝스트(JEXT)라고 부르는 펜처럼 되어 있는 자가 투약용 '에피네프린' 주사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응급한 상황에 주사를 꺼내 허벅지에 스스로 찌르는 장면을 보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주사입니다. 벌에 쏘인 후 증상이 점점 심해진다면 정신을 잃기 전에 스스로 주사를 투약하고 119에 바로 신고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치료방법이 있다

불행 중 다행히도 벌독 알레르기를 근본적으로 완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항원특이 면역치료라는 이전에도 여러 번 말씀드린 면역치료가 벌독에 대해서도 가능합니다. 특히 벌독 항원특이 면역치료는 다른 항원에 비해 효과도 좋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벌독 면역치료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약물 수급이 안되고 있습니다. 벌독 알레르기 환우회 같은 곳에서 여러 곳에 문의하고 국가 차원에서 약을 수입해 주길 요청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양봉업을 하시는 분들 중 벌독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은 더욱 절실한 상황입니다.


결론

최선을 다해 벌을 피합시다. 벌독 아나필락시스를 경험하신 분들은 반드시 비상용 주사를 구비합시다. 면역치료가 도입될 수 있도록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트레일러닝: 트레일(trail)은 길을 의미하며 주로 포장되지 않은 길을 의미한다. 따라서 트레일러닝은 포장된 도로에서 진행되는 일반적인 마라톤과 다르게 산, 들, 올레길 등 자연에서 진행되는 달리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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