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학(osteology)'이라고 부르는 뼈를 배우는 학문이 있다. 의대에 입학하고 첫 2년 동안은 '예과'라고 부르며 비교적 편하게 기초과목을 배우고, 다음 4년간은 '본과'로 올라가 본격적인 의학공부를 시작한다. 예과에서 본과로 넘어가기 직전, 2학년 겨울방학에 골학을 배운다.
사람에게는 206개의 뼈가 있다. 먼저 뼈의 이름을 외운다. 팔, 다리, 갈비뼈 등 대칭되는 뼈들도 많으므로 실제 외워야 하는 이름은 206개보다는 적다. 뼈 하나에 이름 하나만 외운다면 할만할 텐데, 문제는 이 학문을 만든 사람들이 그 정도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뼈에 있는 온갖 특징을 찾아내 이름을 붙여놨는데, 예를 들면 움푹 파인 곳, 조금 덜 파인 곳, 아예 구멍이 뚫린 곳, 뼈의 선, 뼈의 면, 뼈의 머리와 목, 매끈하다가 갑자기 각진 곳, 표면 감촉이 다른 곳 등이다. 조금이라도 특징이 있으면 모조리 이름을 붙여놨다(그것도 라틴어로). 우리는 뼈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세부적인 이름을 모두 외워야 했는데, 뼈 하나에 10개 남짓한 이름이 추가로 붙어있다고 한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0개 이상의 (이상한) 이름들을 외워야 했다.
기간은 일주일이었다. 한 학번 선배들이 우리를 가르쳤고 학번 전체가 합숙을 하다시피 했다. 단순한 학문 전달의 목적 외에 '군기'를 잡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수업과 자습, 쪽지시험이 하루 종일 이어지고 밤늦게 귀가한 후에는 조별로 모여 과제를 해야 했다. 선배들은 하루 밤 사이에 절대로 끝낼 수 없는 양의 과제를 내주고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확인했다. 과제를 다 마치지 못해도 최선을 다한 흔적이 보이는지, 그냥 덮어놓고 자버렸는지. 이 밖에도 여러 방법을 동원해 신체적, 정신적 한계까지 우리를 몰아붙이며 그 와중에도 끈질기게 골학을 공부시켰다. 반쯤 자고 있는 우리의 머리 뚜껑을 열고 지식을 하나하나 떠 넣어주는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본과에 들어가면 이렇게나 힘들 테니 미리 각오하자'라는 의미도 있었던 것 같지만,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힘들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골학 기간의 한줄평을 하자면 '아주 쓸데없는 것을 아주 힘들게 배웠다' 정도가 되겠다.
본과에 들어가면서 의대생들의 가장 큰 관문인 해부학을 배우게 되었다. 방대한 학습량과 하루 종일 서서 시신의 모든 곳을 파헤쳐 관찰해야 하는 고된 실습이 이어졌다. 해부학을 배우면서부터 비로소 골학이 쓸데없지만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뼈에 그런 자질구레한 이름이 붙어있는 것은 이름이 붙어 있는 그곳이 신경과 혈관이 지나가거나 근육과 인대가 붙는 기준이 되는 위치이기 때문이었다. 모두 의미가 있는 이름이었다. 골학을 모른다면 해부학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진작 이렇게라도 언질을 줬으면 쓸데없는 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때때로 내가 쓰는 글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아무도 안 읽겠다 싶은, 내가 봐도 재미없는 글을 꾸역꾸역 쓰고 있을 때도 많다. 글쓰기가 버겁고 지겹던 어느 날, 뼈에 새겨진 의미 없어 보였던 이름들이 기억났다. 때때로 글쓰기는 뼈에 붙은 이름을 외우던 일과 비슷하다. 힘든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왜 하는지도 모르는 공부를 하던 일과 비슷하다. 기초를 다지고 토대를 쌓는 일은 언제나 지루하기 마련일 텐데, 사람의 기초가 되는 뼈에 그렇게나 지루한 이름들이 잔뜩 붙어있는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신경과 혈관이 지나고 살이 붙어 결국 한 생명을 이루는 것처럼 오늘 쓰는 한 문장이 뼈와 살이 되고 신경과 혈관이 되어 책 한 권을 이루는 날이 오겠지. 나는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시간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재미없는 글쓰기라도 결코 멈출 수가 없고, 뜻밖의 위로를 받는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겠다. 뼈를 생각하다가 글 한 편의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