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빈 종이에 연필로 글씨를 써 내려간다. 새벽 6시 18분. 종이에 써지는 연필의 감촉이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사각거리는 소리는 따뜻하다. 누군가가 종이에 직접 연필로 쓰는 글과 아침 일찍 쓰는 글의 특별함을 말했다. 글쓰기가 나아질까 싶어 무작정 따라 해 보는 중이지만 아직은 무슨 말을 써야 할지조차 모른다. 마법처럼 글이 술술 써지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제의 꿈이라도 기억해 내어 적어볼까 하지만 기억의 '느낌'만 떠오를 뿐, 내용을 떠올릴 수는 없다. 주기적으로 꾸는 '시험 보는 꿈'을 또 꿨을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그저 글쓰기일 뿐인데 나는 이것 역시 시험처럼 만들어 버린 듯하다. 모든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 평가받고, 이왕이면 잘 써내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 글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그 욕구는 견고한 기둥이 아니라 곧 무너질 모래, 녹아 흐를 얼음 같은 것이다. 근래에는 무엇이든 써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온통 사로잡고 있으나 이 강박은 오히려 나를 오래 쓸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 것임을 안다.
아무 말이나 써도 되는 나만의 공간과 시간에 아무 말이나 쓰는 법을 잊은 내가 우두커니 앉아만 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꾸준히 쓰게 하고 새벽부터 연필을 잡게 할 것인가. 지속하게 할 힘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쓰고 싶은 마음, 단지 그뿐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