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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록 May 10. 2024

고양이는 무슨 잘못을 했나

[알레르기 이야기]

반려동물 양육 인구 1000만 시대는 진즉에 지났다. 조사 단체에 따라 양육 가구수는 300~600만, 양육 인구수는 1000~1500만 정도로 추정하여 발표하고 있는데, 정확한 통계조사는 어려운 듯하나 그 수가 늘어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동물과의 접촉이 늘면서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반려동물 알레르기도 자연히 늘어나고 있는 것을 체감한다.


    반려동물 알레르기의 치료 방법은 두 가지다. 반려동물과의 분리, 그리고 면역치료. 알레르기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항원을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이고 치료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항원을 피하는 일이 불가능한 알레르기가 대부분이다(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중에 동물 알레르기는 항원을 피하는 일이 거의 완벽히 가능한 몇 안 되는 경우에 속한다. 같은 공간에 동물이 없으면 된다. 하지만 말이 쉽지, 당연히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반려동물도 가족인데 쉽게 다른 곳으로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하는 치료가 면역치료다. 정확한 용어로는 항원특이 면역치료. 고농도의 항원을 일부러 주사로 투여하여 알레르기 항원에 면역을 유도하는 치료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고양이 알레르기는 치료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고양이를 치료하는 방법이다. 어떤 이유로 고양이에게는 이런 연구를 했고 치료법들이 나오고 있는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고양이의 알레르기 항원성을 없애주는 치료가 개발되고 있다. 일단 고양이가 분비하는 알레르기 항원 단백질을 덜 만들도록 해주는 사료가 있다. 이 사료는 해외에서 오기 때문에 직구나 구매대행으로만 구입이 가능했었고 구하기 어려운 사료로 유명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알레르기 사료가 나오는 회사는 한 곳뿐인지, 공급은 원활한지, 자세한 근황은 모르겠으나 반려인들이 실제로 시도하고 있는 방법이긴 하다. 두 번째 방법은 고양이에게 면역치료를 하는 것이다. 사람이 맞는 면역치료와 비슷한 원리이지 싶은데, 주기적으로 고양이에게 주사를 투여하여 알레르기 항원성을 줄여주는 치료다. 고양이에게 하는 주사치료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불현듯, '왜 고양이가 치료를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고양이라면 다소 억울할 것 같아 고양이의 입장을 대변해 본다. 먼저 고양이는 자기가 알레르기 물질(항원)을 뿜어대고 있는지 모른다. 귀여운 우리의 고양이는 그냥 본능대로 밥을 먹고, 배변을 하고, 털을 핥는 것뿐이다. 알레르기 물질을 분비해서 당신을 괴롭히겠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더군다나 당신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고양이의 항원 단백질은 모든 고양이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필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항원에 대해 특정 사람이 반응을 하는 것뿐이지 대단히 유독한 물질이거나 보통의 사람에게 해를 끼칠만한 물질이 전혀 아니다. 두 번째로, 고양이는 가고 싶어서 당신 집에 간 것이 아니다. 물론 갈 곳 없는 길고양이를 데려다가 키우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고양이는 할 말이 없지만, 당신의 고양이는 처음부터 원해서 당신 집에 간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당신의 선택이었을 뿐. 세 번째로, 고양이는 당신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지 모른다. 알고도 찾아왔으면 고양이 책임이 크지만 고양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당신도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지 모르고 고양이를 데려왔겠지만(혹은 키우면서 생겼거나) 다들 처음에는 그 정도 각오는 하고 고양이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던가. 무려 고양이인데! 간혹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알고도 키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더욱더 할 말이 없다. 본인이 알레르기가 있는 것을 알고도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으면서 오히려 고양이를 치료한답시고 고생시키면 안 되지 않겠는가.


    내가 고양이도 아닌데 너무 열을 냈다. 나는 동물을 사랑하지만(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반려견이 있다) 사람보다 동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누가 치료를 받을 것인가 하는 이번 문제에 대해서는 고양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이제 아무 잘못이 없는 고양이는 괴롭히지 말고 사람이 치료받도록 하자. 물론 알레르기 사료 먹이는 정도로는 고양이를 괴롭힌다고 할 수 없겠지만, 고양이에 따라 그 사료가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에게 치료받은 어떤 블로거가 글을 남겨 주셨다. 


    "이제 고양이와 같이 잘 수 있어요"


    당신도 고양이와 잘 수 있다. 연락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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