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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tpaper Sep 25. 2024

취미의 필요성

오랜만에 신입이 입사했다고 다들 반가워해줬고 대부분 40대~50대 워킹맘이라 분위기가 좋았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입사 동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시설이 처음이라 무척이나 긴장했었는데 경력직 입사동기가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직장은 걸어서 20~30분 정도 거리라 출퇴근하기에 편했다. 

그동안 대학로, 수원, 마포, 용산 등에서 출퇴근하면서 편도 1시간은 길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걸어서 30분 내외면 정말 축복받은 직장이었다. 


입사하고 일주일 즈음 됐을 때 실장님과 면담을 했다. 

여럿 이야기 중에 취미가 있는지 어떤 취미를 즐기는지 물어왔다. 

특별한 취미가 없던 나는 그냥 넷플릭스 시청을 이야기했는데, 뭔가 아쉬워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너무 보편적인 취미라 그러려니 했는데, 실장님은 힘주어 한마디를 하기를 '취미를 반드시 가지세요!!'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이유가 있는 말이었다 싶지만, 그때는 뭐 이런 말을 이렇게나 진지하게 하나 싶었다. 알고 보니 실장님은 여행이 취미였고, 당일치기 일본 여행도 즐 길 정도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여행으로 푸는 여행족이었다. 그만큼 업무 스트레스가 많은 직종이었고, 집에 가만히 있는다고 쉽게 풀릴 스트레스가 아니었 던 것이다. 


9월에 입사한 나는 3개월 계약직이었는데, 이듬해에 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 처음 1년은 정신없이 이리저리 치이면서 보냈던 것 같다. 업무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집에서 쉬면 된다고 생각해서 퇴근 후 집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가끔 지인을 만나는 게 다였다. 


그 무렵 입사동기는 이직을 강행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사무실에 들어서면 숨 쉬는 게 어렵다는 이유였다.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가서 차마 붙잡지 못했다. 그렇게 3년 차를 맞았고 나 여전히 이렇다 할 만 취미 없이 침대에 누워 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4년 차가 될 즈음 소비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피부과에 가서 관리도 받고 올리브영에서 화장품도 구입하며 스스로의 외모를 가꾸는데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들이고 있었다.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누구나 다하는 소비고 나 또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소비라 생각하며 지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밤에 자다가 발작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번 그러다 두 번 언제부터인가는 일주일에 한 번에서 삼일에 한 번으로 그 횟수와 빈도가 늘어났고,  불면증까지 생겨 하루에 숙면을 취하는 시간이 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밤 정신을 차려보니 거실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무렵에는 모든 게 다 예민했다.

사무실 동료들이 하는 모든 대화가 모두 내 험담 같았다. 사실 그들의 대화 주제 대부분은 드라마나 가족이야기였는데도 말이다. 점점 내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동네 정신병원을 찾았다. 의사의 진단명은 조울증이었다. 정도가 심각해서 약의 종류도 다양했다. 조증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감정을 다운시키는 약부터 우울증 약까지 한 번에 4~5개의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부작용이 여럿이었다. 수전증으로 글씨를 쓰기 어려웠고, 음식물 섭취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대화가 어려웠는데, 복용하는 약 중에 뚜렛증후군을 저하시키는 약도 있었다. 


새로운 약이 추가되거나 바뀌는 약이 있을 때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서 나의 상태를 체크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증상과 정도에 더 우울해졌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조증과 울증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의사는 자각이 된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나에게 의미 없는 희망이었다. 


약을 복용한 지 8개월이 됐을 무렵 약물 부작용으로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생각돼서 의사와 상의 없이 약복용을 중단했다. 주변에서는 의사와 상의하고 중단할 것을 권했지만 약물 의존도가 높다고 생각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약물 부작용으로 점 점 더 피폐해지는 것 같아서 복용을 중단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약물을 중단한 게 오히려 잘한 일 같다.


지금은 조울증 증상도 없고, 매년 여름이면 찾아온 공항도 없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사무실에서 업무 조정이 있었다. 센터장님과 실장님에게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것을 알려서 바뀐 변화다. 


모든 직장인들은 내가 짊어질 만큼의 업무와 걱정거리 이상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한다. 그 정도가 과해지면 번아웃이 생기고 만성 우울증이 찾아오는 것 같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이직이라고 하지만 쉽지 않고 견디자니 버겁고 그래서 현실적인 방법으로 자신만의 취미를 퇴근 후에 갖게 된다. 퇴근 후에 만나는 나야말로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인 건데 난 그 시간을 너무 허무하게 흘려보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과제를 해치우듯이 나만의 취미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체력에 내 성향에 내 만족도에 맞는 것을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나를 위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도 찾고 있다 나의 취미를 요즘은 요가도 하지만 최근에는 걷기 모임에도 가입했다. 운동은 장비빨이라 최근에는 러닝화와 트레킹화도 구입했다. 앞으로 또 어떤 소비가 이뤄질지 모르겠지만 의미 있는 소비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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