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tpaper Sep 26. 2024

모든 것은 지침에 있다.

모든 공적자금이 그러하듯 예산 사용에는 지침이 있다. 


예산의 항목에서부터 각 사업의 지출 방법과 증빙자료 첨부 그리고 그리고 왈가왈부하기 십상인 근로규칙도 지침에 의해 진행된다.

 

문화행정에도 물론 예산 지침이 있다. 새로운 사업이 추진될 때면 한 권의 책이 내 손에 쥐어지는데 그것은 마치 백과사전 두께의 어마무시한 책으로 목차와 문서 양식만 나열했을 뿐인데 5페이지를 훌쩍 넘긴다. 


복지행정도 다르지 않다.

500페이지는 족히 넘길 만한 책자가 입사와 동시에 내 책상에 놓이는데 한 달을 뒤적여 보아도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업에 투입되고서야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데 솔직히 이 리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지침을 제대로 볼 시간도 없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일쑤인데, 그나마도 비슷한 질문을 두 번 이상하게 되면 지침을 보라는 말이 되돌아온다.


그러는 사이  나는 어느새 쉽고 만만한 신입 실무자로 주민들에게 낙인이 찍혀간다. 


우리 시설을 이용하는 주민은 대게 50대~65세의 중장년층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주민이 이용한다.

우리 센터에 오기까지 각자의 사연을 들으려고 하면 3박 4일로도 모자를 만큼 큰 일을 겪는 분들이 많다. 몸이 아파 여러 번의 수술 끝에 건강은 얻었지만 경제력을 잃어 수급자가 된 분도 계시고, 번창하던 사업이 잘 안 되면서 오신 분도 있다. 다들 각자의 인생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수급자가 되어 구청으로 부터 의뢰받아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중장년층이 많기도 하지만 사회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 취업이 어려워 오신 분들도 많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자격지심도 심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갖은 것에 대한 질투와 미운 감정을 서습 없이 내비치신다.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고 들기도 하지만 권한 있는 누군가 자신의 편에서 손들어 주길 바라기도 한다. 주민들은 그렇게 실무자를 쥐락펴락 하고 싶어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지침이다. 

실무자가 개인의 주관으로 혹은 가치관을 가지고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면 균형 감각을 잃어 누구의 편도 되지 못한 채 욕받이가 되고 만다. 나는 그런 과정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답이 없었던 게 아니라 지침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사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대부분 대동소이하게 비슷한 사건 사고가 많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예전에 센터가 어떤 기조로 어떤 결론 내렸는지가 중요하다. 사회복지시설은 그래서 경력만큼 중요한 것이 동료와의 소통이고 관실장과의 관계인 것 같다. 


실무자가 혼자 결정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구조다. 

만일 실무자가 내린 결정에 주민이 불만을 품게 되면 구청과 경찰서 그리고 복건복지부에 민원이 들어가고 그 로인한 뒷감당과 수습 과정은 아주 오랫동안 상처로 남는다.


사실 난 mbti가 infp였는데,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면서 istp로 바뀌었다.

그만큼 감정적으로 움직였던 사고의 패턴이 이성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5년 차가 되었지만

우리 센터에는 10년 차도 있고, 20년째 일하는 직원도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입사한 신규 직원은 이제 곧 한 달이 된다. 

내가 겪은 일들을 곧 신규 직원이 겪게 될 것이고, 

10년 차 20년 차 된 직원이 했던 고민을 내가 하게 되겠지만


복지행정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주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지원하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좀 더 따뜻하고 촘촘한 안전망에서 종사자도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전 04화 입사를 해야 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