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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전쟁 in 스웨덴

20-2. 비르카(Birka)-스웨덴 최고(最古)의 도시

by Tangpi

*아델쇠(Adelsö)의 고대 유적지인 호브고르덴(Hovgården)의 맬라렌(Mälaren) 호숫가에서(2021.4.3)


'스웨덴에서 세워진 첫 번째 도시'라고 불리는 비르카와 호브고르덴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스웨덴의 15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가 되었다. 이는 바이킹이 정치경제적으로 유럽에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기인 A.D. 700~900년 경 200여 년간의 그들의 무역 네트워크 형성 모습을 완벽하게 잘 보존한 것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9세기 Birka섬 복원 모형(2022.6월, Birka섬 박물관)


"무역 도시였던 비르카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5m 높아 지금보다 해상통로로 나가기 용이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750년~975년 경 번영하여 700~1000명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야.

Hovgården, Adelsö, Birka 각각의 위치(2022.6월, Hovgården지역 안내판)


비르카가 접하고 있는 맬라렌 호숫가의 항구에는 100m 길이의 부두가 있었고, 근방에는 수공업자들이 모여 살았던 긴 모양의 집들이 있었으며, 부유한 상인들은 대저택에 거주했을 것이라고 해. 9세기말 기록에 따르면, 830년 북부 독일의 수도승인 Ansgar가 이 섬에 도착한 이래 교회도 세워지고 일부 주민들은 기독교신자가 됐지만 대부분은 기존 신앙을 고수했다고도 하지.


하여간 무역이 융성하다 보니 음식물에 파리가 끼듯 당시 도적들의 침입이 심했기 때문에 도시는 바닷가에 방어물을 설치하거나 성벽을 쌓고 요새화됐는데 지금도 그 자취가 남아있어. 불행히도 이러한 침입이 점점 늘어나더니 10세기말 전쟁으로 이 도시는 불타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바이킹이 만든 도시에 도적 떼들의 침입이 심했고 결국 그로 인해 불타 없어졌다고? 아이러니하군. 그런데 이런 모습은 어떻게 추정이 가능했던 거지?"


"비르카와 호브고르덴은 지금도 섬으로 이루어져 육지로부터 격리되어 있어 도시가 폐허가 된 이후 사람들의 왕래도 드물다 보니 역으로 당시 유적들이 그대로 묻힌 채로 보존될 수 있었던 거지. 지금도 스톡홀름에서 출발하면 호브고르덴은 차로 한두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지만, 비르카는 배로만 도착할 수 있는데 이것도 여름철에만 개방하고 있어.

스톡홀름(Drotningholm)에서 Birka와 Hovgården 가는 길


이러한 폐쇄된 환경으로 아까 말한 거주지역들을 중심으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6개의 대규모 묘지를 중심으로 3,000여 개 이상의 무덤이 발견되었으며, 섬 전체가 박물관일 정도로 많은 유물들이 나왔어. 1680년대 최초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래, 19세기와 1990년대 대규모 조사가 이어지면서 조밀하고 계획된 거주지였던 비르카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지. 어디 대표적인 묘지들 몇몇을 볼까?"

섬 전체가 박물관인 비르카섬(2022.6월, Birka섬 박물관)


"왕의 묘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견된 물품을 보면, 당시 이 지역을 지배했던 왕은 금, 은, 유리, 비단, 와인, 무기 등 귀중품 거래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장거리 무역로를 발전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대. 이러한 무역의 융성으로 유럽과 아시아에서 상인들이 건너온 곳으로 추정되며, 북유럽에서 이만큼 대규모 무역 접점은 없었을 것이라고 하네. 초기에는 발틱해 지역 위주의 무역이었지만, 이 바다를 건너 러시아 내륙의 강을 따라 이동하는 항로가 개척되면서,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까지 이르렀다고 해."


"뭘 가지고 그렇게 무역을 했을까?"


"비르카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수공품 이외 가죽, 철광석 심지어는 노예까지 수출했고, 권력자들의 힘이 강화되면서 수요가 증대된 사치품들도 많이 거래했다고 해. 특히 바이킹들의 은화에 대한 수요가 강해 이슬람 칼리프 시대 은화들이 대량 유입되었다고 하지. 그래서 아랍 등 여러 민족들이 거리를 활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군.


또한, 무덤 발굴을 통해 당시 매장풍습 등이 하나의 종교나 관습에 따르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당시 이 지역에는 다양한 지역과 국가의 출신들이 살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어."

02 발굴된 물품.JPG 무덤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2022.6월, Birka섬 박물관)


당시 'Rus'라는 이름은 동쪽에 살던 바이킹을 지칭했는데, 이들의 러시아 왕국의 기원이라는 설도 있어. 오늘날 러시아의 이름과 비슷하잖아? 하여간 아랍의 외교관이었던 Ibn Fadlan 이 922년 볼가강에서 그들과 만나 상당히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기록도 있어. 이들의 비르카 유입도 상당해서 그들의 무덤에는 '장식된 전투용 칼'과 같이 동양스타일의 유물도 발굴된다고 해."



"한편, 1980년데 비르카 요새 북부 지역에서 바이킹 시대 거주지를 발굴하던 학자들은 한 집의 서쪽 문의 문턱 아래 흥미로운 무덤을 발견했는데 바로 1.4mx2.5m의 석곽분이었어. 이 석곽분 안에는 두 개의 유골이 포개진 채 있었는데, 한 사람은 50대의 중년남이었고 그 아래 키 177cm로 추정되는 젊은이가 있었다는군.


특히 이 중년남의 옆에는 엘크 사슴의 뿔이 있어 이 유골의 주인은 '엘크맨(The Elk Man)'이라고 명명되었어. 보통 이러한 엘크 사슴뿔과 같이 매장된 이들은 사냥꾼이나 고급 군인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유골 옆에는 부싯돌과 창, 방패, 칼, 화살촉 등과 같은 무기들도 발견되었다고 해.

03 elk man.JPG 엘크맨(The Elk Man)의 석곽묘와 출토물(2022.6월, Birka섬 박물관)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젊은이는 아무런 유장품이 없이 목이 잘린 채로 그 목은 가슴 옆에 놓인 채로 합장되었는데, 바이킹 시대 풍습 중 하나인 주인을 따라 합장된 것이 아닌가라는 학설도 제기되었지.


또한 그의 이빨에는 쇠와 같은 물질로 표면에 표식을 한(dental modification) 것도 발견됐어. 이러한 표식은 부족의 일원임을 표시하기 위함으로 추정되는데, 고틀란드 섬이나 덴마크, 영국에서 발견된 유골에서도 나타나며, 이 석곽묘의 젊은이 유골에 나타난 것이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해."



"그런데 아까 보니 여기 비르카 섬에서 발굴된 유물 중 대표적인 게 '녹색 컵'이라는데..."

Birka섬 박물관에 전시된 녹색 컵(2022.6월)

"1877년경 발굴 조사된 여성의 무덤에서는 다양한 장신구, 나무 상자, 브로치, 가위, 칼, 옷조각 등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녹색 컵(green beaker)'이 발견되자 탐사자들이 탄성을 질렀다고 해.


이러한 녹색의 투명한 컵은 로마시대 유형으로 자주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Charlemagne, 742~814) 황제 시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


한편 프랑스 카롤링거 궁전에서도 유사한 것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완전하게 보존되기로는 여기 것이 유일하다고 하지. 그래서 발굴자들이 환호성을 질렀었을 거야."


"이와 함께 가위, 목곽상자, 나무 물통, 이슬람 지역의 은화도 함께 발견되었어. 보통, 가위가 발견되는 경우, 저울이나 동전 등과 함께 발견되는데, 이는 이 여인이 바이킹 시대 가장 중요한 교역품 중 하나인 옷감(textiles)을 교역하는 상인이었음을 의미한다고 해.


04 녹색컵여인1.JPG 발굴된 유물을 중심으로 복원한 비르카 섬의 여성 상인(2022.6월, Birka섬 박물관)


"이렇게 융성하던 비르카섬은 지반 상승으로 해수면과의 격차가 커지면서 항구로서의 이점이 사라지며 은 등 주요 교역품의 수입이 반으로 줄어들며 10세기말부터 쇠퇴하기 시작했어. 또, 기독교의 융성에 따라 국가의 중심이 옮겨가게 되고 당시 실력자인 Eric 왕은 980년경 스톡홀름 북서쪽의 시그투나에 왕국을 설립하면서, 점차 스웨덴의 중심은 비르카섬 일대에서 동쪽으로 옮겨가며 이 지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


"지난번에 바이킹에 대해 알아볼 때, 그들이 단순 무식한 해적이 아니었고 중동까지 무역을 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좀 갸웃했는데 이제야 그 말이 좀 이해되는 것 같네. 스웨덴 사람들을 만나 바이킹을 얘기하면서 누구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해적으로 묘사하기보다, 무역상으로서 바이킹의 스토리를 얘기해 주면 좀 더 그들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바이킹은 스웨덴의 개성상인이야!"

Hovgården* 아델쇠(Adelsö)의 고대 유적지에서(20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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