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노벨상-'그렇게' 바라면서 '그렇게도' 모르는 우리
* Nobel Lecture-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강연회(2019.12월, 스톡홀름)
"저희의 마지막 발표 주제는 '노벨상'입니다."
"엥? 너무 식상한 주제 아닌가? 다 아는..."
"과연 다 알고 있을까요?"
TS 팀은 노벨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표하면서, 5개 문장 중 틀린 것은 몇 개인지 물었다.
"노벨의 유언대로 제정된 '노벨상(Nobel Prize)’의 수상 분야에는 물리, 화학, 경제, 생리의학, 문학, 평화 6개 부문이 있습니다. 특히,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유명한 독재자들은 제외하고는 매년 가장 많은 후보들이 올라오는 분야는 평화상이라고 합니다. 2000년 수상자였던 김대중 前 대통령처럼 수상자들에 대해서는 시상식날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엄청난 플래시가 터집니다. 수상자 선정은 주관 기관인 스웨덴 왕실의 강력한 권위에 눌려 로비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일단 선정된 수상자들은 10억이 넘는 상금과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기에 수상을 거부한 사람은 없습니다."
"....."
"다 맞는 거 아니야?"
"틀린 거 있어요?"
"정답은 5개 문장 모두 틀렸습니다."
".....!"
"하나하나씩 보시죠."
"1896년 노벨은 자신의 자산 모두를 처분해 기금을 만들고, 그 이자로 물리, 화학, 의료, 문학, 평화 5개 분야에서 ‘인류 사회의 이익에 지대한 공헌(greatest benefit to mankind)’한 사람들에게 상금을 지급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이 유언에는 왜 다섯 분야를 특정했는지의 이유도 없었고 간략한 언급이었기에, 이후 노벨상을 구성하고 전통을 지켜나가는데 매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요. 왕실과 친지들의 반대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 유언의 집행자 Ragnar Sohlman 이 산고 끝에 1900년 '노벨재단(Nobel Foundation)'을 구성하고 초대 사무국장이 되어 1901년 제1회 수상자를 발표하며 현재의 기틀을 다졌지요. 첫 물리학상 수상자는 방사선을 발견한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이었고 평화상은 국제 적십자사를 창설한 '앙리 뒤낭'에게 수여되었습니다."
"아~ X선을 발견한 뢴트겐!"
"이후 다섯 부분으로 유지되다가, 스웨덴 국립은행이 창립 300주년을 맞아 위 다섯 부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경제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엄청난 기금을 내면서 1968년 노벨경제학상이 생겼어요.
노벨경제학상은 공식적인 명칭도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로 다른 노벨상의 명칭인 ‘Nobel Prize’와 다릅니다. "
"그럼 앞으로도 대기업 같은 데서 기금을 내고 다른 분야도 좀 생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오. 이후 노벨재단은 더 이상의 수상 분야 확대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래서 한국계 수학자가 받아 알려진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과 같이 '~계의 노벨상'이라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유명한 독재자들은 제외하고는 매년 가장 많은 후보들이 올라오는 분야는 평화상'이라는 문장은 평화상 후보가 가장 적어서 그렇다는 거요?"
"아뇨.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 국회에 소속된 사람이면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하는 평화상의 후보가 실제 가장 많다고는 합니다. 다만... 아돌프 히틀러가 노벨 평화상 후보였다는 건 사실이에요. 이에 심사위원들은 어이가 없어했고, 히틀러를 추천한 위원이 나중에야 화들짝 놀라 철회 요청 편지를 몇 번이나 보냈지만 마감이 지나 그 기록은 역사에 남게 되었죠. 추천 이유도 아직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스탈린도 후보자였고,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논란이 되신 분이 있기도 합니다."
"그럼 '2000년 수상자였던 김대중 前 대통령처럼 수상자들에 대해서는 시상식날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엄청난 플래시가 터집니다.'는 뭐가 문제지?"
"김 대통령은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에서 수상했어요. 발표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했고요. 노벨은 유언장에서 평화상만큼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The Norwegian Nobel Committee'에서 선정해달라고 했거든요. 그 이유는 유언장에는 적혀있지는 않아요. 발표 보도에도 '노르웨이 노벨위원장'이라고 나옵니다.
작성 당시에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연방체제(1814년~1905년)라 노르웨이 정부도 스톡홀름에 있었고 스웨덴 왕의 통치를 받아 두 나라 간 감정이 안 좋았다고 해요. 그의 편지 등을 통해 추측해 보건대, 전쟁을 혐오했던 노벨은 두 나라의 평화를 위해 평화상만큼은 노르웨이에서 수여하기를 바랐을 것이고, 어떤 이는 노벨이 노르웨이가 스웨덴보다 좀 더 자유롭고 평화적인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도 하네요. 어쨌든 지금도 노벨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선정하고 수여도 오슬로에서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수상자가 어디서 받았는지도 모르고... 부끄럽네요. 그나저나, 방금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한다고 했는데, 그럼 나머지 상들은 스웨덴 왕실에서 하는가요?"
"노벨은 각 분야의 수상자를 선정할 기관도 지정을 했는데, 물리학상과 화학은 종신 회원인 450명의 스웨덴인과 175명의 외국국적 학자들로 구성된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생리의학상은 스웨덴 최고의 명문 의대인 카롤린스카 의대(2025년 THE 세계 대학 의대 부문 13위, 참고로 서울대 의대는 44위)의 50명의 교수로 구성된 '노벨생리·의학상 선정위원회(Nobel Assembly at Karolinska Institutet)', 문학상은 18명의 종신회원으로 구성된 '스웨덴 한림원(The Swedish Academy)'에서 부분별 위원회를 구성하여 후보자 선정에서 수상자 선정까지 독립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9월부터 자체 기준에 따라 선정된 전 세계 수백 명의 추천권자들에게 극비리에 연락하여 다음 해 1월 말까지 추천을 받고, 수개월간의 검증과 자체 회의를 거쳐 10월 수상자를 발표한 뒤 노벨이 세상을 떠난 12.10 스톡홀름 시내 Hötorget의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 시상식 개최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야... 그럼 왕실에서는커녕 어떤 나라도 로비할 여지가 없겠는데..."
"있었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 수상자를 대상으로."
"뭣이?" "엥?"
"2000. 11월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한반도 국제 심포지엄에서 올라브 욜스타드 노벨연구소 연구실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로비를 통해서 노벨상을 받았다는 주장이 사실이냐?'라는 한 독일 학자의 질문에서 '로비가 있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지요. '로비가 있긴 했는데,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로부터 노벨평화상을 주면 안 된다는 '기이한' 로비가 있었다.'라고.
김 대통령은 1987년부터 14번 연속으로 후보에 올랐으며, 노벨상 수여 1백 주년이었던 2000년에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 등 역대 수상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135명의 개인과 15개 기관이 경합했는데..... 지금보다 세계적인 위상이 달랐던 우리나라가 매년 국가청렴도지수 10위권에 드는 스웨덴에 미국을 제치고 로비가 가능했을까요?"
"....."
"그 스웨덴 왕실도 못한다는데... 참.... 세상에 10억이 넘는 상금 준다는데 안 받는다는 사람이 어딨다고.."
"좀 맥락은 다른데, 안 받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엥?"
"노벨상은 2024년 기준 약 14억 원(1,100만 스웨덴 크로나)의 상금과 메달, 증서를 받게 되며, 이 상금은 세금 없이 전액 수령할 수 있습니다. 최대 수상배출 국가는 미국으로 900여 명 중 250명 이상이고, 최연소는 1915년 25세로 수상한 LAWRENCE BRAGG, 최고령은 2018년 94세로 수상한 ARTHUR ASHKIN인데 평균 연령은 55세라고 해요.
간혹 나치나 구 소련 등 독재정권이 자국민의 수상을 금지해서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번 발표한 수상 결정은 철회되지 않아 여전히 '수상자(Laureate)'로 기록되지요. 자의로 수상을 거부한 사람으로는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Jean Paul Sartre과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가수 Bob Dylan이 있어요."
"거 문학상 수상자들이 특이하구먼."
"아실는지 모르겠는데...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도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평화상이 아닌 '문학상'입니다."
"정말 문학상 수상자들은 특이하네... 아, 그러고 보니 지난해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수상자인 한강 작가도 노벨문학상이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한강 작가 모두 대단한 분들이지만, 어찌 보면 '과학자'였던 노벨이 만든 노벨상에서 과학 분야에서는 한국인 수상자가 아직 없다는 게 좀 아쉽긴 해. 일본도 가끔 보이던데..."
"우리가 종종 세계적인 경쟁을 이야기할 때 그 비교 상대로 일본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말하는 것일까요.
노벨상만 해도 그렇습니다. 일본은 노벨 물리, 화학, 생리의학상에서 20여 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그들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100년도 넘은 19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아인슈타인은 노벨상 수상 소식을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서 접했고 수상 직후 43일간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강연을 펼쳐 일본인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폭발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후 1932년 노벨상 수상자 30인 배출을 목표로 '일본학술진흥회(JSPS)'가 설립되었고, 77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핵심 사무소인 스톡홀름 지부를 비롯해 전 세계 11개 해외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JSPS의 연간 예산은 한화 2조 원이 넘는다고 하며, 과학기술 관련 정보 수집은 물론 전 세계 과학자 및 관계 기관과의 네트워크 구축, 일본 학자들의 학술 발표 지원, 노벨재단 학술 세미나 등에 일본 학자들의 참여 기회 확대 등을 담당하고 있죠.
박사 학위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다나카 코이치와 같은 사람이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할 만큼 과학자들에 대한 국내 지원은 물론 해외 진출 지원까지 완벽하게 갖춘 일본과 모든 인재들이 의과대학만 바라보고 이공계를 기피하는 한국이 어떻게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까요?
또한, 지구 온난화 예측으로 20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나베 슈쿠로' 교수는 1931년생으로 만 90세의 나이였습니다. 스웨덴의 대학에서는 석사생부터 학교의 직원으로 대우하며 월급과 주택을 지원해 주는 경우도 있고, 연구성과가 높은 교수에게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캠퍼스 내 주택을 지원하여 계속해서 연구를 할 수 있게도 해줍니다.
우리는 과학자들에게 이런 지원을 해주고 있는지, 그리고 젊은 학자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학계의 풍토가 되어있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박 사장이 말했다.
"참 부끄러운 일이야.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8~90년대 대입학력고사 이공계 수석은 의대보다 물리학과나 컴퓨터공학과에서 더 많이 나왔어. 중학교 때도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과학고등학교에 몰렸고, 그들이 꿈꿨던 KAIST는 드라마 소재로 될만큼 인기였지. 2천 년대 이후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는 반도체나 배터리 등의 첨단산업이 있었고, 그 바탕에는 과학자를 꿈꾸었던 우수한 인력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야.
그보다 훨씬 이전인 과학 불모지인 한국에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재 KIST의 전신)의 설립이 추진되면서 가장 현안이 해외 과학자 유치였는데, 당시 그들의 고액 월급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대. 국내 국립대 교수 월급의 3배에 대통령보다 많았다는 거야. 교수들은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반발했고, 나중에는 청와대로 진정서까지 들어갔다는군. 보고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연구소 연구원의 봉급표를 보고 “과연 나보다 월급이 많은 사람이 수두룩하군. 이 봉급 그대로 집행하시오.”라고 했다지. 60년이 지난 지금 되새겨볼 일이야.
이야기가 과학 쪽으로 갑자기 치우쳤는데, 하여간 노벨상을 '그렇게' 바라면서 노벨상을 '그렇게도' 모르는 우리가 참 부끄러워지는 발표였네. 스웨덴 사람과 대화하면서 노벨상 이야기가 나오면 어쩔뻔했어? 그나저나 당신들은 노벨상 수상자들 수상 소감은 읽어보기나 했나? 최소한 우리나라 수상자는...."
"(그럴 줄 알고...)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25분 분량의 연설문을 읽었습니다. 세 가지가 여운이 남는데, 하나는 주한미군 철수같은 민감한 주제에도 밀리지 않았던 그의 논리, 둘째는 민주주의에 있어 아시아가 서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역설한 자신감, 마지막으로 25년 전 이미 정보화시대를 예견하면서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닌 인권과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연설문 주요 내용을 읽어보겠습니다."
(중략)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철수를 최대 쟁점으로 주장했습니다. 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조했습니다. “미․일․중․러의 4강에 둘러싸여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필수 불가결하다. 미군은 현재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 유럽을 보라. 당초 「나토」의 창설과 미군의 주둔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공산권이 멸망한 지금도 「나토」와 미군이 있지 않느냐.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존재가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시아에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 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 ‘사람이 즉 하늘이다’ ‘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 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천 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 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천5백 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 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 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천 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21세기는 지식 정보화시대로서 부가 급속히 성장하는 시대입니다. 동시에 정보화시대는 부의 편차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커져 갑니다. 이것은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인권의 탄압과 무력의 사용을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 아울러 정보화에서 오는 새로운 현상인 소외계층과 개발도상국의 정보화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