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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Dec 22. 2020

마누라 속이기 season 1-1

40대 남자, 퇴출 위기의 Inlandsbanan에 투영된 자신을 보다

스웨덴은 물가가 비싸기도 하고 코로나의 창궐로 미용실에 가기 뭐해 아내가 아들을 집에서 직접 이발을 시켜주곤 한다. 이제는 나까지 해주는데, 1번 타자로 들어선 아들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은 마치 도살장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느낌이다. 처음엔 난리 치던 아들도 좀 지나면 맘에 들었는지 종종 엄마와 대화를 한다.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

참 많이 듣는 얘기지. 결혼 15년 차인 아내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거라곤 기대 않는다.


"그야... 못생기긴 했지만, 착하잖아. 어렸을 때 할머니 말도 참 잘 들었대. 읽으라는 책도 많이 읽고."

"그래~ 00(같은 반 친구 놈)이 엄마도 학교에서 아빠 보고 착하게 생겼다고 했대. 엄마 말도 잘 들어?"


저게... 욱하려고 할 찰나에,


"그럼~ 아빠가 어른이니까 말 잘 듣는다고 말하긴 좀 그렇고, 엄마한테 거짓말한 적은 없지."

"그래? 그걸 어떻게 알아?"

"니 아빠는 거짓말하려고 하면 딱 표시가 나. 너 같이 눈 하나 깜짝 않는 놈하고는 다르지."

성질대로 욱해야 할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지 고민되는 순간이다.  




그래....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말씀은 잘 들었다.


국민학교 시절,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 명에 따라 주말 불교학교도 가기 싫어 투덜투덜하면서도 꼭 가서 앉아있다 오곤 했다. 형은 "멍청하게 뭐하러 그렇게 다니냐~ 나 같이 오락실에서 보글보글(당시 최고의 인기 게임)이나 몇 판 하고 집에 가면 되지... 엄마가 쫓아와서 체크하는 것도 아닌데~ 맹추 같은 놈~"라고 샛길로 빠져 시간 때우고 들어올 때도, 나는 꾸역꾸역 정말 다니기 싫은데도 다녔다. 심지어는 그 와중에 '반야심경'도 외웠고, 지금도 '내가 생각해도 멍청했어'라며 회상한다.


심지어 역사에 관심이 많고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대학도 집안 형편에 맞춰 진학했다. 그렇게 진학한 대학을 졸업하고 정해진 길에 따라 직장을 다녔는데, 어느 직장이 100% 만족스럽겠느냐만 적성에 맞는 삶인지 계속 자문하면서, 그 현실을 깨지 못한 채 살아왔다. 



97년 3월 쌀 사역을 나갔다가 말년 고참 대원들과 도로변 유채꽃밭에서. 지나고 보니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그나마 내 맘대로 결정하고 행동한 최초의 일은, 대학 졸업 직후 제주도에서 군 생활을 한 것이었다. 내가 졸업한 경찰대학은 졸업과 동시에 전경대에서 군 복무를 하는데, 나는 어찌 보면 첫 사회생활을 제주도라는 낯선 환경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미친 척하고 지원했던, 23년간 순종했던 양 한 마리가 울타리를 뛰어넘은 파격적인 결정이었지만, 제주도에서의 생활은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주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봤더니 정말 좋더라"라는 깨달음을 나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허나, 사회생활에서 뜻대로 되는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지금과 달리 내가 군 복무를 할 당시 제주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조금만 시내를 벗어나도 황량함 그 자체였기에(내가 떠날 때인 97년 5월 이마트가 제주에 처음 들어서자 동네 슈퍼들 다 망한다고 난리가 날 정도), 지원자도 별로 없었고 동기들끼리 발령지를 조율할 수 있었기에 갈 수 있었지 이후로는 내 뜻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는 조선의 여인네처럼, 부모의 말을 잘 듣던 어린애는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든 맞춰가는 어른이 되어갔고, 누군가를 속이지 않는다는 덕목은 그냥 관성에 따라 사는 평범한 직장인의 속성이 되었을 뿐이었다. 부침이 없는 인생이나, 재미없고 짜릿함 없는 일상이었다.



  

2020년 6월. 맹위를 떨치던 코로나도 한 풀 꺾이고, 스웨덴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준비할 때였다.


어느 날 아내가 아이와 7월 초 1주일간 친구 엄마들과 여행을 간다고 했다. 요즘은 아빠들은 회사 사정으로 휴가가 유동적이다 보니 이런 케이스들이 많다. 남편들은 그들이 여행하는 동안 저녁에 술자리에 모이거나 주말에 골프나 친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나도 그렇게 된 것이다. 엄마들이 애들하고 가는데 뻘쭘하게 40대 후반 아빠가 따라가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아내는 1주일간 심심하겠지만 반찬은 푸짐하게 냉장고에 쌓아두겠다고 하면서, 혼자서는 위험하니 돌아다니지는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자기도 좋아서 애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면서. 쳇.


이런, 무슨 집 지키는 뭐도 아니고, 돈 벌어오는 기계도 아니고. 하지만 별 수 있나. 사실 아내도 같이 가는 아줌마들끼리 섞여 떠들다 보면 재밌겠지만, 내내 아이를 따라다니는 것도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괜찮겠군... 하면서.




그날 밤, 나는 혼자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한국에서 사 왔던 북유럽 여행 책자를 보았다. 요즘 북유럽 소개하는 책자가 많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북유럽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노르웨이다. 거기에 덴마크, 핀란드 조금 더 나아가면 아이슬란드? 


스웨덴은 사실 복지국가로 명성이 있을 뿐이지, 관광으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다. 그래서 여행 책자도 스웨덴은 스톡홀름, 예테보리, 말뫼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나와있고 다른 나라처럼 자세한 소개가 없다. 그냥 북유럽 왔는데 제일 면적은 크니 훑고 지나가야 하지는 않겠냐는 식? 


그나마 내가 사 온 책은 최신판이라 대도시 말고 총 1,289km의 스웨덴 내륙 종단 철도인 '인란드바난(Inlandsbanan)' 도 있었다. 예전에 내륙지방 발전과 수송을 위해 개통되었으나 자동차 발달로 존폐 위기에 몰렸다가, 다시 주민들의 뜻을 모아 관광열차로 개발해 6~8월에 운영하고 있으며 내륙의 자연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노선'이라는, 사진도 없는 3장 정도의 간략한 내용이었다.

시골 역에 낡은 열차로 상징되는 인란드바난 소개 사진(출처: 셀프트래블 북유럽여행-상상출판)



존폐 위기에 몰렸다 겨우 생명줄을 이어가는 이 열차.

이게 왜 내 시선을 끄는 걸까?

     

'예전에 아내와 아기인 아들을 차 뒷 좌석에 태우고 교대 운전도 없이 몇 시간이나 운전하며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같이 사진 찍으며 웃고 기뻐했었는데, 연식이 되니까 아내와 아들의 발달로 가족 여행에서 퇴출 위기에 몰린', 바로 지금 아내와 아들이 잠든 밤 거실에서 맥주 한 잔 놓고 뭔가 나올지 모르겠다고 여행책자나 뒤적이는 내 모습이 인란드 바난의 모습 아닌가? 허허... 근데 나는 누가 뜻을 모아 일으켜 세워주지? 여기 스웨덴에는 한국처럼 내 부모 형제, 가까운 친구 다 없는데?     


아무리 코로나가 잦아들었다 해도 열차를 타는 것은 찝찝하고, 그렇다고 혼자서 천 km를 넘게 운전한다는 것도 그렇잖은가? 뭔가 연결점을 찾으려고 해도 연결되지 않는 숙제를 남겨두고 그냥 잠이 들었다. 이런 고민하면서도 예전에 20~30대 시절처럼 "야! 가자"하고 호기롭게 얘기 수 없는, 나는 여전히 말 잘 듣는 어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아. 답답해. 그렇게 6월의 밤은 두시를 넘기고 있었다.


인란드바난 노선(출처: 셀프트래블 북유럽여행-상상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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