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진화 01-나의 책 이야기

10년 전부터 운영한 청소년 책 쓰기 동아리, '나는 작가다'

by 구자

나에게 책이란

한참 꿈을 찾던 학창 시절, 나에게 ‘책’이란 ‘깊은 밤 잠 못 들게 하는 라디오’였다. 문학작품의 한 구절에 가슴이 먹먹해져 밤새 빈 하늘을 보며, 감수성을 불태우느라 밤을 지새우게 하는 라디오보다 더 아련한 감동을 주던 녀석. 그 시절에는 책으로서 세상을 읽어주시는 국어 선생님을 존경했고, 국어 선생님을 꿈꾸기도 했다.


대학에 진학하여 세상을 좀 더 넓게 알아갈 즈음, 나에게 ‘책’이란 ‘세상을 보다 깊게 여행할 수 있도록 동행해주는 인생 가이드’였다. 나만의 가이드를 동행하여 세상 곳곳을 누비며, 알아가고 배우며 느끼는 모든 과정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세상이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곳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아가며, 책이라는 녀석이 지닌 매력에 점점 더 매료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서점에서 은사님께서 쓰신 한 권의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된 순간. 그래 이거다!!! 이렇게 책으로 세상을 읽어주는, 세상을 보여주는, 사회를 글로, 가슴으로, 전해주는 선생님이 되자!!!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 순간 나에게 책이란 ‘꿈’이었다. 나에게 꿈을 쥐어준 ‘책’은 더 이상 ‘단순히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만이 아닌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세상을 조금 더 맛깔나게 보여줄 수 있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해야겠다.’라는 맹랑한 꿈을 품었다. ‘책’은 내 인생의 꿈을 또 한 번 진화시켰다.


그 후로 교직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생들이 ‘세상을 보다 깊고 넓게 맛깔나게 보여주는 통로’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알려줄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숱한 고민 끝에 더 이상 ‘세상을 보여주는 글을 읽. 게. 만. 해주는 선생님’이 아닌, ‘학생들로 하여금 세상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작가가 되어 각자가 경험한 세상을 책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기회를 주는 선생님이 되자!’라는, 역시나. 맹랑한 꿈을 꾸었다.


최근에는 ‘자비출판, 전자출판’ 등의 단어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개인이 출판을 하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 모르나, 12~13년 전만 하더라도, 중학교 학생들에게 ‘너도 작가 해볼래?’라는 제안을 했을 때 아이들은 ‘저는 글을 잘 못써요. 에이. 제가 무슨 작가를 해요.’라며 불가능을 먼저 단정 지었다. 그때는 나에게 ‘책’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이야기’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책을 쓴다는 것은 어렵지 않아. 너희들의 관심사, 즐거운 일상들, 고민거리들,
너희 가슴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내면 그것이 책이 되는 거야.
바로 너희가 작가가 되는 것이고,
너희의 이야기 자체가 세상을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란다.

라며 설득했다. 그때가 2012년이었으니 벌써 10년 전이다. 당시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나도 작가다-중학생 작가 되기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후로도 책 쓰기 동아리를 운영해 왔다. 아이들은 그 해를 어떻게 기억할까.


나에게 ‘책’이란 ‘아이들의 반짝이는 꿈을 가장 가까이서 엿볼 수 있게 하는 통로’였다. 갓 중학교에 입학한 영어를 잘하는 1학년 학생들은 자신의 특기를 활용하여 ‘영어로 동화 다시 읽기 책’을 기획했고, 단짝 친구였던 2명의 학생은 ‘우리 동네 맛집 탐방기’를 쓰겠다며, 틈이 날 때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지역 곳곳의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러 다니며 취재를 했다. ‘사육사’를 꿈꾸던 학생은 ‘사육사가 되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사육사의 자질에 대해 인터넷으로 조사하며, 이를 정리하는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성적 향상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인생의 꿈을 찾지 못하여 고민하던 한 학생은 CEO, 사회복지사, 창업가 등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며, 본인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글을 쓰기도 했다. 10여 명의 학생들과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진로, 입시, 교우 관계 등에 관한 상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해서 교육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10여 명의 학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을 꼽자면 중학교 입학 성적이 하위권이었던 한 학생이었다. 성적으로는 큰 두각을 보이지 못하는 학생이었는데, 놀랍게도 집필 시작 3개월 만에 100여 장에 이르는 원고를 작성해 왔다. 제목은 ‘꿈’이었다. 여러 밤을 지새우며 빌 게이츠, 반기문 UN 사무총장 등 꿈을 이룬 저명인사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조사하고, 꿈에 관한 명언들을 정리하며, 본인처럼 성적이 낮아서 방황하는 청소년 친구들에게 ‘꿈’을 지닐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수 있는 책을 써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 속에서 꿈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고,
꿈에 관한 생각도 많이 했어요.
누군가에게 제가 또 다른 꿈이 되어주고 싶어 졌어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꿈 컨설턴트’가 될래요.

라고 말하며 책을 쓰는 과정에서 꿈을 지니게 되었다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책’이 지닌 마력에 가슴 한켠이 뭉클 해졌다. 학창 시절 우연히 시작된 나와 책의 인연 속에서 시작된 ‘작은 꿈’이 진화하고 진화하여 또 다른 누군가의,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더 큰 꿈을 심어줄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나의 종이 묶음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책’ 속에서 사람들은 꿈을 꾸고, 꿈을 찾으며, 꿈을 이루기도 하고, 더 큰 열정을 가슴에 담기도 한다. 나에게 ‘책’이란 ‘꿈을 진화시키는 마법의 약’이다. 단순하게 읽히고만 마는 것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독자 입장에서 글로 읽어내고, 작가 입장에서 글로 담아내기도 한다.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독자와 작가가 하나 되어 가슴으로 함께 세상을 느끼고 함께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각자의 꿈도 더욱 아름답고 크게 반짝- 빛나게 하는, 꿈을 진화 시키는 마법의 약.


마법의 약의 마력에 매료되어 오늘도 여전히 꿈을 꾸는, 한 명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글을 끄적인다.


책이라는 마법의 약이 지닌 약효가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양각색의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열정을 불어넣을 수 있게 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작용하기를 꿈꾸며,

그렇게 책을 통해
나의 꿈도 한 번 더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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