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를 읽고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를 읽었다. 작가는 벌써 수 년 전 AI로 장악당한 프로 바둑 세계를 취재하며, AI 소설이 나온다면 과연 예술이라 할 수 있을지, 소설가라는 직업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연결하며 진지하게 탐구했다.
바둑에 '먼저 온 미래'를 보면서, 생각보다 변화는 크고 사나울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내가 몸담은 직역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에 몇 번이나 읽기를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프로 바둑 시장은 알파고 이후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실력으로 최고가 되기에는 AI에게 이미 뒤쳐진다. 그리고 AI가 제시한 '정답'을 따르지 않으면 이길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바둑을 보며 '인생의 서사' 혹은 바둑을 두는 사람의 '태도'에 감동을 느끼며 예술이라 생각했지만, 더이상 그렇지 않다. "누가 더 맞는 수를 두느냐"의 게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오히려 <골때리는 그녀들>처럼 아마추어들의 경기가 더욱 인기있을 수 있다.
법조계는 원래 그런 정답의 게임판이다. '내가 이 답을 내려고 이런 리서치를 하고 판례를 분석해서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정말 드라마틱하죠?'와 같은 아마추어 서사는 의미가 없다. 누가 적확한 솔루션을 내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지가 실력의 기준이었다. 문제는 그 '실력있는 변호사'의 자리에 AI가 올라서고 있다는 점이다.
법률 AI 서비스를 몇번 써보았다. 리서치는 이미 꽤 훌륭하다. 특정 쟁점에 대한 답을 찾아달라고 프롬프트를 넣으면, 꽤 명확한 결론을 내놓는다.
판례 검색이란 것이 없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엔 법조문과 판례를 머릿속에 넣고 다니던 사람이 실력있다고 인정받았다. 하지만 인터넷만 찾으면 관련 판례를 찾을 수 있는 시대가 오고서는 '이슈파인딩'을 잘 하는 변호사가 실력있다고 했다.
이제 그 이슈파인딩조차 AI의 영역이다. 브로드한 사실관계를 늘어놓고, '이 사안에서 문제될 수 있는 법적 리스크를 모두 알려줘'라는 프롬프트 하나면, 대략적인 법적 리스크를 어느 정도 망라해서 알려준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지"
내가 10년 전 변호사가 되었을 때도, 이미 법조인이 초특급 대우를 받는 시절은 아니었다. 수 년의 고시생 시절을 버틴다 해서 평생을 보장받는 호시절은 지난 것 같다고 하자 주변 어른들은 '썩어도 준치'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 어른들이 어른이 되던 30년 전, 법조인이라는 자리가 너무나 희소했을 때는 판검사나 로펌 변호사는 일종의 신분이었다. 그들이 30년 후 시니어 법조인이 되어서는 일을 적게 하면서도 엄청난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 법조인이 되는 사람들은감히 상상도 못하는 시나리오다.
그나마 법정은 아직 AI로 대체되긴 힘들어 보인다. 형사소송은 이제서야 전자소송이 도입된다니, 비로소 종이 기록을 보따리로 들고 다니던 시절이 끝났다. 무엇보다 작금의 줌미팅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절차법상으로는 법정에 당사자나 대리인이 출정하지 않으면 재판이 진행될 수 없다.
이처럼 공공기관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아무리 시대가 빠르게 흘러간다 해도 십 년 내 사법시스템에 AI가 도입된다는 건 상상이 잘 안 간다. 다만 양형 기준이라든가, 일부 판단에 지원을 할 수 있는 형태로 '선진 사법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조금씩은 개발을 할 것 같다.
그런 반면 자본 시장은 더더욱 빨라진다.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변호사 업계에선 '시스템화', '자동화' 할 수 있는 영역, 즉 음주운전, 성폭력범죄 등의 파이를 대형 네트워크로펌이 가져갔다. 이들은 AI를 통하여 더 빠르고 확률 높은 전략으로 비슷한 사건에 기계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것이 돈을 많이 버는 길이기 때문이다.
기술과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내가 손을 최대한 덜 대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성공의 기준이 되고 롤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AI의 등장은 이러한 현실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아날로그 시절의 암기력이 좋은 변호사, 인터넷 시절의 이슈파인딩 실력이 좋은 변호사, 그 다음 AI 시대의 변호사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 걸까? 심지어 글을 잘 쓰는 변호사는 언제나 유리했지만, 이제는 AI가 글을 더 잘 쓴다.
혼란스럽다. 막 시작된 2026년 한 해 동안, 내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것보다, 법률 AI는 셀 수 없는 문서와 케이스의 학습을 거듭하며 더 빠르게 더 적은 비용으로 성장할 것이다.
사내변호사라는 직장인으로서의 자리는 더욱 위협받는 것 같다. 변호사 업무의 본질이 AI로 결국 대체될 수 있다면 여전히 변호사가 회사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나마 AI는 아직 책임은 지지 않는다. AI가 최종 법률 판단을 내리고 사업부가 그것을 그대로 취했으나 잘못된 내용이었다면, 그 때는 블레임할 사람이 없다. 조직은 결국 책임을 지는 담당자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AI가 틀릴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면 그 책임자의 자리마저 희미해지는 것 아닐지 모르겠다. 마치 우리가 '저게 맞지'라고 판단하던 이세돌의 수가 알파고에 의해 모두 부정된 것처럼 말이다.
SNS와 플랫폼이 우리 삶을 시나브로 조정해가는 것처럼, AI 역시 그런 기술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리는 이미 많은 부분 AI에 종속되어 있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것들을 AI한테 물어본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이 거대한 흐름을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만 같다. 언제나 흐름에 올라타는 게 일종의 삶의 방식이었기에, 올해는 어떻게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계속 써 볼 것이다.
그리고 AI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쪼고 또 쪼아서, 원하는 답이 나오도록 만들고 훈련시킬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스스로 "원하는 답"에 대한 레벨을 설정해두어야 한다. 복잡하고 답이 없는 문제일수록, AI가 얼마나 정교하고, 얼마나 합리적이며, 얼마나 실질적인 솔루션을 작성하게 할 수 있는지는 분명 프롬프트를 넣는 나의 몫인 것이다.
단순히 AI가 잘 정리해준 내용을 복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떤 답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능력이 AI시대에 살아남는 변호사의 자질이 될 수 있겠다. 적어도 AI때문에 일자리를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AI 시대에서 살아남을 내 자리가 무엇인지, 올해는 이 질문을 붙들고 시작해본다.
*브런치 연재글도 AI 선생님의 글쓰기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