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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스몰토크 지옥에서 살아남기

빡침 나눔회가 주는 희한한 위로

by 원테이크


아직도 점심 시간만 되면 긴장한다. 스몰토크 때문이다.


사회생활 십 년 차가 다 되어가도 잡담이 여전히 어렵다. 점심 메뉴를 뭘로 할까요, 만큼이나 영원히 풀리지 않는 직장인의 숙제. 무슨 이야기를 해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을 그나마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월요일에는 "주말은 어떻게 보내셨어요?"라는 단골 질문도 있지만, 과연 괜찮은 주제인지 잘 모르겠어서 가끔 말을 삼킨다. 별 일 없이 집에서 쉬고만 온 사람에게도, 사적인 일을 처리하러 다닌 사람에게도 그닥 반가운 질문이 아닌 것 같다. 회사 사람들과의 대화에는 금기사항이 너무 많아 그렇다.


'정치나 종교, 연봉이나 자산을 포함하여, 개인 신상을 자세히 알고 싶어 하지 마라.'




어느 인플루언서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보라고도 한다. 차라리 내 얘기를 하면 편하긴 한데, 상대방이 관심도 없는 얘기를 주절대는 것도 민망하다. 너무 스스럼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떠벌려 놓고는 몇 번이나 이불킥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처세술 베스트셀러는 회사에서 살아남는 철칙이 본인 사생활에 관한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종종 일 외적인 단서로 누군가를 쉽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 회사 스몰토크 주제를 모아놓은 글을 보면 눈이 번쩍해서, 신박한 게 있나 들여다본다. 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소지품 언급, 운동 뭐하는지, 회사 주변에 생긴 가게들 등등에 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는군?


그러나 문제는 이런 주제로는 정말 '스몰' 토크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볍게 꺼낸 이야기는 5분도 못가 바닥난다. 함께 밥을 먹는 한 시간 동안 열 개 넘는 주제를 쇼츠처럼 전환시킨다.


"오, 이번에 나온 아이폰으로 바꾸셨어요?" "좀 못생겼는데, 사진은 예쁘게 나오더라구요."

"아, 독감 예방접종은 하셨어요?" "..."


질문과 답변이 몇번 오가면 끝. 주변이 시끄럽기라도 하면 목소리까지 키워야해서 에너지가 더 들어간다. 실은 모두 그 주제 큰 관심도 진심도 없다. 이쯤되면 침묵에 익숙해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마법의 주제가 있다. 물꼬를 잘만 틀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면서 본인의 경험을 술술 풀어놓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바로 일 얘기다.


밥먹을 때 들으면 체할 것 같은 그런 일 얘기는 아니다. 지금 그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냐, 등등 현안을 궁금해하거나 세미 보고를 원하는 상사의 질문은 절대 사양이다.


마가 뜨는 걸 구원해주는 일 이야기는 바로 이런 것이다.


외부 기관이나 거래처 대응을 하며 생긴 공공의 적에 관한 불만에 대해서 얘기해본다. 혹은 최근 화가 많아진 케이스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한풀이를 해본다. 아니면 다른 사업부와 일할 때의 불편이나 애로사항들을 나누어본다.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이야기를 꺼내며 즉석에서 '빡침' 나눔회가 열린다. 불만과 불만을 서로 공유하면서 묘한 연대감이 생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군" 하는 위안은 덤이다. 다들 화나는 순간을 꾹꾹 참고 있다가, 자리에서 조용한 한숨을 내쉬고 있던 걸 알게 되는 덕이다.





여전히 어색하고 재미없는 스몰토크의 자리를 피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어느새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회사에서 분투하고 있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모두가 휴대폰에 고개를 쳐박고 밥을 먹으며 침묵하기보다는, 스몰토크를 하려고 서로 애쓰고 있는 우리가 좋다. 매일 보는 사람들과 익숙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 단조로운 일상같아 보여도, 실은 매번 다르게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트위터에서 본 끝장토론 주제를 던지며 마무리해 본다. 두 시간은 그냥 흘러갈 수 있는 주제라던데.


"얼마 있으면 퇴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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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