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일하기 싫어병 증세인데요

퇴사해버릴까병으로 전이되면 위험합니다

by 원테이크


아주 간만이다. 일하기 싫어병 증상이 도진 것은.

일하기 싫어병에 걸리면 일요일부터 증상이 발현된다. '내일이 월요일이네...'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면 두더지 게임을 하듯 망치질을 해서 없애야 한다. 월요일 아침, 꾸역꾸역 씻고 나가 회사 가는 버스를 타지만 기대되는 일이 없다. 자기 위로차 사먹는 두유라떼도 이젠 너무 자주 마셔서 물렸다. 그나마 매일 달라지는 구내식당 메뉴를 훑어보면서 뭘 먹을까 고민하는 잠깐은 조금 즐겁다.

감기처럼 찾아오는 이 질병의 원인은 꽤나 복잡하다. 최근 몇 달을 돌아보니 한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일의 절대량이 많아진 것. 둘째, 상사와의 소통 문제. 마지막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난감한 일들이 많이 생긴 것.

헤드와 직접 소통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업무를 제대로 진척시키고 보고하는 자체가 꽤나 신경쓰이고 소모적이란 걸 알게 되었다. 상사가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지시는 짧아질 때가 많다. 그러나 엄청 뛰어난 센스를 장착하진 못한 터라, 그 맥락을 파악하느라 삐걱댄다. 꽤 오래 함께 일한 상사지만 직접 손발을 맞추는 일은 또 달랐다. 결국 '얼라인'의 문제다.

최근에는 일 하나 하나가 주옥같다. 루틴한 일은 척 보면 결론이 나는 연차가 되었지만 요즘은 도통 답 없는 문제가 쌓여만 간다. 비전형적인 사업안과 거래는 왜 이렇게 많은지. 거래처에서 희한하게 길고 뚱뚱한 계약서 초안을 가져오면 읽기도 전에 지친다. '또 AI가 만든 무익적 조항이 가득한 초안이랑 싸워야 하는군, 휴~'


꽃구경은 하고 가자며



자기결정성 이론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직장 혹은 일에 동기부여되는 3가지 요소로, 자율성, 관계성, 그리고 유능감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한다.

한동안은 그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오래 다니면서 편해진 사람들과 익숙한 일을 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회사는 나를 믿고 일을 맡겨주었고, 건별로 어느 정도 리소스를 투입하면 되겠다 하는 판단이 설 정도로 경력이 쌓이니, 그 통제감에서 오는 안정감이 좋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즘엔 '유능감'이 달리나보다. 일반적인 자문 업무는 착착 해결해 없애나가면서도 상사의 지시에 빠릿빠릿하게 대응하고, 원하시는 답을 척척 적시에 드리고 싶은데 생각처럼 안 되어 답답하다. 일을 도리어 불리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질 때면 약간의 좌절감도 든다.

들여다볼수록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일들에 파묻혀있다보면 어느새 밖이 어두워져있다. 늦은 시간 퇴근하고 돌아와, 같이 사는 사람에게 투정을 부린다. "딱 5년 후에 퇴사할테니 내 퇴사 로드맵 좀 대신 짜줄래?"




주말에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서 매일 쓴 일기를 읽어보았다. 바쁘다, 뭐가 힘들었다, 반복되는 말들을 차근차근 훑어보니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그제서야 파악이 되었다. 소용돌이 속에 있으면 어떤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잠깐이라도 멈춰서 내 상태를 가만히 들여다볼 때 그나마 회사에서 찾지 못한 통제감을 되찾으면서 혼란스러움이 가라앉는다.

사실은 언제나 반복이었다. 회사는 직원이 익숙함에 가라앉아있도록 두는 곳은 아니다. 전년도보다 더 나아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모두의 과제다. 수많은 사업부는 각자 다른 KPI를 가지고 있겠지만 복리로 성장해야 한다는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입처럼 허둥지둥대는 나의 모습이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복리로 성장해야하는 것은 비단 회사 매출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환경에 놓이고, 회사는 적응하고 살아남기를 바란다. 컴포트존 같은 것은 원래 없는 것이다. 하던 대로만 한다면 레드퀸의 법칙 아래 도태되고 만다.


이쯤되면 '일하기 싫어'가 아니라 싹 다 때려치워버릴까 하는 충동적인 생각에 이르게 되지만, 그 사고의 종착점에서 뇌에 힘을 딱 줘본다.


지금 힘든 건 유능감 그 한 가지가 좀 모자라서이지, 회사에서의 자율성과 관계성은 달라진 게 없다. 업무 환경은 부족한 것이 없고, 나를 믿어주는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


일이 많지만 업무시간에 좀더 몰입하고 약간의 야근을 곁들이면, 금요일쯤에는 조금 숨이 트일 것이다. 상사의 피드백은 2주째 진지하게 고민하며 개선책을 드려놓았으니 더 잘 맞춰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문제들은 그만 혼자 고민하고 물어보고 방향을 잡아나가면 된다. 그렇게 나는 이미, 아주 작은 실천과 아주 작은 해결을 반복하고 있었다.


유능감만큼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간 유능감을 느끼는 때가 있었다면 아마 그 전에 몇 달 몇 년을 애썼던 어떤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나 조직의 변화가 특히 몸으로 느껴지는 때는 잘 하고 있다는 기준 역시 조금 바꿔보아도 좋겠다. 모든 일에 빠른 결론이 날 순 없음을 인정해 보는 거다.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다. 저녁 먹고 남아있는 동료들이 다들 집에 갈 생각을 안 하고 일을 하고 있다. 요즘 회사가 난리는 난리네, 한 마디씩 하고 다시 모니터에 빨려들어가는 상황. 다들 일하기 싫어병 증세는 없는지, 괜찮은지 모르겠다.


이번 주가 끝나갈 즈음에는 모두 후련한 마음이기를,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따뜻한 주말을 맞이하기를 바라본다. 바야흐로 봄, 잠시쯤은 일 생각 없이 봄날을 누려야하지 않을까.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