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실패, 나의 자리
살다 보면 생각과 현실 사이의 어긋남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다. 머릿속에서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던 생각이 말이나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일같은 건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당혹감과 불편함을 느낀다.
이 글은 그런 어긋남과 궤를 같이 하는 언어의 뒤틀림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내가 미국에서 살아가며 자주 마주하는 기괴한 불일치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옮겨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깊은 어색함, 또 언어라는 통로 안에서 길을 잃는 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내 사고의 많은 부분은 한국어로 이루어진다. 나의 한국어 생각은 매끄럽고 감정은 내 안에 잘 정돈되어 있다. 하지만 생각과 감정이 영어로 발화될 때 단어들이 입에서 흩어지고 문장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험을 한다. 특히 처음 다루는 주제이거나 섬세한 감정이 얽힌 이야기일수록 그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말을 시작한 내가 그 말에서 멀어지는 경험, 내가 한 말이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이 아니라는 이질감은 내가 나 자신을 배신하는 것같은 기분을 남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이런 혼란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생계를 유지하고 사람들과 기본적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말들은 정해져 있고 그것들은 마치 미리 연습해 둔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발화되기 때문이다. 역시 정말 말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 - 내 생각을 정확히 전하고 싶을 때, 누군가의 오해를 풀어야 할 때, 소중한 사람을 말로 지켜내야 할 때 -나는 말을 잃는 것이다.
이 때 느끼는 실망감은 꽤 오래 남는다. 왜 그때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을까, 아니, 왜 침묵했을까,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끝까지 밀어붙였어야 할 말을 왜 꺼내지 못했을까. 깨어진 말이라도 내뱉었어야 하는데 어느 샌가 침묵을 선택하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다.
침묵이 나를 보호해 준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설명하지 못한 경험은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패배감처럼 남아 이후의 말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동안 말하지 못한 말들이 먼지처럼 내 안에 무질서하게 쌓여갔다.
생각해보면 말이란 애초부터 완전한 전달이 보장되지 않은 불완전한 시도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오해는 비일비재하고 같은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기도 한다. 그러니 다른 언어를 빌려 나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자꾸 실패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말은 언제고 미끄러지고 어긋나겠지만 침묵보다는 발화를 택하기로 한다. 비록 완전하게 전달하는 일에는 계속해서 실패하겠지만 그럼에도 말의 시도 속에 머무르며 나와 너를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기로 한다. 말로 환원되지 않는 감정, 번역되지 않는 기억, 침묵 속에 눌린 말들을 다 챙겨들고 다시 말의 자리로 돌아오기로 한다. 불완전함 속에서 나 자신과 세계를 이어보려는 조용하고도 절실한 방식으로 노력하기로 한다. 언젠가는 잃어버린 통로의 끝을 찾아 걷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지금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