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의 치즈버거
인생 처음으로 치즈버거를 먹었다.
놀랍게도 맛있었다. 아니, 솔직히 치즈버거도 치즈버거지만, 마흔아홉 해를 살았는데 아직도 처음 맛보는 게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뭐야, 치즈버거!
생각해 보면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어릴 때 음식 알러지가 있었던 것 같다. 등 푸른 생선이랑 새우 같은 걸 먹으면 속이 울렁거렸다. 그땐 그냥 '이거 차 탈 때 나는 느낌인데!' 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게 알러지다. 치즈도 그랬다. 피자에 올라간 모짜렐라 정도는 먹었지만, 손으로 집어먹는 노란 치즈? 그런 건 내 인생에 없었다.
근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몸이 튼튼해졌는지 고등어는 없어서 못 먹는 정도가 되었고, 새우는 먹어도 두드러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다만, 치즈는 여전히 거리감을 두고 지냈다. 딱히 고급 치즈도 아닌, 그냥 평범한 미국의 체더치즈 말이다. 다 커서도 치즈는 생각만 해도 울렁거렸다.
치즈는 다 싫어해서 치즈 들어간 빵, 치즈 냄새나는 과자도 안 먹었다. 딴 얘기지만, 빵 얘기하니까 문득 어릴 때 건포도 싫다고 빵에서 손가락으로 건포도 파내다가 엄마한테 "그럴 거면 빵을 먹지 마!" 소리 듣고, 몰래 휴지에 싸서 집 밖에 버리던 기억이 난다. 나름 아주 계획적인 음식 투정쟁이였다.
그런 내가 사촌 집에 가서 버거를 먹게 됐다. 사촌이 물었다.
"더블 먹을래?"
소고기 패티 두 장에 치즈 두 장 올리는 그거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그냥 싱글로. 패티만. 치즈 빼줘."
그런데 사촌이 그릴 뚜껑을 열고 치즈를 패티 위에 착- (그것도 더블로!) 얹는 걸 보는데, 괜히 눈길이 간다. 취 - 소리를 내며 그릴 위에 앉은 패티 위에서 치즈가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지금 안 먹으면, 앞으로도 계속 치즈 안 넣고 먹겠지...'
갑자기 내 인생이 갈색 패티 한 장처럼 단조로워 보인다.
그래서 용기 내서 한마디 했다. 그렇다. 심지어 '용기'를 냈다.
"... 치즈 한 장 올려줘."
그릴 뚜껑을 열고 보니 노란 치즈가 패티에 스며들어 있다. 치즈와 하나 된 패티를 초록 양상추와 빨간 토마토와 함께 노릇하게 구운 햄버거번 사이에 사악 끼운다. 시각적으로 이미 합격이다. 패티만 덜렁 끼워 넣던 내 레귤러 버거와 게임이 안된다. 오, 아름답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어라? 치즈 냄새 안 나네?"
(나는 치즈 냄새가 울렁증 트리거다)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진심으로 놀랐다. 이 맛있는 걸 여적 안 먹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뻔했다.
하마터면 치즈버거 한 번 못 먹어보고 오십이 될 뻔한 거다.
생각해 보면 치즈버거 하나만 그랬겠는가 싶다.
안 해본 것도, 안 먹어본 것도, 안 가본 곳도, 안 만나본 사람도 많다. 세상은 넓디넓은데 나는 익숙한 것만 붙잡고 산다.
그러다 보니 어제 같던 오늘을 반복하고, 또 내일도 별 다를 거 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지루해하고 무료해한다.
새로움의 반짝임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 한 입 베어 물어야 시작되는 것 같다. 반짝이는 것들은 그게 뭐든 참 좋은데 일단 물어야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이제 치즈버거를 먹어봤으니 건포도에 도전해 봐야겠다. :)
아...
그래도 음... 잠깐만... 건포도는 취소하자.
그 반짝임은 되게 필요한 누군가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하자. 다시 속이 울렁거린다 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