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속삭이던 방식으로
엄마, 아빠는 아침식사 때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곤 했다. 마치 작은 비밀이라도 나누는 것같이 조용한 대화였는데 그럴 때면 대개 주유소가 주제였다.
"거기가 리터당 20원이나 싸더라고."
"어디?"
"죽 내려 가는 길에, 거기 말이야."
"거기? 거기?"
"응, 그래, 거기."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있어도 거기가 어딘지 나는 도통 알 수 없었다. 그 좌표 없는 주유소가 등장하던 대화를 기억한다.
그러니까 그건 한 번 있었던 일이 아니라 계절처럼 몇 번이고 되풀이된 일이었다. 리터당 20원. 20리터를 넣어야 400원. 400원을 절약하는 이야기였다.
그 400원이 우리 집 살림에 큰 보탬이 되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는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고 매번 이번엔 15원이니 이번엔 17원이니 하며 늘 꽤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었다.
무엇이 그 장면을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붙잡아 두었을까. 숫자나 금액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건 아마도 엄마, 아빠가 이야기를 나누던 태도, 그 작은 비밀을 공유하던 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조용히 무언가를 나누는 일이란 함께 늙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던가. 그 조심스러운 기름 가격에 관한 말이 낮은 소리를 타고 발화되면 부드러운 삶의 결과 연결되어 내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았던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주유소가 두 곳 있다. 나는 언제나 그중 더 싼 곳을 향해 차를 몬다. 갤런당 1달러 정도 차이니까, 10 갤런을 넣으면 10달러를 아낄 수 있다. 살인적인 캘리포니아 물가를 채감하며 사는 나로서는 그 10달러를 아낀다고 우리 집 살림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연료탱크가 비면 나는 늘 더 싼 주유소를 향해 간다. 차에서 내려 주유를 하노라면 어딘가에서 기분 좋은 신호음처럼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거기 말이야, 거기."
사람은 반복되는 구간을 지나며 나이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말투도, 습관도, 세상을 대하는 방식도 누군가를 닮게 된다. 누군가의 세월이 나의 시간에 묻어난다. 그 대를 물리는 모방이 고맙고 어느새 나도 닮아있다는 사실이 귀하다.
나는 엄마, 아빠의 방식을 기억한다. 소중한 것을 말하지 않고도 전할 수 있는 방식. 엄마, 아빠의 평범하고 조용하던 말의 높낮이. 이야기가 전해지던 방향. 계산 없이 표현하던 태도. 그런 것들을 따라 엄마, 아빠의 시간을 내가 살아낸다.
주유소에 들를 때면 엄마, 아빠 생각이 난다. 평범한 하루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낸 두 사람의 시간이 내 일상 위로 겹쳐진다. 오늘도 조금 더 싸다고 느껴지는 주유소를 향해 나는 천천히 운전해 간다. 창밖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길가의 풍경이 잦아들고 마음은 어느새 오래전 아침 식탁으로 돌아간다.
아... 그래... 드디어, 찾았다!
"응. 그래, 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