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의 노화

그냥 늙게 좀 둬라

by 저나뮤나

요즘은 늙는 것도 성의껏 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늙었다간 자기 관리 부족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마치 세월의 흐름에 순행하는 것이 게으름이나 되는것처럼 역행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냥 늙는 것'이 치명적 결함처럼 취급되기에 이르른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웃긴다. 웃긴다는 말 외에 뭐라고 해야 하는건가. 늙는 건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인데, 그 예외 없음이 부끄러움이 되어버렸다. 누구든 언젠가가 되면 다 부끄러워지는 건, 다시 말하지만 웃기는 일이다.


'잘 늙는 것' 혹은 '웰에이징'이라고 하는 것들이 화두로 떠올랐던 때도 있었다.

건강한 일상, 여유로운 시간, 취미와 여행, 좋은 사람들과의 따뜻한 저녁 식사.

어떻게 보면 청춘보다 훨씬 균형 잡힌 시절로 노년의 삶을 그렸던 것 같은데, 언젠가 부터 '잘'이 사라졌다.


그리고 늙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어,

주름은 제거 대상이 되고, 흰머리는 숨겨야 할 부끄러움이 된것이다.


늙음은 어느 새 '방치'나 '포기'와 같은 단어와 짝을 이루면서 괴상한 모양새를 가지게 됐다.


아주 정중한 언어로 이런 현상을 바라보며 언급하자면, 이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 상황에 가장 적절한 단어는 '웃긴다' 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조금씩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계단 오르며 숨이 차고, 잘 보이던 글자가 조금 흐릿해지고, 웃을 포인트를 반 박자씩 놓치는, 그러고 그런 것들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세계에서 살고 싶다.

젊은 척 하느라 긴장하는 일 없이,

"요즘 왜 이렇게 깜빡깜빡하지?" 하는 말에 죄의식 느끼지 않고 늙고 싶다.


누구에게도 변명하지 않고,

왜 그런지를 설명하지도 않고,

그냥 하루가 저물고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며 늙고 싶다.

밤이 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것은 그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다.


내가 바라는 늙음은 그런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는 지혜가 쌓이고,

굳이 치열하지 않아도 서로를 존중하는 예의가 생기고,

아는 척보단 끄덕임으로 응답하는 겸손이 무르익고,

말보다는 살아낸 시간으로 증명하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전보다 좀 느리게 반응하고 좀 느리게 대꾸한다.

한 발 늦게 걷고, 조금 천천히 생각하고,

무언가를 깜빡하고,

약간의 통증이 어딘가에 늘 달려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말이다.


도대체 왜 이토록 자연스러운 일이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세상이 되어버린건지 통 모르겠다.


그냥 좀 늙게 둬라.

어차피 다 같이 가는 길이다.

나는 지금도 썩 괜찮단 말이다.


내 맘대로 늙을테닷!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