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기 너무 쉽지, 그냥 메주콩 좀 불렸다가 살캉해질 때까지 삶아. 그리고 벅벅 씻어. 콩껍질 다 벗겨지게, 그리고 껍질은 버리고 나머지 믹서기에 넣고 돌려. 끝이야."
엄마의 레시피는 늘 만들기 너무 쉽지로 시작한다.
이제는 안다. 엄마의 쉽고 간단한 레시피는 오랜 시간 나를 먹이기 위해 반복에 반복을 더한 엄마의 시간과 마음이라는 것을.
며칠 전 아는 분의 콩국수를 만들 때 콩은 몇 분 삶아야 하냐는 질문에 몇 분인지는 잘 모르겠고 하여간 콩을 살캉하게 삶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무언가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셨는지 그분은 다시 물었다. "그 "살캉"이 뭡니까?"
그때 깨달았다. 내게 살캉을 설명해 줄 단어가 없다는 것을.
엄마가 내게 콩국수 레시피를 일러 줄 때 말한 "살캉"에 내가 물음표를 달지 않았던 이유는 엄마의 살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날, 그때는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던 콩국수를 먹을 때면 엄마는 달달 소리를 내며 거품이 부르르 부르르 차오르며 끓어오르는 콩냄비 앞에 서 있었다.
어느 순간 엄마는 거품을 헤치며 노란 메주콩 하나를 들어 올려 입 속에 넣고 씹었다.
-음
만족스러운 단음절의 소리에 이어 엄마는 노란 메주콩 하나를 냄비에서 다시 건져 올린다.
엄마가 수저로 건져놓은 작은 콩은 엄마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옮겨진다.
-아
한층 높아진 단음절의 소리 후 엄마는 그 콩을 어린 나의 입에 쏙 집어넣는다.
-맛있지? 살캉하게 잘 익었지?
어린 나는 콩이 맛있는 건지 어떤 건지 살캉한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 맛있어! 살캉하게 잘 익었어!
이게 바로 그 "살캉"이다. 그러니 무슨 수로 "살캉"을 설명할 수 있을까.
더운 날이 되면 메주콩을 살캉하게 삶아 콩국수를 해 먹는다.
엄마 말이 맞다. 콩국수 만들기 너무 쉽다. 물론 당신이 메주콩을 "살캉"하게 삶을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