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추위에 사랑과 인간애가 그리워진다면
드라마 <그들이사는세상> 줄거리
드라마 PD인 주준영과 정지오, 그 외 방송사 드라마국 사람들과 작가, 배우 등의 연애와 인생을 다룬 이야기. 2008년 KBS 2TV에서 방송됐으며 송혜교(주준영 역), 현빈(정지오 역)이 연기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괜찮아 사랑이야', '디어마이프렌즈' 등을 쓴 노희경 작가와 '풀하우스', '아이리스2', '프로듀사' 등을 연출한 표민수 PD, '이죽일놈의 사랑', '아이리스', '달의 연인-보보경심려' 등을 연출한 김규태 PD의 작품.
어느덧 2017년 연말이 다가왔습니다. 첫눈이 내리고 싸늘한 바람이 불면서 두꺼운 패딩을 꺼내들 때죠. 도심 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등장하고 빨간색-초록색이 뒤섞인 장식들도 곳곳에 눈에 띕니다. 연말을 맞아 추운 날씨에 집에서 주말에 다시 한번 드라마를 보는 것도 꽤 재미가 쏠쏠할 듯 합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은 연말과 잘 어울리는 드라마입니다. 사랑과 인생, 훈훈한 동료애와 끈끈한 인간애가 드러나기 때문이죠. 한해를 보내는 이 시점에 따뜻한 감성을 자극하는 드라마입니다. 이별의 아픔과 열등감을 뛰어넘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지만 결국 달달한 '애정행각'을 보며 미소를 자아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일일이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뽀뽀·키스신이 무척이나 달달합니다. 사랑의 감정을 극대화한 스토리죠.
국내 수많은 드라마가 사랑을 소재로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 사랑의 감정을 덤덤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뜨거우면서도 미지근하게 묘사합니다. 일에 대한 열정, 연인에 대한 애틋함과 애정, 동료에 대한 우정과 의리 등을 통해 각박한 생활에 지친 시청자들이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다루는 드라마.
이 드라마가 10년 가까이 웰메이드 드라마로 꼽히는 이유는 아마도 극의 소재 때문일 겁니다. 큰 틀에서는 방송국이라는 특수한 환경과 자본주의 속 현대인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 있는 인간 개개인에 대한 이해를 다루는 드라마죠. 극을 이끌어가는 내내 인물들의 생각을 설명하는 데 주력합니다. 시청자들은 캐릭터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 나를 이입하게 됩니다.
특히 관계 속에서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 그로 인한 행동까지 그 연결고리를 치밀하게 이어나갑니다. 드라마 극 전체가 시청자들에게 캐릭터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게끔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 관계 속에서 갈등을 빚고 해결책을 내놓으며 어쩔 땐 한발짝 나아가고, 어쩔땐 한발짝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입니다.
캐릭터의 과거 기억들이 이 드라마 곳곳에 재연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경험에서 얻은 기억들이 현재의 생각과 행동, 관계을 만들어낸다고 보기 때문이죠. 주준영이 엄마의 불륜을 목격한 당시 기억을 보여주며 엄마에 대한 분노를 갖게 된 이유를 납득하게 되죠.
극 중 송혜교(주준영 역)와 현빈(정지오 역)이 김민철(김갑수)과 윤영(배종옥)의 젊은 시절로 분장해 연극 형식으로 과거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비슷한 모습입니다. 김민철과 윤영의 현재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이전에 있었던 사연을 시청자에게 소개하는 거죠.
사실 이 드라마는 사실적인 듯 보이면서도 다소 비현실적인 구석들이 있습니다. 바로 조직생활 속에서 '하고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분위기 입니다. 현실적으로 사회생활하면서 하고싶은 속마음을 툭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직장이 몇이나 될까요?ㅎㅎ 길바닥 굴러가며 드라마 제작 현장을 함께 누볐다지만 상사인 김민철에게 과거 여자(윤영)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을 맹렬히 비난하며 '혼낼' 수 있는 후배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 듭니다.
물론 방송국 내 드라마국의 특성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겪고 주변에서 듣는 조직 경험으로는 쉽지 않은 일 입니다. '네', '넹', '넵' 등 대답 하나 하는 것 까지 신경 쓰며 급식체 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내는 세상인걸요. 이러한 조직 문화와 형태는 어쩌면 '그들이 사는 세상'이 다루고 싶은 인간과 관계에 대한 깊은 해석을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조직구조 속에서 권력이라는 장치를 약화 시키는 거죠. 마치 이 드라마 2회 부제인 '설렘과 권력의 상관관계'와 같은 원리입니다.
"일을 하는 관계에서 설렘을 오래 유지시키려면 권력에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가 아닌 오직 함께 일을 해나가는 동료임을 알 때 설렘은 지속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들이 사는 세상'이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답답한 조직생활과는 다른 이 드라마 만의 통쾌함 이라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형, 선배, 국장님, 언니, 자기, 감독님, 작가님 등 때마다 다른 다양한 호칭도 이러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일까요. 노희경 작가의 작품 속 캐릭터는 그야말로 '할말은 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입니다. 이기적인 주준영, 절대적인 자본주의와 권력을 상징하는 손규호, 부인과 딸이 있음에도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해외 도피를 결심했던 김민철까지. 눈치보며 말을 못한다거나 남이 나를 미워할까봐 하고 싶은 말을 삼가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당당한 이들의 표현방식들이 때로는 자신만의 벽을 공고히 세우고 힘겹게 버텨나가는, 이 사회를 버티기 위한 자신들만의 방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매력포인트는 공감가는 대사입니다.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인간관계'에 대한 여러 해석을 내놓으면서 시청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빗대고 이해, 공감하죠. 대부분 나레이션을 통해 전달되는데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종종 등장해 개개인마다 와닿는 장면도 다양합니다.
제가 꼽은 최고의 한 씬은 10회, 주준영이 펑펑 울며 자신의 상처를 말하는 장면입니다. 아빠와 엄마의 불륜을 고백하는 씬입니다.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연인인 정지오에게 말을 하죠.
학창시절 엄마의 불륜을 목격한 기억말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불륜의 정황을 발견한 뒤 엄마에게 실망하는 계기입니다. 배가 아파 학교에서 조퇴한 주준영은 집에서 중년 남자가 나오는 걸 봅니다. 이후 집에 들어가보니 엄마는 샤워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여유롭게 보고있죠. 그 중년 남자는 주준영의 친한 친구 아버지였습니다. 학교에 주준영의 엄마와 친구 아버지의 불륜이 소문났지만 그를 인정하기 싫어 주준영은 모든 소문에도 꾹 참고 학교를 다닙니다. 이러한 기억일 정지오에게 털어놓죠.
"자기 엄마도 이해 못하면서 무슨 드라마를 하냐고? 그래, 나 엄마 이해도 못하고, 내 드라마는 인간미도 없고 냉정하고... 그런데 네가 어쩔건데. 네가 나에 대해 그렇게 잘 알아? 너 왜 나한테 함부로 말해."(주준영)
"미안.미안."(정지오)
앞서 주준영의 엄마는 아빠에게서 이혼 통보를 받습니다. 주준영은 그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 조차 꺼립니다. 정지오는 그런 주준영을 닥달하죠. "너는 그게 문제"라며 거침없이 지적합니다. 뒤늦게 이러한 경험을 들은 정지오는 아무 말 없이 주준영을 끌어 안아줍니다. 연인의 상처는 보지 못하고 압박만 했던 자신을 반성합니다.
어떤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상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과연 있을까요. 주준영이 자신의 인생에서 큰 영향을 준 기억을 고백하는 이 장면이 기억을 붙잡습니다.
참고/
http://blog.naver.com/bigjhj/221149734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