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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Apr 27. 2017

001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001. 사랑이 잘


가야 할 시간이 다 되었고 그래서 나는 일어났다. 그의 집을 나오면서 그의 방을 몇 번이나 훑어봤는지 모른다. 혹시나 내가 놓고 가는 건 없는지, 그래서 다시 와야 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는지.

 단 하나도 놓고 가고 싶지 않다. 뭔가를 놓고 가면 또 와야 하지 않나, 나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게 두렵다. 발목 잡히는 느낌이 싫다.

 왜냐하면, 그는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이고 그럴 수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내가 행여나 사랑을 기대할까 봐 그게 두렵다. 그래서 그의 집을 갔다 나올 때면 여느 때보다 철저히 내 짐을 챙긴다. 일말의 여지도 남겨두고 싶지 않다.


        「뭐 까먹은 거 없나

        「응?

        「하여튼, 맨날 잘 챙긴다 하면서

        「아….


 그다음 날 저녁,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제길. 짜증이 밀려온다. 건조대에 잠시 말려둔다는 게 깜빡했다. 아, 젠장. 너무 아마추어 같다. '언제 가지러 올 거냐', '일부러 흔적을 남긴 거냐' 등의 그의 말이 다시 맴돈다. 너무 자존심 상한다. 

 나는 그의 권위가 불편하다. 그는 나와 다르게 감정에 빠지지도 않고, 사랑을 갈구하지도 않는 프로(professional)인 반면, 나는 사랑을 믿고 희망하는 아마추어다. 그래서 그는 우리 둘의 관계에 있어서 둘도 없는 권력자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럼에도 희한한 일은 우리가 만나고 있다는 것. 그리 잦은 횟수는 아니지만 여태껏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원래의 나라면 진작에 관둬도 오래전에 관뒀을 텐데 왜 이러고 있는 걸까. 그 대답은 오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그를 만나면 너무 외롭다. 뼛속까지 서늘해진다고 해야 하나, 세포 하나하나가 고독해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 혼자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그 사실들을 내내 직면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퍽 좋은 것 같다. 싫은데 좋다고 해야 할까. 

 결정적으로, 그가 죽었다 깨나도 나를 사랑할 수 없을 거란 장담을 하기에 나는 마음껏 외로워질 수 있다. 비록 온몸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뜨거운데도 차가운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할지 언정 이 느낌을 새겨두고 싶다.

 그렇담 그는 왜 나를 만나는 걸까 하는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왜냐면, 나는 프로가 되고 싶은 아마추어니까. 

 나도 한낱 감정에 매여있지 않고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가볍게 섹스를 즐기며 살고 싶다. 그런데 어찌 된 연유인지 무거워만 진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나를 붙들고 단 하나의, 유일할,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게 만든다. 그래서 이를테면 '넌, 내 운명의 짝이 아니야.'라는 1인칭 관점의 잠정적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내가 지고 있는 짐을 마음 놓고 내려놓을 수 있는 그 날이 올까?


                                                                       


안녕하세요, 야생화예요. 첫 글을 던져 놓기만 했네요. 글을 (잘) 쓰려다 보니 계속 저 아닌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잠시 내려뒀었답니다. 그냥 저다운 글을 쓰려고요. 오늘도 잘 있는지 모르겠네요. 안부를 전합니다.

 이번 《하루에 한 줄》은 월요일, 목요일 오후 4시 29분에 올릴게요. 약속을 해두면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에.. 꾸준히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아용. 고맙습니다!


당신, 오늘도 제게 존재해주세요,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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