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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blue Feb 10. 2020

반복적인 일상의 힘

1월 말 즈음에 이사를 했다. 잠시 머물고 있었던 시카고를 떠나 학교가 있는 이타카에 가서 맡긴 짐을 찾아서 당일치기로 뉴욕으로 와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한 번은 비행기가 취소되고 한 번은 비행기를 놓치는 일이 생겼다. 겨우 새벽 6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업스테이트 뉴욕의 날씨는 정말 여름을 제외하고는 좋을 때가 없다. 눈이면 좋았을 텐데 비가 엄청 내리기 시작하다가 눈으로 바뀌는 바람에 매우 위험했다. 그래도 어째 가야 할 사람은 가야 한다. 


달리고 달려서 짐을 찾고 잠시 다운타운에 들려 점심을 허겁지겁 먹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여기에 있는 목화라는 식당의 짜장면은 가끔 그립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다행히 뉴욕으로 가는 길은 위험하지 않았다. 도착하니 7시 반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으로 대략 10개의 박스 및 캐리어를 옮기는 일을 끝내고 나니 딱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신 이사 안 가야지...


학교에 있었을 때는 불안정한 학교 생활 때문에 (휴학을 갑자기 한다던가, 교환학생을 간다던가 등등..) 거의 한 학기마다 집을 옮겨 다녔는데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기숙사 생활로 인해 과연 나에게 진정한 집은 어디인가 싶은데 (심지어 나에겐 고향이라는 곳도 없는 거 같다) 단순히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해서 그곳이 집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지난해 가을 겨울에 살았던 집은 나에게 마음의 집은 아니었다. 그 집을 선택한 것은 나이고 그 선택에 후회를 하진 않지만 마음의 집이 아닌 곳에서 사는 건 많은 희생과 인내가 필요했다. 


그리고 새로운 집에서 이주를 보냈다. 

조금 낡았지만 룸메가 아기자기하게 꾸며놓고 무엇보다 은은한 조명이 많은 게 좋았다. 거실에 있는 큰 나무 식탁이 사실 마음에 들어 집을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제일 처음 이 집을 보러 가고 다다음날 계약을 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인터넷에 보면 자취방을 결정할 땐 수많은 점들을 체크하랬는데 (수압이라던지... 난방이라던지) 가끔은 감성이 이성보다 더 나은 판단을 내린다는 걸 이번에 느꼈다. 다행히 아직까지 사는데 문제는 없어서 단순히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마음의 집을 찾고 나니 그 집에 애정이 생겼다. 

매일 정리를 하고 조금이라도 더러워지면 열심히 청소를 한다. 매일 하는 정리가 지겹지 않다. 

정리와는 거리가 조금 먼 나였는데 애정이 생기니 뭐든 열심히 한다. 

저녁에 돌아와서 나를 위해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내일을 위한 요리를 하고 티를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과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모든 걸 열심히 하려 하지도 않는다.

당분간은 이런 행복한 혼자 있는 시간을 고요하게 보내야겠다. 


마음의 집하니 떠오르는 시와 함께.


우리 육체의 집을 지어도 그 문가에서 서성거리는 것

은 마음의 집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의 집을 찾

아가도 그 문가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우리가 집이라 부르

는 그것도 제 집을 찾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비울수록 무겁고 다가갈수록 멀어라!

詩 이성복


<그 여름의 끝> 1990년,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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