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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Nov 18. 2024

여자 넷의 대화

feat. 혼자 있으면 충전 돼?

- 일단 기본이 서울대야. 다 서울대나 한예종

 나오고 유학 다녀온 사람들이야. 너도 멤버로

 들어와서, 너의 색깔을 내면 좋잖아.

- 아.. C도 아직 거기에서 해요?

- 그럼~ 핵심 멤버지. KCO도 제치고 우리 연주

 할 때도 있어.

- 아 ㅋㅋㅋㅋ

- 일단 와서 같이 해 봐. 너 같은 사람이 활동을

 안 하고 그렇게 지내면, 시들시들해지는 거야.

- ㅎㅎㅎ 그건 그런 것 같아요. 엄마 병 다 낫고

 뭘 하든 하자 싶었는데, 너무 오래 걸리고.. 뭐

 엄마도 제가 이러는 게 좋을 리 없겠더라고요.

- 그럼, 당연하지~!


나도 오케 좀..


멘델스존 아빠가 '오케스트라'를 선물로 줬지 않나.

작곡가에게 '오케스트라'는 그냥 가장 큰 선물이다.

찌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오케라면 있으나 마나..

그래서 '가상 악기(VST)'가 등장한 것 아니겠는가.

가짜 악기라도 구매해 나의 오케스트라를 가지는.


그러나 나란 인간은 가상 오케를 이끌어 다듬기엔,

자백하건대, 부끄럽지만 솔직히 귀찮기 짝이 없고

리얼 오케를 가지기엔 성격과 자금이 미달이었다.


왜였을까. 브런치에 '한여름밤의 꿈'을 적고 나서

영으로 무심결에 한 마디 읊었다.

'하나님, 저한테도 오케를 주세요. 못 하는 애들

 말고 제대로 할 수 있는, 잘하는 사람들로요.'

무릎 꿇고 작정하듯 기도한 것도 아니었고 정작

잊었는데 최근, 수 년 만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현성아, 요즘 바쁘니?


마치 오케를 가지는 것과 다름없는 제안을 해왔다.


우연이라기에는, 나에게 평생에 걸쳐 이런 일이

일어난다. 신을 부정하기엔,  증거가 넘친다.

어쩌면 내가 살아있는 자체 증거일 수 있겠다.


그러니까 멘델스존 아빠는 아들에게 오케를 줬고,

나는 하늘의 아빠로부터 오케를 선물 받는 셈인가.

아, 물론 사람의 공로나 감사를 좌시할 리 없지만.


어제 그녀를 만났다


- 언니 남편 MBTI가 뭔데요?

- 근데 MBTI로는 정립할 수 없잖아. 테스트할 때

 원래 자신과, 되고 싶은 자신을 겹쳐서 하는..

- 아, 물론 MBTI로 사람을 정의할 수는 없죠-!

 싸가지가 있냐 없냐로도 많이 갈리고...ㅎㅎㅎ

 MBTI는 어차피 들어도 잘 모르고(내 것 밖에).

 그보다, 성향이 외향이에요 내향이에요?

- 음.. 외향인 것 같아, 외향이야.

- 외향과 내향은, 그냥 가장 단순하게 갈리는 게

 혼자 있을 때 충전 되냐, 사람 만나야 충전되냐..

- 만나야 충전되는 사람이야. 내가 집에 혼자

 있으면 엄청 불쌍하게 생각해.  너무 좋은데!

- ㅎㅎㅎㅎㅎ

- 심지어 미안해하더라고. 그래서 사람들한테

 심심하다고 한 거 있지. 하나도 안 심심한데!


W가 도착했다.


- W야, 너는 혼자 있을 때 충전 돼?

- 응?? (눈이 반짝)

- 혼자 집에 있어. 아무도 없고 혼자 사흘.

- ~전 충전되지!! 너무 좋아!(행복)


그녀의 눈은 서프라이즈라도 듯 빛났고

환한 웃음 속에 설렘까지 가득 차 있었다.


- ㅋㅋㅋㅋ 우리 셋 다 내향이네 ㅋㅋㅋㅋ


내향형 트리오의 대화가 이어졌다.


- 그런 것 있잖아, 평소에는 그냥 괜찮은데,

 피곤한 날 파워 E를 만나면 기 빨리는 것.

 정말 반가웠고 몇 년 동안 보지 말자, 이거~

- 나는 그게 내 남편이야!

- ㅋㅋㅋㅋ 그래도 조화가 되니까 좋...

- 아! 그런데 I끼리는, 힘든 날 만나도 괜찮아.

- 아~ 기 안 빨린다고?

- 어! 이렇게(우리를 가리키며), 좋아.ㅋㅋ

- 하긴. OO에 파워 E가 딱 한 명 있었는데

 수퍼 E라, 거기만 다녀오면 매번 기 빨려서..


J가 합류했다.


- 어머 J야, 정말 오랜만이다, 반가워~

- 언니, 안녕하셨어요! 저도 정말 반가워요!


기숙사에 사는 동안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내 생일에 스펀지밥 케익까지 찾아내 사 줬지만

단둘이 깊은 대화는 못 나눠본 후배에게 물었다.


- J야, 너는 혼자 있을 때 충전 돼?

- 네?! 뭐가요? 휴대폰이요???

- ㅋㅋㅋㅋㅋ 아니, 네가 만일 집에 혼자 있어.

- 네! (힘찬 대답)

- 아무도 없고 혼자, 음.. 3일 동안 혼자 있어.

- ..... (불안한 눈빛, 심각한 표정)

- 그럼.. 충전 돼?

- 아뇨, 언니! 저는 하루면, 하루는 충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흘이면 저는 우울해져요!!


무리한 질문을 해서 미안해. 그냥 너무 웃겼어.


마지막에는 집주인 언니 남편이 귀가하셨다.

이내, J에게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파워 외향형 둘이 합쳐지자 곧

집안이 시끄러워졌다. 왁자지껄 그 잡채~ㅎㅎ


- 언니는 얼굴이 정말 그대로이시네요.

- 무슨 그대로야..ㅋㅋ 세월이 있는데..ㅎㅎ

- 근데, 현성언니는 얼굴이 정말 하얀 것 같아요.


설거지 중인 내 뒤통수 뒤에서 J가, 언니들에게

내 얼굴이 얼마나 하얀지에 대한 설명 중이었다.


- 모스크바에서도요, 현성언니는 러시아 애들

 옆에 있는데도 더 하얗더라고요. 새하얬어요.

- 내가??


뒤를 돌아 물었다. 좀 이상한데.. 잘 모르겠어.


- 난 아닌데~ 우리 엄마랑 내 동생이 하얬지.

- 저는 언니의 하얀 얼굴이 너무 부러워요.

- 외국에서는 구릿빛을 더 좋게 치지 않나~?


주제를 좀 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 언니! 머리 색 원래 건가요? 염색 아니죠?

- 난 머리에 아무것도 안 해.

- 아! 부러워요! 저는 너무 시커매서..

- 영양이 부족해서 안 까만 거야...ㅋㅋㅋ

 J는 영양이 많고~ 근데 우리 엄마는 머리 색이

 갈색이다. 심지어 눈동자도 갈색이고. 신기해.

 외국인인가 ~ ㅋㅋㅋㅋ


하얀 피부에 진심인지 계속 부러워하길래,

설거지를 마치고 다가가 에피소드를 풀었다.


- 쇼핑 리스트 있잖아요, 독일 가면 약국에서.


셋 다 고개를 끄덕인다.


- 전에, 독일에서 잘 나간다는 당근 오일 산 것을

 당시 오디오가이 엔지니어이던 지인에게 줬어요.

 파리에 살았고 불어가 되는 사람이라, 케이스에

 불어도 있으니까 읽어 보더니 그러더라고요.

 "이걸 바르면 얼굴이 구릿빛으로 변해 더 건강해

 보일 수 있다고 적혀 있네요."

 그 말을 듣고 제가 그 자리에서 빵 터졌어요.


- 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모두 쳐다본다.


- 왜냐하면, 그 오일을 우리 엄마도 쓰고 있었는데,

 큰 이모가 엄마 보고 "어머, 얘, 너 어디 아프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엄~청 걱정하면서 혈색이 너무 안 좋다고...

 엄마는 당근 오일 바른 건 생각 못 하고, '내가

 얼굴색이 안 좋은가?' 갸우뚱하셨거든요 ㅋㅋ

- 그게 색이 있어?

- 네, 바르면 얼굴이 그냥 당근 색 돼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걔네는 피부가 워낙 하얘서, 바르면 구릿빛

 피부라고 표현했겠지만 우리는 좀..ㅎㅎㅎ


, 잘 때만 바르라고 당부했던 추억.


- 중국 에어라인은 70만 원대 나오기도 해요.

- 말도 안 돼, 정말?

- 영국 왕복이? 그런 게 어딨 어요~

- 정말이에요. 그 가격 표 나올 때가 있어요.

- 에이, J씨 너무 짜다~~


100만 원 이하는 너무하다며 K 남편분이 거들었다.


- 저번처럼은 절대 안 해야겠다 다짐했거든요.

- 하긴, 난 이해해~. 오갈 때 한 번씩만 참으면

 남는 돈을 다른 데에 사용할 수 있다 생각하면.

- 바로 그거죠~!


J의 눈이 더 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 그래서 나도 중국 경유 타볼까 고민했었는데

 엄마가 결사반대 하셔서 결국 Emirates 탔어.

- 그리고 저희 언니는, 제가 가면 계획과 목적을

  얘기해야 돼요. 그냥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언니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다 말해줘야 해요.

- 아, J 언니가 엄청 계획적이시구나~

- 하버드 나와서 역시 다르신가 ㅎㅎ

 근데 30시간 이상 경유하면 호텔비 들잖아.

- 호텔 안 되죠! 공항에서 자야죠!!

- 어머, J야, 남자도 아니고 공항에서 잘 생각을..

- 아! 그런데 중국은, 짐 때문에 자면 안 된대요.


J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부릅떴다.


- 활털이 너무 비싸요! 얼마나 올랐는지 몰라요!

- 활털이 어디에서 오지? 다 수입이지?

- 몽골리안. 그런데 인건비가 오른 거래요!

- 야! 내가 20만 원 줄게! 핀에어 타고 가!!


듣다 못한 집주인 언니가 J에게 외치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언니 옛날에 KAL에서 근무했었네.


돌아오면서 조금 미묘했던 것은, 공항에서 자야

한다던 후배의 차가 내 차보다 훨씬 비쌌다는 것.

그리고 서울에 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나인 것.

뭐, 그렇다는 것 뿐, 더 의미는 없다.  반가웠고.



여자 넷의 대화를 보니, 역시 목표라든가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구나. 랜덤 열차 같은 어제의 대화

추억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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