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가던 길에는 위 그림의 좌측처럼 턱이 없으면서 점자보도블록이 있었고, 그에 반대편에는 턱이 높이 있고 점자보도블록이 없는 길이었다.
만약 이곳을 지나가기 위해 어느 시각 장애인이, 혹은 휠체어를 탄 누군가가 지나가려고 했다면 아찔한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길이었다.
이곳 근처에는 서울 안에서도 세 개의 호선이 겹치는 역이 있어 교통의 중심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 이런 형태의 보도가 깔려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곳을 공사할 때 현장을 진두지휘하시는 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적당히 구색만 갖추면 되는 식이라는 건가? 아니면 공부하다가 잠깐 쉬는 동안에 갑자기 들어온 엄마에게 쉬는 것처럼만 보인 자식처럼 '나 방금 하려고 했는데!'라는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돌기가 나있는 노란색 점자블록이 그들의 유일한 길이다. 마치 끝없는 지평선 위에 표시된 하나의 외길처럼.
그러한 길이 횡단보도를 건너니까 없어졌다면? 나라면 허허벌판에 갑자기 뚝떨어져 방향도, 길도 없어진 사람이 되어 난감했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내가 휠체어를 탄 사람이었다면 처음엔 경계턱이 없어 내려가다가도 맞은편에 미리 보지 못한 경계턱을 어떻게 넘어갈까.. 유턴을 하다가 차와 마주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보행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고 신경 쓰지 못할 문제고,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여서 이런 것들은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길"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지 않은가?
나는 횡단보도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깨지고 갈라진 점자블록들은 물론이고 다른 곳에서도 종종 모순적인 거리들을 발견하곤 한다.
2. 이 엘리베이터는 당분간 사용이 불가합니다.
나는 한강을 따라 가끔 달리거나 산책을 할 때가 있다.
한강을 가려면 한강 나들목 중 엘리베이터나 계단 중 무조건 하나를 지나가야 하는데, 나들목을 지나갈 때면 엘리베이터가 오래도록 고장인 상태로 있는 나들목이 있다. 그런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볼 때면 이쪽으로 오다가도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수동휠체어나 전동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는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수리 중. 들어가지 마십시오.'를 우리와 똑같이 보긴 하지만 계단이라는 선택지는 그들에겐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다.
나는 그들이 제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이 나들목으로 오지 말기를 생각하면서 계단을 오른다.
서울의 한강 나들목
한강나들목을 지나면 강변을 따라 누구나 산책을 할 수 있다.
서울은 그나마 잘 되어있는 편이다. 가끔 소도시를 놀러 가거나 일이 있어 내려가면 보도 공간자체가 좁아서 휠체어는커녕 유모차도 못 다닐 정도의 간격과 상태인 곳이 비일비재했다. 어떤 때는 잘 닦인 보도 중간에 가로수가 있어 그 옆 도로를 이용해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는 사람을 마주하기도 했다..
나는 이동성에 제한이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실질적인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또 다른 위험이 남들보다 한 겹 더 플러스되리라 확신한다. 결국 그들도 지역사회로 나오기 위해선 "길"을 다녀야 하는데 이 길을 다니지 못한다면 출발은 했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너무나 큰 모험이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왜 그들은 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 지금 바로 세상밖으로 나오면 되지!'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마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던 우매한 왕비처럼 속 없는 격려를 할 것이 아니라 왜 못 나오는지를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깨진 점자블록과 모순된 경계턱들은 그들을 나오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다른 말로는 장벽일 것이다. 그 장벽을 허무는 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미래의 사람들, 혹은 나 자신을 위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최근 이슈였던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멈추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보다 그들로 인해 누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가 더 초점이 맞춰진 기사들이 많았다.
물론 논란도 많고 나도 누구한테든 피해를 주는 방식은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여태 조용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이동권을 주장할까?
그들은 참았던 것이다.
아니.
말했지만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비장애인들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 왔고,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말해왔다. 하지만 들어주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다. 좀 더 돌아가고, 수고로움을 견뎌왔던 것이 그게 당연하다고 누가 단정 지었나?
그들이 이 길을 다니고, 교통수단을 이용해 최종적으로 바라는 것은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인데... 그게 큰 바람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